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 ‘호랑이’ 맞서 싸운 YS, 대세를 굳힌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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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호텔] ‘호랑이’ 맞서 싸운 YS, 대세를 굳힌 그 곳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3.23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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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적으로 불리했던 YS, 신라호텔서 김윤환 지지 이끌어내며 승기 잡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YS는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까지 치열한 내부 경쟁을 이겨야 했다. ⓒ뉴시스
YS는 민주자유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까지 치열한 내부 경쟁을 이겨야 했다. ⓒ뉴시스

1990년,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대통령병에 걸린 변절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3당 합당’에 합의했다. 그러나 YS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민주자유당은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모여 만든 정당이었지만, 주류는 민정계였다. YS가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민정계의 지지를 손에 넣어야 했다.

하지만 ‘굴러온 돌’인 YS에게 민정계가 순순히 힘을 실어줄 리 없었다. 실제로 1992년 제14대 총선을 앞두고, 민정계는 공격적으로 ‘자기 사람 심기’에 나섰다. 총선에서 얼마나 많은 지분을 확보하느냐가 곧 대선 경선 승패와 직결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14대 총선 공천은 사실상 YS에 대한 ‘견제구’나 다름없었다.

1일 발표된 민자당의 공천 결과 민정계는 더욱 세력을 확장한 반면 민주·공화계는 기존의 지분을 수비하는 데 실패, 다소간의 영토를 잠식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기존 3계파의 판세는 대체로 5대3대2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세력 균형을 잡아왔으나, 공천자의 명단을 계파별로 분류해본 결과 민정계 148명, 민주계 52명, 공화계 27명(5대2대1)으로 집계돼 민정계의 세가 더욱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민자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는 총선 후 전당대회에서 자유경선에 의해 선출토록 돼있어 이 같은 세력 재편은 특히 주목을 끌고 있다.
민정계가 당내 주도세력으로 확고한 위치를 설정함에 따라 민정계의 기류 변화는 대권 창출의 향방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후략)
1992년 2월 3일자 <경향신문> ‘노 직계·민정계 세 확장 뚜렷’

이런 상황에서 제14대 총선 결과가 민자당의 참패로 나타나자, YS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어찌됐건 총선 당시 당대표였던 YS는 선거 결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었고, 이를 명분삼아 민정계와 공화계가 ‘YS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YS는 “당 쪽에서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여론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하지만 늘 그랬듯, YS는 ‘정면 돌파’로 맞섰다. YS는 3·24 총선 사흘 뒤인 3월 27일 노태우와 만나 당 운영을 협의했다. 다음 날인 3월 28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5월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그의 대선 출마 선언에, YS 책임론을 둘러싼 내분은 사라지고 민자당은 본격적인 대권 후보 경쟁 국면에 접어든다.

그러나 대선 출마 선언은 ‘일시적 봉합’이었을 뿐, 계파 갈등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YS가 대권 도전을 공식화하자, 민정계에서는 후보 단일화를 위한 7인 중진 모임을 만들어 ‘YS 대항마’ 찾기에 나섰다. 그리고 이들은 이종찬을 민정계 단일 후보로 결정하고 반김(反金) 전선을 구축했다.

당시 민자당의 지분 구조를 고려하면, 민주계가 YS를, 민정계가 이종찬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경우 YS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총선 공천 과정에서 세력을 넓힌 민정계가 여전히 민자당의 주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때문에 YS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민정계 내의 YS 지지파’를 최대한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서울시 중구 장충동 남산기슭에 위치한 신라호텔은 1979년 개관한 특급호텔이다. ⓒ시사오늘
서울시 중구 장충동 남산기슭에 위치한 신라호텔은 1979년 개관한 특급호텔이다. ⓒ시사오늘

민주계의 타깃은 김윤환이었다. 김윤환은 본래 민정계의 좌장(座長)이었지만,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YS가 민자당 대통령 후보가 돼야 한다”고 설파하고 다녀 ‘신(新)민주계’로 불린 인물이었다. 만약 YS가 신민주계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YS는 완벽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터였다.

이에 민주계 핵심 인사들이 나섰다. 3월 30일. 김덕룡, 황명수, 강인섭, 황병태, 서청원, 김현철 등은 신라호텔 일식집에 모여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민주계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고 민주계는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신민주계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민주계가 한 발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이에 신민주계도 화답했다. 3월 31일. 김윤환을 비롯해 남재희, 김진재, 김용태, 이웅희, 정재철, 김종호, 금진호, 정순덕 등 민정계 중진 9인은 신라호텔에서 만찬회동을 갖고 YS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대선 경선은 YS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틀 새 신라호텔에서 있었던 두 차례 회동이 YS를 민자당 대선 후보, 나아가 제14대 대통령으로 만든 셈이다.

민자당 내 반김영삼 대표진영이 김 대표에 맞서 단일후보 추대를 적극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민자당 민정계의 친김 대표진영 중진 9명이 31일 모임을 갖고 김 대표 지지를 선언했다. (중략)
민정계 친YS진영의 김윤환·금진호·남재희·김용태·정순덕·김종호·정재철·김진재·이웅희 의원 등 9인은 31일 저년 서울 S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절대다수의 침묵하는 의원과 상관없이 특정 몇 사람이 민정계를 대표하는 것 같이 움직이는 상황을 우려한다’면서 ‘향후 국가 장래를 위하는 방향에서 대통령 후보가 순리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옳으며, 국민 정서상 순리는 김 대표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주말로 예정된 이들의 2차 모임에는 민관식, 김재순, 유학성, 김정례 고문 등도 초청키로 하는 등 참석 규모가 더욱 확대되며, 이어 민정계 과반수 이상이 참석하는 제3차 모임을 통해 YS 지지를 공식 표명하는 한편 YS 후보 추대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략)
1992년 4월 1일자 <조선일보> ‘민정계 친김 9명 첫 회동’

한편 서울시 중구 장충동 남산기슭에 위치한 신라호텔은 국빈 방문에 대비해 국가에서 운영하던 영빈관 건물을 삼성그룹이 인수, 1979년 현재의 23층짜리 건물을 새로 지어 개관한 특급호텔이다. 실제로 지미 카터, 조지 H.W. 부시, 마이클 잭슨, 빌 게이츠, 톰 크루즈, 펠레,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유명 인사들이 방한 당시 신라호텔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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