[주간필담] ‘주변 사람 잘 챙기는’ 정치인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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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주변 사람 잘 챙기는’ 정치인에 대한 단상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1.10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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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 잘 챙긴다는 평가는 ‘내 사람 챙기기’와 직결…한 번쯤 의심해 봐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매 정권 때마다 낙하산 인사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뉴시스
매 정권 때마다 낙하산 인사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뉴시스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기사로 내기는 어렵지만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듣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주 들리는 말이 바로 ‘주변 사람을 잘 챙긴다’는 평가인데요. 처음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죠.

반면 ‘주변 사람을 잘 챙기지 못하는’ 정치인은 정치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매도되기 십상입니다. 정치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인데, 주변 사람조차 챙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큰 정치인’이 되겠냐는 겁니다. 그럴듯한 얘기죠.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주변 사람 잘 챙기는 정치인을 ‘좋은 정치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주변 사람 잘 챙기는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일까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서울시장에서 사퇴한 뒤 쉬고 있는데, 아내(송현옥 세종대 교수)가 ‘당신은 정치는 손톱만큼도 안 하고, 미친 듯 일만 했다’고 하더라. 저는 선거 때 도와주신 분들을 챙기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치인으로서는 미숙했던 거다.”

우리는 정치인들의 ‘낙하산 인사’를 비판합니다. 선거를 도와줬다고 해서 전문적 지식도 경험도 없는 사람을 공공기관 기관장과 임원으로 임명하고, 그들의 사업에 이권을 주거나 자녀들의 취업을 도와주는 등의 행위를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팬카페 운영자가 코레일 비상임이사로 임명됐을 때 온 국민이 분노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낙하산 인사’는 정치인들이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대표적인 방식입니다. 상장 하나 받자고 불철주야 남의 선거 캠프에서 일할 사람은 없으니, 당선 후 갖게 되는 권력을 활용해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주는 거죠. 주변 사람을 잘 챙긴다는 평가와 선거 캠프에서 일한 사람들에게 이권을 주는 행위는 완전히 분리될 수 없습니다.

반면 오 전 시장처럼, 당선 후 갖게 되는 권력을 활용해 적절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주변 사람을 챙기지 않는다는 악평이 따라붙게 됩니다. 국민이 원하는 대로 전문성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합리적인 인사를 펼치다가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기는커녕 재선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되는 겁니다.

정치권에는 “정해진 길만 가려고 하는 ‘범생이’ 정치인은 큰 정치인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 진리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에게 정말 좋은 정치인은 어떻게든 주변 사람을 챙겨 자신의 세력을 모으고 힘을 가지려고 하는 정치인이 아닌, 법과 원칙에 따라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정치인일 겁니다.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이라는 통념을 한 번쯤 의심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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