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여전히 당신은 ‘차별을 반대한다’며 차별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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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여전히 당신은 ‘차별을 반대한다’며 차별하고 있는 건 아닐까?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1.02.20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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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와 안철수…진정 차별에 반대하는 것일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
동성애를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
동성애를 거부할 권리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

세 문장은 모두 어폐가 있다. 앞 문장에 담긴 내용이 이미 차별이기 때문이다. 뒤 문장에서 ‘차별에는 반대한다’고 스스로를 보호했으나, 결국 동성애와 이성애를 다르게 대우한다는 점에서 이미 차별에 찬성하고 있는 셈이다. ‘동성애자는 아니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문장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모순이 담긴 세 문장은 정치인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위에서 두 문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후보일 때 TV토론에서 한 발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8일 금태섭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토론에서 한 말을 변형한 것이다.

논란이 되자, 다음 날 안 대표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지금까지 광화문 퀴어 퍼레이드를 보면 신체 노출이나 또는 성적 표현 수위가 높은 경우가 있다”며 “축제 장소는 도심 이외로 옮기는 것이 적절하다는 말”이라 해명했다.

같은 당 이태규 의원 역시 “어제 토론에서의 논점은 공중도덕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문제였다”며 “안 후보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적 관점과 일반 사회규범의 차원에서 축제 장소 변경을 제안한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취향과 선호를 존중받을 권리 역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행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일을 차별하지 않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뉴시스

하지만 이미 동성애 자체를 ‘법의 테두리’와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바깥에 둔 것은 아닐까. 공중도덕이나 배려와 같은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이성애와 동성애의 성적 표현 수위를 동등하게 판단하고 있는가.

같은 근거로 성소수자를 차별한 사례는 또 있다. SBS는 설 특선 영화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했다. 그러나 동성 간 키스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삭제해 논란이 됐다. 이에 SBS는 폭력이나 흡연 장면을 편집하듯 직접적인 스킨십 장면을 편집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편집해야 할 ‘직접적인 스킨십 장면’에 몇 차례의 이성 간 키스 장면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성소수자라는 점은, 그의 인생과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무지개행동은 “동성애를 마치 폭력, 흡연과 동일하게 유해한 것이라고 보면서 임의로 편집한 행위는 명백하게 성소수자를 차별한 것”이라며 “특히 동성 간 키스신을 모자이크 처리한 것은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동성애는 부적절하다고 말한 것과 다름이 없는 차별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여전히 당신은 ‘차별을 반대한다’는 표현 뒤에 숨어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있다. 멋들어진 이유를 대며 여전히 당신은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사랑’의 네 번째 의미를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라 명시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오직 남녀만이 나눌 수 있는 감정인 셈이다.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은 올 수 있을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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