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백신 비상…한미동맹 붕괴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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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백신 비상…한미동맹 붕괴로 가나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1.05.01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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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패권에 대응하는 對美관계 난맥
안보와 경제.백신까지 한 묶음으로 가야
백신 확보하고, 반도체도 지킬 현실적 대안을
자고 나면 뒤집히는 정부 백신 발표
北 도발·욕설 미화…정의용 경질해야
매서운 코로나19 확산세 국민들 분통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국내 코로나19 확산세가 매섭다. 코로나가 확산하는 것은 백신 전쟁에서 뒤처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선택 여지는 매우 좁아졌다. 이스라엘·영국처럼 마스크를 벗는 나라가 잇따르고 있지만, 한국은 백신 접종 순위가 100위 밖에 머물고 있다. 끝없는 거리두기로 자영업자는 생계 절벽에 섰고, 재난지원금을 줄 재원도 이제는 바닥이 났다. 다른 나라는 마스크 벗어던질 궁리를 하는데, 우리나라는 '거리두기' 단계 격상을 이야기한다. 이래저래 고통받는 것은 국민과 민생경제(民生經濟) 뿐이다.

정부는 백신 수급·접종에 대한 소모적 논쟁을 중단하자고 하지만, 이는 적반하장이다. 그동안 기다릴 만큼 기다렸는데 예정대로 백신이 안 들어오고, 백신 접종 부작용은 부작용대로 생긴 탓에 불안과 불신이 팽배했다. 누구보다 정부 책임이 크다.

이런 가운데, 백신 최대 공급원인 미국 정부가 백신 협의는 ‘반중(反中) 전선’ 성격의 쿼드(Quad) 참가국(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해외 국가들에 백신을 지원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2022년 말까지 전 세계에 최소 10억회분의 백신 접종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했는데, '전략적 모호성' 정책으로 한미 '동맹균열'을 불러온 한국은 여기서도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정부가 백신 정책에 대한 불신을 계속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진공동취재단
코로나가 확산하는 것은 백신 전쟁에서 뒤처졌기 때문이다.ⓒ사진공동취재단

‘이류 동맹’으로 전락

한미 관계는 왜 이렇게 악화되었는가. 한미동맹은 이미 미국의 ‘이류 동맹’으로 전락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 정부 친중·친북 외교의 필연적 귀결이다. 

최근 국제질서는 안보·경제를 축으로 전면 재편되는 엄중한 국면이다. 여기에 백신 공급까지 새로운 중대 변수로 추가됐다. 대한민국 생존과 국익을 위해 정교하고 유능한 외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이제라도 ‘회색 외교’를 접고 자유·인권·법치 등을 공유하는 가치 동맹을 복원, 한미 동맹 강화에 나서야 한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달린 백신 조달 문제 역시 가치 동맹을 굳건히 한 뒤에야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조되는 국민 불안을 해소하려면 흐트러진 한·미 관계부터 복원해야 한다. 안보와 경제는 물론 방역도 살리는 길이다. 외교·안보전략 전반은 물론 방역과 백신 정책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 나온 문재인 대통령의 백신 관련 발언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회의에서 ‘백신 개발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강대국들의 백신 사재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백신 개발의 압도적 선도국가인 미국을 비판한 발언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기부와 같은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한 문 대통령의 보아오포럼 연설과 대조를 이룬다. 미국을 비판하고 중국을 치켜세우는 자세가 또 한 번 드러난 것이다.

美, “안보 협력 없이는 백신도 없다”

실제, 백신 도입은 갈수록 꼬여만 간다. 정부가 미국에 ‘백신 스와프’(일단 빌려 쓰고 나중에 한국이 받을 백신으로 갚는 것)를 제안했지만,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해외로 (백신을) 보내는 걸 확신할 만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한국은 후순위로 밀릴 공산이 크다.

충분한 백신을 확보한 미국은 인접국, 쿼드 참가국, 동맹국 순으로 백신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다급하게 백신 스와핑을 하자는 우리나라의 요청에는 손사래를 친다. 북미대화 타령이나 하는 정부에 선뜻 백신을 내줄 리 없다.

미국과 국경을 접한 캐나다와 멕시코에 백신을 공급하기로 한 데 이어 일본 호주 인도 등 쿼드 참여국도 지원할 뜻을 밝힌 반면 쿼드 참여를 망설여 온 한국에 대해선 유보적 입장을 취한 것이다. 최근 속도라면 한국은 특단의 백신 확보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연내 집단면역 형성은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쿼드 참여국들과 백신 10억 회분 배분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안보 협력 없이는 백신도 없다”는 점을 미국이 분명히 한 셈이다. 백신 확보에 비상이 걸린 우리 정부로서는 여간 당황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확보했다고 밝힌 9천900만 명분의 백신 물량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9배, 집단면역 형성을 위한 접종목표 3천600만 명의 2.75배에 해당한다. 물량 자체로는 9월까지 집단면역 형성이 가능한 수준이다. 문제는 확보했다고 밝힌 백신이 제때 공급되고, 실제 접종으로 이어지느냐 하는 것이다. 추가 확보한 화이자 백신 역시 2천만 명분을 3분기부터 들여오기로 계약했을 뿐 구체적 공급 일정은 제시되지 못한 실정이다.

백신·반도체 빅딜 카드 사용을

정부는 비상수단을 발동해야 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에게는 백신·반도체 빅딜 카드가 있다. 다음 달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천재일우의 기회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백신과 반도체로 한·미 양국이 결속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는 문 대통령이 미국에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백신 협상카드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위태로운 국난의 시기다. 전 국민이 힘을 보태야 한다. 

우리 국민 10명중 7명(71.7%)은 이번 방미 시 원활한 국내 백신공급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줄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오는 5월 말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한미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한미정상회담에 국민이 거는 기대’ 인식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우리 국민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얻어야 할 가장 주요한 성과로 '백신 스와프(31.2%)'를 한일현안(21.1%), 경제(18.6%), 대북이슈(14.8%), 동맹강화(14.2%)보다 최우선적으로 꼽았다. 또 이번 방미에서 정상회담 이외에 우리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활동에 대해서 "백신공급을 위해 직접 미국 민간기업과 소통"을 첫 번째로 꼽은 비율이 71.7%에 달해 국민이 느끼는 백신 확보의 시급함이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 후진국’으로 추락

미국이 안보와 경제는 물론 백신까지 모두 한 묶음으로 보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고집하다가 한미 동맹을 삐걱거리게 했고, 미국의 ‘쿼드’ 참여 요청도 거절했다. 그래놓고 뒤늦게 백신 지원 협조를 요청하면서 ‘어려울 때 친구’ 운운하는 것은 군색한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은 얻은 게 없다. 북한 위협은 커졌고, 중국의 사드 보복과 코로나 유입으로 경제는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그 와중에 한·미 동맹은 흔들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안보, 경제, 방역 모두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한때 ‘방역 모범국’에서 ‘백신 후진국’으로 전락한 데 대해 국민이 느끼는 좌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에서 골고루 환자가 나오고 있는 것도 우려를 더한다.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해 '거리두기'를 상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민들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 정부가 백신 확보를 소홀히 한 덤터기를 국민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다.

백신의 실제 도입이 속도감 있게 이행돼야 국민 불안이 해소될 수 있다. 11월 집단면역 형성 목표를 달성하려면 백신이 계약대로 제때 들어오고 접종도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관건이다. 언제 백신이 도입되고, 언제 맞을 수 있는 것이냐는 물음이 더는 안 나오도록 정부는 확보한 백신을 제때 공급받는 데 역량을 발휘하기 바란다.

미국을 자극하는 부적절한 발언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의 역할이 한마디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우리 국민은 극도의 불안 속에서 정부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코로나 탈출의 게임체인저가 된 백신이 한국에서는 사실상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면서다. 정부는 태연하게도 11월 집단면역을 장담하고 있지만 국민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그런 주장을 믿을 만한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현실은 갈수록 암울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때 ‘물 백신’이라 조롱받던 백신의 도입을 검토해야 할 정도로 정부가 다급한 처지에 몰린 것이다.

그 뿐 아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관훈토론회에서 북한의 GP 총격에 대해 “굉장히 절제된 것”이라며 두둔하고 ‘삶은 소 대가리’‘미국산 앵무새’ 등 욕설에 대해선 “협상을 재개하자는 절실함이 묻어 있다”고 미화했다. 국가안보실장 시절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있는 것처럼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을 미혹시켜 싱가포르로 이끈 것도 모자라 이젠 북한 대변인을 자임하며 대한민국의 안보마저 허물려 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정 장관은 경질돼야 마땅하다. 

정세균 전 총리는 미국의 백신 금수조치 가능성과 관련해 “미국이 어떻게 그렇게 깡패짓을 하겠는가”라는 말까지 했다. 다음 달 한·미정상회담에서 백신 도입이 최대과제인데 미국을 공연히 자극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다. 워싱턴 정가에선 정상회담이 연기되거나 회담의제에서 백신협력문제가 빠질 수 있다는 설까지 나돈다.

백신·반도체 외교전에 이 부회장 투입을

한미 양국은 최근들어 동맹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마찰음이 잦다. 대미 외교라인과 대미전략도 실종된 상태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한 달 앞두고 미국 뉴욕타임스와 인터뷰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2018년 미·북 간 싱가포르 합의 계승을 주문했고, 중국 보아오포럼에는 미국 동맹국 중 유일하게 참석해 중국을 편드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미국 정부로선 자국의 대외정책과 엇박자를 내는 한국이 '진정한 친구'인지 의문을 가질 법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일·호주·인도 4개국 협의체인 쿼드 참여를 권유했지만 문 정부는 “요청을 받은 바 없다”며 사실상 거절했다. 정 외무장관이 2월 취임 후 첫 방문국으로 중국을 택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러니 정 장관이 “백신 스와프를 미국과 협의 중”이라고 공개한 데 이어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해도 미국은 꿈쩍 않는다. 국무부 대변인은 “사적(private) 협의”라고 함으로써 의미 있는 논의가 아니었음을 밝혔다. 외교 망신이다. 

대안이 없지는 않다. 오랜 한미동맹에서 쌓아온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백신 공급을 타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백신 특사론'은 그런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던 사실을 강조하며 손경식 경총 회장은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백신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다. 다음달 하순 열릴 한미정상회담에 이 부회장이 동행한다면 백신 확보는 물론 세계 반도체 전쟁 대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일에 정부가 민간 부문의 네트워크도 100% 활용해야 한다.

결국, 우리가 현실적으로 미국을 도와줄 분야는 미국 정부가 애태우고 있는 삼성전자의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증설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재용 부회장의 등판이 불가피하다. 재계는 물론 종교계가 이 부회장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그를 백신·반도체 외교전에 투입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나섰다. 삼성전자는 20조원 규모의 미국 반도체 라인 증설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런 규모의 투자는 최고경영자의 현장 점검과 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부회장을 풀어야 한다.

백신 지연 부작용 우려 현실화

국내 백신 대비책은 실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낸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백신 사령탑을 자처해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 화이자 백신을 대량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그후에야 “러시아 백신 도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질병관리청·식품의약품안전처·복지부·외교부·국가정보원 등 관계 부처 모두가 그동안 수수방관했다는 직무유기 고백이 아니고 무엇인가. 

코로나19 백신 확보 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뜻이니 정부만 쳐다보고 있기 힘든 상황이다. 백신 확보에 국민의 생명과 국가 경제의 미래가 걸려 있는 만큼 민간 네트워크까지 총동원해야 할 때다.

코로나 백신 지연에 대한 부작용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올 상반기 주력 백신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혈전 문제로 우리나라에서도 30세 이상 접종으로 제한한데 이어 우리나라에 600만명분이 들어올 예정인 얀센 백신까지 혈전 문제로 미국에서 접종을 중단한 상태다. 그 여파로 모더나 백신까지 우리나라에 2분기에 들어오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는데 결국 현실화된 것이다. 정부는 얀센도 2분기부터 들어오도록 계약했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도입 시기는 여전히 무소식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백신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한다.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국민들은 이미 정부의 백신 확보 전략이 실패했음을 체감하고 있는데 정부는 여전히 백신을 확보했다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미 국민들은 백신 선택권조차 박탈당했다. 정부가 확보한 것은 지속적으로 안전성 논란을 빚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뿐이어서다. 

가짜뉴스 탓 컨트롤타워 불신 가중

세계 각국에서 백신 접종 결과가 공개되면서 미국의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 안전성과 효과성 모두 가장 우수한 것으로 확인돼 지금은 웃돈을 주고도 사기 힘들다.

정부가 지난해 코로나19 백신 전략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바람에 백신 정책이 갈수록 꼬이면서 미로에 갇힌 형국이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설익은 대책을 쏟아내지만 해결은커녕 오히려 더 허우적거리는 모양새다. 신뢰 추락으로 이제는 대통령의 백신 관련 발언조차 믿기 어렵게 됐다.

한국의 백신 접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34위, 세계 111위에 불과하다. 정부는 백신 접종으로 숨질 경우 4억3000만원을 지급한다고 공언했지만 관련 예산이 4억5000만원이라니 기가 찬다. 방역당국은 백신 도입 상황과 종류별 부작용 등 관련 정보를 낱낱이 공개해 백신 불안감을 해소하고 접종 전략도 새로 짜기 바란다.

“백신 조기 확보 실책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백신 수급·접종 계획에 대한 국민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정부는 새겨들어야 한다. 제약사 탓, 가짜뉴스 탓만 하는 건 방역 컨트롤타워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킬 뿐이다. 

11월 집단면역 불안과 정부 불신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계약 위반에 대해 항의했다는 발표는 없다. 계약을 어떻게 했기에 가장 핵심인 도입 시기가 달라지는데도 정부가 항의 한번 못하나. 정부가 발표한 내용이 자꾸 틀어지니 그나마 늦은 백신 수급이 발표한 대로 들어올지, 정부가 공언해온 11월 집단면역 형성은 가능할지 불안과 불신이 커지는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20일 “미국과 백신 스와프(맞교환)를 진지하게 협의 중”이라고 내세우더니 바로 다음 날 관훈토론회에서 “미국도 국내 사정이 아직 매우 어렵다고 한다”며 꼬리를 내렸다. 정 장관의 오락가락 발언은 정부 불신만 키웠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계약이 확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추가로 상당한 물량을 확보했다”고 말해 김칫국부터 마셨다.

정부의 그릇된 인식은 과거 "해외 백신 구입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해 백신 조기 확보에 엇박자를 낸 인사를 청와대 초대 방역기획관 자리에 임명한 데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부가 계약한 화이자 백신 1300만 명분 가운데 국내에 들어온 물량은 87만5000명분에 불과하다. 모더나 2000만 명분도 도입 시기가 하반기로 연기됐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내년과 후년에 쓸 물량까지 추가 구매를 하면서 후발 주자인 한국의 백신 확보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러시아 백신 도입을 검토한다지만 유럽의약품청의 승인이 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줄타기 외교…고질적 백신 수급난 

한마디로 백신 외교는 엉망이다. 홍남기 국무총리 대행은 “지금까지 백신 도입 예정물량이 지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며 11월 집단면역 달성을 장담했다. 11월 집단면역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감염병 전문가들의 진단과 대비된다. 

정부가 백신 수급의 돌파구 없이 11월 집단면역을 외친다고 믿어줄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방역 목표 달성 실패에 대한 질책이 두려워 상황을 호도하는 것 아닌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미국에 백신 스와프를 제안했다가 퇴짜를 맞고, 문재인 대통령은 안전성이 채 검증되지 않은 러시아 백신 도입을 왜 검토하라고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백신의 생산과 유통을 쥐고 있는 미국의 도움 없이는 안정적인 백신 수급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쿼드는 코로나 위기를 맞아 미국이 백신을 개발하고 일본과 호주가 재정 지원을, 인도가 대량 생산을 맡으면서 백신 협의체로 견고해지고 있다. 지금처럼 미중 간 줄타기 외교를 고집하다가는 백신 동맹에서 소외돼 고질적인 백신 수급난에 시달려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늦어도 다음 달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까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가능한 수단 총동원해야 할 때

백신 확보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은 물론 경제 회생과도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 이제라도 줄타기 외교에서 벗어나 한미 양국 간 근본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외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국익과 가치동맹의 대미외교를 복원하지 않고선 백신 확보는 기대할 수 없다.

문재인정부는 이제라도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일본 총리는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 백신사령탑을 자처하며 화이자 백신을 대량 확보하지 않았나. 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백신 확보에 국가적 역량을 최대한 구사토록 해야 할 것이다. 

설익은 대책을 양산해 혼란과 불신을 키울 때가 아니라 정확한 백신 정보를 내놔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국정 최고책임자의 역할을 다하길 촉구한다.  

5월 말에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백신 문제를 해결할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미국이 아무런 대가 없이 백신을 내줄 리 없다. 반도체·백신 동맹을 맺든, 중국 견제를 위한 안보협의체 쿼드 등에 대한 전향적 협력을 약속하든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야 할 때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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