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Li-view] 양정철 없는 민주당, 참패만 있었다? 
[정치 Li-view] 양정철 없는 민주당, 참패만 있었다? 
  • 정치라이뷰팀
  • 승인 2021.04.25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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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과 데스크의 시각 ‘정치를 본다’
이번 편은 文 대통령 만든 일등공신이자 
킹메이커 양정철의 역할론, 복귀 ‘주목’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정치라이뷰팀)

정치는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한다.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다. 꿈틀대는 그 광경 위에서 정치를 본다. 기자들과 데스크의 시각을 담은 ‘정치라이-뷰(Li-view)’는 취재를 녹인 분석들의 조합, 브레인스토밍에 초점을 맞췄다. 닉네임 정치도사, 정치생각, 정치논리, 정치온도가 참여했다. 라이-뷰는 살아있는 정치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편집자주>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비서관이 오는 5월부터 민주연구원장직을 맡기로 하면서 정치에 복귀한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비서관의 역할론에 주목한다.ⓒ뉴시스

“양정철 비서관에게 특히 고마움을 전한다.”

문재인 대통령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책을 기획한 것도, 제목을 ‘운명’이라 정한 것도 ‘양정철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전해집니다.

 ‘대선주자 문재인’이라는 존재감은 <운명>의 출간과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민주화 운동가 문재인’, ‘인권변호사 문재인’, ‘특전사 문재인’, ‘참여정부의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문재인’, ‘노 대통령의 가치를 잇는 문재인’ 등 여러 이미지를 널리 각인시켰습니다. 

권력욕과는 거리가 멀어 한사코 현실 정치참여를 거부했지만, 운명은 그를 대선주자 자리에 이르게 했다는 메타포를 강하게 남겼습니다. 다수의 팬이 생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킹메이커 양정철’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 원장을 두고 많이들 문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이자 킹메이커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안 나서겠다는 것을 대권에 나오도록 판을 설계하고 설득해 성공시킨 이유입니다. 

하지만 요즘 문 대통령은 레임덕 위기에, 더불어민주당은 재보선 참패의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양정철 없이 치러진 선거’ 때문이 아닐까요. 여당의 재보선 참패와 관련해 양 전 원장을 중심으로 놓고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정치라이뷰' 주제입니다. 

 

1. 첫 번째 복귀


'일등공신'

2017년 장미 대선 후 “잊힐 권리가 있다”며 외유를 떠난 그(양정철 전 원장)가 다시 돌아온 것은 2019년 5월 민주연구원 원장을 맡으면서였습니다. 21대 총선을 1년 남짓 앞두던 때였습니다. 

공약을 개발하고, 이슈 보고서를 작성하고, 정책을 제안하며 선거 기간 여론조사를 통해 공천에 필요한 기본 데이터베이스와 동향과 정보 등을 제공해주는 데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는 민주당 싱크탱크의 수장이 된 것입니다. 이해찬 당시 대표의 적극 권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광폭 행보를 펼쳤습니다. ‘문재인의 복심’이자 실세로 불린 만큼 여느 싱크탱크 원장들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서훈 국정원장과의 회동을 비롯해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이낙연·정세균·임종석·이광재·김두관 등 잠재적 대선주자들을 만났습니다. 김경수 경남지사와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화기애애한 술자리 인증샷은 친문과 이 지사 간 갈등에 휴전을 가져다주는 윤활유가 돼줬습니다.

‘원팀’을 강조하는 이미지 메이킹 전략은 총선의 동력과도 같았습니다. 청와대 참모진들이 대거 출마했지만, 코드 공천 잡음 우려도 불식시켰습니다. 스펙트럼을 넓게 해 인재 영입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광진과 동작에서는 ‘고민정·이수진’이라는 정치 신인을 내보내 ‘오세훈·나경원’이라는 거물급을 상대로 빅매치를 벌여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청와대 참모진들의 감동 지원 유세 등 드라마적 전개를, 여성 판사 vs 여성 판사 대결 구도는 참신함을 안겼습니다. 

민주연구원에서 비례 정당을 따로 만드는 게 선거공학적으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기억할 겁니다. 그의 제안대로 민주당은 비례 정당을 만들었고 결과는 적중했습니다. 처음 닥친 코로나 여파로 정국이 패닉 상태에 빠져있을 때 전 국민 재난지원금 선거 공약은 정권 안정론에 힘을 실어주는 물꼬가 돼줬습니다. 

때로는 ‘한일 갈등을 일으키는 게 선거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원 내부 문건이 유출돼 파문을 낳는 등 여러 논란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그가 선거 전략을 지휘한 4·15 총선은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범여권 180석이라는 사상 초유의 숫자를 기록했습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민주당이 어렵게 되고 말 거라는 얘기는 일거에 사라졌습니다. 선거일 전 그의 예측보고서가 들어맞는 순간이었습니다. 

 

2. 전략가가 되기까지


‘여권 최고 전략’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생각해보면 친노세력이 재집권에 성공할 거라 했던 그의 십여 년 전 전망은 현실이 돼 있습니다. 부산을 중심으로 영남에서 10여 석의 유의미한 성적을 거둔다면 보수당 텃밭의 정치지형에도 변화가 올 거라고 한 바 있습니다. 민주당은 2012년 부산에서 문 대통령을 내보낸 것을 기폭제로 2016년 낙동강 벨트 공략에 집중했습니다. 영남 전체로 의석을 늘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사이 친노의 상징적 아이콘이 된 문 대통령은 친문으로까지 지지세를 넓혀갔습니다. 명실공히 제일 야당을 대표하는 가장 체급 높은 정치인으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촛불 국면에서도 반박근혜의 대척점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고 말입니다. 

2017년 문 대통령을 통해 친노는 재집권에 성공했고, 4전 연승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비아냥의 대상이던 폐족이라는 꼬리표 대신 영광이라는 이름표가 된 것입니다. 그러기까지 양 전 원장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입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여권 최고의 전략가라는 호칭을 듣게 됐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삶의 행보를 보면 왜 선거 전략에 능한지 가늠할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대 정치학과를 다녔습니다. 학생운동 시절 자민투(반미자주화 반파쇼 민주화투쟁위) 위원장을 맡아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학교 때부터 신문을 만들어왔고 1988년부터 7년간 언론 노보에서 기자로 재직했습니다.

여러 기업 홍보팀 등을 거쳐 노무현 대선후보 캠프에 합류했습니다. 청와대에서 5년간 비서관으로 지냈습니다. '양비'(양정철 비서관)라고도 불립니다. 노 대통령의 신임 속 언론정책을 총괄하며 언론 언론통폐합을 주도해 호평과 혹평을 오가기도 했습니다. 

참여정부 때부터 연이 된 문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각별해진 것은 그가 노무현재단 사무처장을 맡고서부터입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장례식 때 실무 책임을 맡았던 그는 노무현재단 설립에도 참여했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는 동안 사실상 비서로서 보좌하며 측근 3인방(이호철·전해철·양정철)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대선캠프 외곽 조직인 광흥창 팀을 주도했고, 언론을 상대로 메시지 팀을 총괄했습니다. 책 <운명>처럼 문 대통령의 비전을 담은 <대한민국이 묻는다> 역시 그의 기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두 번째 복귀?


한마디로 ‘선거를 디자인해 온 이미지 메이커’입니다. 

일각에서는 물론 과대평가됐다고 지적할 수 있습니다. 지난 총선이 어디 그가 잘해서 된 거냐, 국민이 문 대통령 보고 준 거라고 말입니다. 180석 그 이상을 얻을 선거였다는 일부 목소리도 들립니다. 

다만 그가 없는 지난 재보선은 참패했습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여파도 컸지만,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격인 김어준 따라 하다 망쳤다’는 일침도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전략 부재가 패인이 됐다는 자평도 나옵니다. 

'양정철 역할론'이 다시금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근데 그는 어디 있는 걸까요. 진짜 미국에 있는 걸까요. 지난 1월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객원 선임연구위원으로 떠난 이후 감감 무소식입니다. 

청와대 김정숙 여사와의 갈등설, 舊문 vs 新문과의 권력 대결에서 밀려난 거 아니냐, 문 대통령 눈 밖에 나 비서실장 임명에서 배제된 거다, 섭섭함을 안고 미국행을 떠났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지원설,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결탁 가능성, 이낙연 전 대표에 사면론을 제안한 장본인  등 뒷말만 무성할 뿐입니다. 

내막이 무엇이고, 무관의 이유야 어떻든 돌아올 가능성이 큽니다. 스스로 ‘전두환의 장세동’이라 비유하며 끝까지 문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각오하듯 떠났기 때문입니다. 

항명의 역설적 표시라는 해석도 있지만, 지금까지 그는 ‘히말라야 등반’ 그때처럼 문 대통령이 어려울 때 함께했던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킹메이커, 선거 전략가로 나서게 될까요. 복귀 시점은 언제일까요. 

다 떠나서, 재보선 기간 그가 있었다면 적어도 이 정도 차이는 안 났을 거라는 생각, 공감하는지요. 

이런 라이-뷰 어떤가요? 독자 여러분의 또 다른 분석 댓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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