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경제] 조선의 비극 섭정과 이재용의 준법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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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경제] 조선의 비극 섭정과 이재용의 준법경영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01.31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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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수 일가의 섭정 가능성 전면 배제시켜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총수 일가의 섭정 가능성 전면 배제시켜야 사진제공=뉴시스

섭정(攝政)은 봉건주의 왕정국가에서 선왕(先王)이 죽어서 어린 세자가 갑자기 즉위하거나 또는 통치자가 병에 걸리거나 국정 운영이 어려운 사정이 발생할 경우 국왕을 대리해서 통치권을 맡아 나라를 통치하는 상황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세자에 의한 섭정은 대리청정(代理聽政), 대비(大妃) 등 왕실의 여성 어른이 섭정을 하는 경우를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고 한다. 우리 역사는 대비에 의한 수렴청정을 종종 볼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섭정은 최고 통치자가 부재하거나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할 경우 운영되는 비정상적인 통치행태다.

섭정이 비정상적인 통치행태지만 통치자가 정상적인 업무가 가능할 때까지 현상 유지를 하는 순기능도 있다. 통치자는 그 기간동안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우리 역사는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데는 실패한 경우가 많다.
  
조선 성종의 경우 선왕이자 작은 아버지인 예종이 급사하자 후일 인수대비가 되는 모친과 한명회의 정치적 타협으로 13세 어린 나이에 즉위한다.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은 성종의 할머니인 정희왕후였다. 며느리 인수대비와 한명회의 선택은 정희왕후였다. 이로써 조선 최초의 섭정이 시작됐다. 

일단 정희왕후를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고 모든 정사(政事)는 자신들이 막후에서 좌지우지할 계획이었다. 이들은 가끔 정희왕후와 대립하기도 했지만 잇따른 왕의 교체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시켰다. 조선 최초의 섭정은 성종을 조선의 통치체제를 완성시킨 성군으로 남겼다. 

하지만 모친 인수대비의 지나친 국정 개입으로 인한 폐비 윤씨 사건은 후대 연산군의 폭정을 잉태한 불행의 씨앗이 됐다. 인수대비의 최후도 비참했고, 한명회도 사후(死後) 부관참시되는 치욕을 당했다. 인수대비와 한명회의 비참한 최후는 조선 최초의 섭정이 남긴 비정한 역사의 양면성이다.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고종도 섭정으로 시작했다. 고종은 부친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야망에 의해 뜻하지 않게 대권에 오른 케이스다. 고종도 즉위 당시 12세의 어린 나이인 관계로 왕실의 큰 어른인 조 대비가 수렴청정했다가, 얼마 안지나 야심가인 부친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고종이 성인이 되자 민비의 치맛폭에 휘둘려 부친을 내쫓고 민씨에게 정권을 내줬다. 이때부터 조선은 대원군과 민비의 권력암투로 대혼란에 빠졌다. 고종은 대원군의 섭정기간동안 국왕의 자질을 키우는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고종 일가의 실패를 넘어 조선 망국의 지름길이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에 전격 재구속됐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삼성은 지난해 이건희 전 회장의 별세에 이어 이 부회장의 재구속으로 총수 부재라는 악재의 늪에 빠졌다. 이 부회장은 옥중 메시지를 통해 삼성 임직원에게 “흔들림 없이 한 마음이 돼달라”며 준법경영을 당부했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봉건주의 왕조와는 전혀 다르다. 주주들도 섭정을 그냥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세습 경영은 똑같다. 그만큼 총수 일가가 경영에 개입할 소지는 크다고 볼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재상고를 포기했다. 이 부회장은 총수 일가의 섭정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하고 남은 수감기간을 자신이 국민에게 약속한 준법경영을 구체적으로 구상해 출감 후 실천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보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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