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신문 보기] ‘신도시’ 투기 역사는 반복됐다…이번엔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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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신문 보기] ‘신도시’ 투기 역사는 반복됐다…이번엔 다를까?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1.03.17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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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2003년 그날, 인물·신문의 평가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시사오늘 김유종
이번 열한 번째 ‘옛날신문 보기’는 1989년과 2003년 ‘신도시 개발과 투기’다.ⓒ시사오늘 김유종

부동산 투기의 역사는 반복됐다. 돈이 되는 땅에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고, 그 흐름 속에 누군가는 돈을 벌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3기 신도시 투기는 낯설지 않다. 1989년과 2003년 1~2기 신도시 건축 과정에서 이미 경험한 역사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신도시 건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되레 아파트 값을 상승시키는 투기의 주범은 아닐까. 정보 우위에 있는, 힘 있는 자들의 투기는 왜 반복되며, 이를 막으려면 어떤 제도 개선이 필요한가. 이 질문들은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인 동시에, 32년 전과 18년 전 이미 마주했을 고민이다.

<시사오늘>은 과거의 인물, 그리고 과거의 사건에 대한 당대 신문들의 평가를 재조명하며, 보수와 진보 언론 양극단의 평가를 비교해왔다. 여기서 ‘어떤 평가가 옳은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전면 배제한다. 판단은 ‘사상의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동시에 ‘과잉 이념’의 시대에 지쳤을 독자들에게 맡길 예정이다. 이번 열한 번째 ‘옛날신문 보기’는 1989년과 2003년 ‘신도시 개발과 투기’다.

 

‘신도시’는 집값 잡기 위한 극약처방


신도시(新都市)는 계획도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집값이 상승하자, 이듬해 노태우 정부가 ‘천정부지의 아파트 값을 잡기 위한 극약처방(회고록下·45쪽)’으로 정책을 제시했다. ‘주택 200만 호’라는 목표를 세웠으나, 더 이상 서울 시내에는 땅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찾은 부지가 △분당(성남시) △일산(고양시) △중동(부천시) △평촌(안양시) △산본(군포시), 총 다섯 군데다. 모두 서울에서 전철로 이동이 가능한 거리였다.

ⓒ네이버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부실 공사 의혹(좌·<경향신문>)과, 준비되지 못한 교통 대란(우·<동아일보>)ⓒ네이버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1기 신도시 계획은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했다. 1987년 기준 932만 가구의 5분의 1이 넘는 주택 공급이 이뤄졌다. 그러나 곧바로 부작용이 드러났다. 언론은 부실 공사 의혹(<경향신문>)과, 준비되지 못한 교통 대란(<동아일보>)에 주목했다.

신도시 안전한가(1) 졸속 앞에 쌓이는 ‘부실’

“올 것이 왔다” 최근 수도권 신도시에서 짓고 있는 일부 아파트에 불량 건자재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자 건설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한 마디로 말했다. 신도시 아파트의 안전도에 대한 그동안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중략) 주택 공급 확대라는 측면에만 집착, 신도시 건설에 따르는 소요 건자재나 인력의 수급 등은 도외시한 채 무리하게 추진,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으로 예측돼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나타나고 있는 노임의 급격한 상승, 건자재 파동, 건설 경기 과열, 건설 인력 부족 등은 졸속으로 신도시 건설 계획을 추진, 강행한 결과다.

- <경향신문>, 1991.06.25. 7면

신도시 건설 ‘부작용’ 비상

단기간 동안의 무리한 신도시 건설로 인해 인력난, 자재난, 교통난, 임금 상승, 물가 불안 등 경제 전반에 걸쳐 주름살이 가중되고 있어 공기의 조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략) 신도시 건설로 수반되는 사회간접자본시설의 적체 현상도 심각하다. 5개 신도시 건설이 거의 완료되는 오는 93년 이후 수도권 도로 교통은 현재보다 두 배 이상 체증 현상을 보이게 되며 특히 강남 일원, 사당동 일대, 통일로 등 서울 진입로 부근의 교통은 마비 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 때문에 수도권 도로교통망 확충을 위해 재정이 팽창되고 시급한 산업도로와 항만시설 확충이 뒤로 밀리는 등 악순환이 되풀이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 <동아일보>, 1991.06.25. 1면

20040212_노무현,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좌) 고건 국무총리(우)ⓒ노무현재단 사람사는세상 사료관
2004년 건설교통부 업무보고 사진이다. 가운데 좌측부터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 노무현 대통령, 고건 국무총리다.ⓒ노무현재단 사람사는세상 사료관

그로부터 14년 후 2기 신도시 계획이 발표됐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정책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도 “전체적으로 볼 때 참여정부 시절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는 했다”며 “2003년과 2006년도에 주택과 아파트 가격이 특히 많이 올랐다(자서전·224쪽)”고 회고했다.

결국 참여정부도 ‘집값’을 잡기 위해 주택 공급 확대를 택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정부가 1~3기 신도시 카드를 꺼내드는 공통된 배경이다. 2기 신도시는 △위례(송파구·성남시·하남시) △판교(성남시) △동탄1·2(화성시) △운정(파주시) △광교(수원·용인시) △한강(김포시) △양주(양주시) △고덕국제(평택시) △검단(서구) 등이 건설됐다.

언론이 2기 신도시 부작용으로 가장 주목한 것은 ‘땅값 상승’이었다. 집값을 잡겠다는 근본적인 정책 목적의 효과성에 대한 의문이 줄을 이었다 1기 신도시 때 지적된 날림 공사나 교통 대란에 대한 우려는 다소 덜한 편이었다.

‘신도시’가 집값 부추긴다

정부의 급조된 신도시 정책이 부동산 투기와 편법을 부채질하면서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 정확한 수요예측이나 주변 환경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단 짓고 보자’는 대증요법 식 처방 때문에 신도시 주변 땅값이 덩달아 오르면서 집값 불안을 더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중략) 수도권 집값을 잡겠다며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신도시 때문에 수도권이 통째로 부동산 투기 열풍에 휩싸인 셈이다. 신도시 건설 과정에서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으면 제2기 신도시는 물론 현재 추진 중인 혁신도시, 행정타운, 기업도시 등 각종 도시개발 사업의 부작용은 더욱 커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경향비즈>, 2005.03.28.

땅값 올려놓고 연일 투기대책 쏟아내

한 달이 멀다하고 터져 나오는 개발 계획이 전국의 땅값과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으면 정부는 이를 잡겠다며 연일 투기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게 요즘 풍속도다. 쉽게 말해 정부가 부동산 값을 올려놓은 뒤 세금으로 그것을 다시 때려잡겠다고 호통을 치는 형국이다.

(중략) 대규모 개발정책이 저금리와 맞물리면서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 국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개발은 기획부동산업자들에게 좀처럼 맛볼 수 없었던 먹잇감 노릇을 하고 있다.

- <서울경제>, 2005.05.15.

그로부터 다시 15년이 흘렀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21 대책을 통해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투기로 문제가 된 광명·시흥은 올해 2월에 신도시로 지정된 곳이다. 현재까지 △왕숙(남양주시) △교산(하남시) △계양(계양구) △창릉(고양시) △대장(주천시) △광명시흥(광명·시흥시) 등이 포함됐다. 

 

선택의 기로 앞 신도시의 ‘손익계산서’


신도시 건설에 따른 부실 공사 및 교통 대란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투기’에 있었다.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정책이 부동산 카르텔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라면, 정책으로서의 의미가 있을까. 뿐만 아니라 원래 목표와는 반대로 집값 상승에 대한 우려도 뒤따랐다. 공급 확대 및 주거 안정의 효과와, 뒤따르는 부작용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봐야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기 신도시 추진 과정을 ‘선택의 기로’라 회고했다. 그는 “당시에도 부동산 투기를 그냥 두느냐, 아니면 부작용을 감안해서라도 주택 200만 호 건설을 밀어붙이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岐路)에서 밀어붙이는 쪽을 택했던 것(46~47쪽)”이라 설명했다.

선택에 대한 대가는 혹독했다. 정보에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이들의 투기가 성행했기 때문이다. 1~2기 신도시 조성 후 곧바로 조사가 시작됐다. 두 차례 모두 검찰이 부동산투기사범합동단속본부(합수부)를 설치해 수사를 진행했다. 1990년 합수부에는 국세청, 건설부, 치안본부, 서울시 등 유관기관이 참여했다.

현재 3기 신도시 사태는 경찰 국가수사본부를 중심으로, 국무총리실과 국토교통부 등이 참여하는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조사 중이다. 이에 대검찰청은 15일 ‘부동산 투기 사범 수사협력단’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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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 대기업에 대해서는 단속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하자(좌·<조선일보>), 국세청이 기업을 추적했다(우·<매일경제>)ⓒ네이버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언론은 1기 신도시 투기 조사 과정에서 재벌과 대기업 단속이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했다(<조선일보>). 이후 국세청은 부동산을 대량으로 취득한 기업, 친인척·임직원 명의로 부동산을 사들인 혐의가 짙은 재벌 등을 추적했다(<매일경제>).

재벌 부동산 투기단속 “미지근”

부동산 투기를 엄벌하겠다고 검찰이 공언을 해놓고도 정작 대기업의 부동산 투기는 처벌 법규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단속을 하지 않아 정부의 실천 의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중략) 대기업들은 대부분 회사 명의보다는 임직원이나 친인척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한 후 적당한 시기에 소유권을 회사 명의로 등기 이전하는 이른바 ‘명의신탁’의 방법을 이용해 형사처벌 대상에서 교묘히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1990.05.07. 15면

“임직원·친인척 명의까지 추적”

대기업의 부동산 투기를 가려내기 위해 국세청이 본격 가동 채비를 서둘고 있다. 국세청은 이번 추적 대상 기업으로 비업무용 부동산이 많거나 지난해 이후 부동산을 대량으로 취득한 기업 친·인척 또는 임직원 명의로 부동산을 많이 사들인 혐의가 짙은 기업 등으로 정해놓고 있다.

(중략) 국세청·검찰 등은 지금껏 투기 단속에 나서 악덕 중개인, 개인 투기꾼만 대상으로 해왔을뿐 기업은 건드리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정부·여당을 비롯, 상층권에서 현 시국을 ‘총체적 난국’으로 규정하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 <매일경제>, 1990.05.04. 3면

3기 신도시 사태에 대한 우려는 더 가중됐다. 정부 합동조사단은 11일 국토교통부와 LH 전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명의 투기 의심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직원들의 실명 거래만 조사돼, 친인척을 통한 차명 거래는 잡히지 않은 결과다.

뿐만 아니라 1~2기에서 꾸준히 제기돼온 재벌, 대기업, 정·재계 관계자, 지자체장 및 고위직 공무원 등의 투기에 대한 전수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대 양당은 ‘국회의원 300명 전수조사’에 공감하면서도, 줄다리기를 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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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국세청이 발표한 상습 투기꾼 명단을 공개했다(우). 이름뿐만 아니라 나이, 사는 곳까지 실렸다.ⓒ네이버뉴스 라이브러리 갈무리

1기 신도시 때는 1990년과 1991년 동안 부동산 투기 사범 1만 3천여 명을 적발해 987명이 구속됐다. 이 가운데 공직자는 131명이었다. 2005년 2기 신도시 때도 455명을 구속했으며, 이 가운데 공직자는 27명이었다. 양상도 비슷했다. 땅의 형질을 불법으로 변경해 시세 차익을 누리려고 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사회지도층이 투기 부채질

투기 행위가 뚜렷해 명단이 공개된 137명 중에는 기업체 임·직원(34명), 주택·건설 업체 대표 및 간부(16명), 병원장·의사(7명), 은행지점장 심지어 현역 국회의원의 친동생이 포함돼있는 등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를 부채질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또 직업이나 계층, 연령 면에서 매우 다양하게 분포돼 있어 투기가 각계각층으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떤 기업인은 사업으로 얻은 수입을 투기 자금으로 빼돌려 사업보다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린다는 여론이 사실임이 입증됐다.

- <한겨레>, 1990.05.12. 5면

무려 32년 전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직후 원인과 문제를 진단하는 ‘징비록’을 작성했다. 징비(懲毖)는 ‘미리 징계해 후환을 경계한다’는 구절에서 비롯됐다. 신도시 개발과 투기에 대한 징비록은 꾸준히 작성돼왔다. 이를 통해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것은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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