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퀴어 축제 논란과 정당정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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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퀴어 축제 논란과 정당정치의 위기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3.14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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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심 이탈 우려에 제 기능 못한 거대 정당…정치권, 대화와 토론장 마련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표심 이탈 우려에, 정치권은 이번에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뉴시스
표심 이탈 우려에, 정치권은 이번에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뉴시스

민주주의(民主主義)란 국민이 주권을 갖는 정치 체제를 의미합니다. 때문에 국민은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뜻을 내세우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으므로, 자신과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대표자’를 선출해 의회로 보냅니다. ‘나를 대신해 내 이익을 대변해 달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갈등의 조정’입니다. 지지자들이 요구하는 사안을 테이블 위에 올려 공론화시키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간극을 좁혀가면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는 게 정치인들의 의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합의란 바로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퀴어 축제를 대하는 거대 양당이 ‘직무유기’를 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는 지난달 18일 TV토론에서 “(퀴어 축제 광화문 개최를) 원하지 않는 분들도 있다. 거부할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해 정치권의 논쟁을 촉발했습니다.

퀴어 축제는 존중받아야 하는 소수의 권리와 다수의 ‘불편함’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필요한 사안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소수의 권리가 보호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불편한 시선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으니 정치권이 치열한 논쟁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공당(公黨)이라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고 용기 있게 대화의 테이블로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공론장에서 대화와 토론이 이뤄져야 국민들도 사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고, 다수의 ‘불편’을 이유로 소수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거대 양당은 퀴어 축제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공식적 입장 표명이 자칫 다수의 뜻을 거슬러 표심에 영향을 줄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소수는 의회가 아닌 거리에서 자신들의 뜻을 피력하려 하고, 소수에 대한 다수의 혐오는 커져가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증폭시키고 있는 겁니다.

‘촛불혁명’ 이후 우리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정당정치의 위기’라는 진단이 자주 나왔습니다. 국민들이 정당을 통해 의견을 표출하고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 하기보다는 직접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내는 데 익숙해졌다는 우려였습니다. 그러나 퀴어 축제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우리 정당은 표를 잃을까 두려워 정당 본연의 역할조차 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정당을 무시한다고 걱정할 게 아니라, 정당 스스로가 정당정치의 위기를 유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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