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환자생활⑤] 유방암 끝판왕 엄마, 신약 임상시험자였다
[슬기로운 환자생활⑤] 유방암 끝판왕 엄마, 신약 임상시험자였다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1.05.16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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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악취 심할 정도로 병증 진행
첫 진료에 곧바로 입원, 각종 검사
림프, 폐, 뇌까지 전이된 유방암 4기
탁소티어 항암 효과 커 완전 관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20여 년 전, 지방에 있는 친정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많이 아프다….”

기운 없고 가라앉아 느릿느릿한 엄마의 첫마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는 60 평생 병원 신세 진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건강한 편이었는데, 친히 아프다고 할 정도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닌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의사 친구한테 의견을 물었다. 친구는 다른 병도 그렇지만 특히 유방암은 말기로 갈수록 환자와 보호자의 고통이 심하니 적극적인 치료를 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렇다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까. 그때도 병원과 주치의 문제는 제일 큰 고민거리였다. 오가기 편리하게 집 근처 유명 S병원 외과 예약을 마쳤다.

지독한 냄새와 극심한 통증

며칠 후 큰 남동생의 에스코트로 올라온 엄마를 공항에서 만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병색이 완연하고 초췌한 모습 외에, 엄마를 감싸 풍기는 악취가 밀폐된 승용차 안을 가득 채웠다. 그 냄새는 처음이 아니고 얼마 전에도 경험한 익숙한 것이었다. 두어 달 전 동생 결혼식 장면이 오버랩됐다.

그해 봄, 막내 남동생 결혼식이 서울에서 치러져, 부모님은 전세버스 편으로 고향 친지들과 상경했다. 예식장 입구 혼주들이 하객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하고, 엄마 뒤에 우리 가족도 서있었다. 문제는 이때였다. 고운 한복을 입은 엄마한테서 나는 유난히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생선 썩는 냄새같이 너무 역해서 귓속말로 살짝 “엄마! 옷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게 좋겠어요” 했다.

물론 다른 옷도 없지만 그 상태로는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눈을 깜빡거리며 언급 말라는 듯 표정으로 내 말을 차단했다. 그리곤 결혼식을 끝내고 바로 친정으로 내려갔다, 그 후 얼마 지나 상경한 것이다. 그제야 그 이상한 냄새의 실체를 알았다. 그건 엄마 몸에서 난 거였다.

집에 도착해서도 고약한 냄새가 아파트 안에 온통 풍겨, 베란다 창문까지 다 열어젖혀도 감당이 안됐다. 거기에다 엄마는 반듯이 눕지도 못했다. 소파 등받이와 팔걸이에 쿠션을 받치고 나서야 겨우 웅크린 채 기대어 누울 수 있었다.

특히 기가 찰 노릇인 게 악취의 진원지였다. 이유인즉슨 암이 상당히 진행되면서 엄마의 왼편 가슴 암덩이가 못 참고 겨드랑이 쪽 피부로 터져 밖으로 직접 노출되면서, 진액이 나오며 지독한 냄새가 난 것이다. 그러니 통증은 당연히 심했을 거고, 엄마는 혼자 궤양 부위를 소독해 왔으며, 그 정도까지 커진 암 덩이가 신경을 누르니 반듯이 눕지도 못하게 됐다.

그해 초 내가 친정을 방문했을 때엔 그런 조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언제부터 피부 조직이 터져 냄새가 나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몇 개월 사이 급격히 나빠졌고, 동생 결혼식을 위해 상경했을 당시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한집에 엄마, 아버지 그리고 큰 동생 부부가 같이 살았지만, 친정이 동선상 넓어 엄마 혼자 식사하며 철저히 외부와 차단했던 것 같고,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자 그제야 나한테 처음 연락해 올라온 것이다.

이 기막힌 상황에 대처할 의학 지식이 필요하다 생각해 서점으로 달려갔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에 다양한 정보가 넘치고 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암 전문 책자를 여러 권 사서 수험생처럼 유방암 공부에 파고들었다.

이와 함께 무공해 식자재를 구해 먹거리를  신경 썼다. 우선 생수와 식초 희석 한 물, 또 당근 갈아 마시기를 시작으로 된장국, 야채 반찬, 생선 그리고 야채수 끓이기 등 짧은 지식을 총망라해 최대한 암 식단관리에 들어갔다. 근래 엄마는 식초든 음식은 거의 안 먹었고, 평소 물을 잘 안 마셔 필수인 습관적으로 물 마시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그 해 여름은 몹시도 지루했다. 독한 항암 치료를 견뎌내야 할 엄마나, 지켜보는 우리나 고행길에 서있었다. ⓒ정명화
그 해 여름은 몹시도 지루했다. 독한 항암 치료를 견뎌내야 할 엄마나, 지켜보는 우리나 고행길에 서있었다. ⓒ정명화

첫 외래, 바로 입원

드디어 첫 외래. 외과의사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진료의자에 앉은 엄마의 딱딱한 가슴 상태를 보곤, 이내 수화기를 들더니 혈액종양내과와 연락을 취했다. 이 상태에선 더 이상 수술이 의미 없다며 혈종내과로 전원, 진료 첫날 바로 입원시켰다.

그렇게 긴박하게 돌아가자 엄마 입원 후 혼자 너무나 막막해 외사촌 오빠한테 소식을 전했다. 연락 받자마자 병원으로 와 주치의를 만나고 온 오빠는 S병원 개원한 이후로 저 지경이 돼서 온 유방암환자는 처음이라더라 하며 엄마 상태의 심각성을 확인시켰다.

처음 혈액종양내과 의사는 엄마 혼자 사냐고 물었다. 어찌 보호자들이 모르고 이제야 병원에 왔냐는 것이었을 거다. 회진 때 주치의와 함께 수련의, 학생 등 무리들이 따라왔는데, 냄새로 인해 다들 병실에 들어서기 힘들어했다. 보다 못한 주치의는 방향제나 냄새 제거제를 두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엄마가 언제부터 암이란 걸 알았는지 모르나, 병원 대신 혼자 지리산 쪽 한의원에 다녔다고 한다. 주변에서 알까 봐 쉬쉬했고, 무엇보다 그 당시 남동생 둘 다 미혼인 데다 사업체는 크게 벌려 논 상태라, 엄마는 본인이 잠시도 집을 비울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게다가 나 역시 멀리 떨어져 살고, 한창 자녀 양육과 가정사에 바쁘니, 부담 줄까 봐 자신의 병세를 미리 알리지 못했던 것이다.

가정주부이자 엄마라는 위치는 중병이 들어도 자신의 건강보다 챙기고 배려할 사항이 많은 게 현실이다. 모두 다 그럴까 만은 그렇더라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며칠만 입원해 수술이라도 했으면 급한 불은 껐었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데 한의원에서 치료받던 엄마는 겨드랑이 림프 멍울을 확인하곤 절망했다고 한다. 한방 치료로 암이 줄기는커녕 전이가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다음부터는 아예 손을 놓고 방치해 갈수록 심해진 거 같다. 지금도 그 당시를 회상하면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한다.

요즘도 간혹 병원 표준치료를 거부하고 처음부터 자연치료다 뭐다 하며 다른 치료적 접근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공적이기보다 더 악화되어 결국 병원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러므로 첫 치료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게 매우 중요하다.

탁소티어 신약 임상 결정

모든 검사가 끝나고 결과가 나오자 의료진은 임상시험을 권유했다. 미국 FDA 승인을 받은 ‘탁소티어’란 항암제가 있는데, 아시아 폐암환자들을 대상으로 효능을 연구 중이라 피험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다양한 부작용이 있고, 주기적으로 체크하면서 주사약은 물론이고 매번 CT와 함께 온갖 검사가 무료로 진행되며, 계속 정기적으로 관리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신약이 국내에서 승인된 것이 아니라 연구대상이니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였는데, 엄마는 먼저 그 치료 안을 수락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피험자를 자청하며, 그토록 위중한 상태에서도 절대 암한테 안 질 거라고 큰 소리를 탕탕 치면서 말이다. 결국 남동생 둘이 동의서에 서명하면서 임상에 들어갔다.

치료 스케줄은 3주에 한 번씩 9회 차 시행키로 했다. 그때 한 회차에 다른 항암제(아드리아 마이신) 먼저 맞고 이어 ‘탁소티어’를 주사하기로, 아마도 그 당시 유방암 치료제로 가장 강력한 처방이었을 거다. 보통은 한 가지 몇 회차 먼저 맞고 치료제를 바꿔 다음 회차에 이어 지는데, 독한 두 가지 약제를 동시에 맞을 정도로 심각했던 것이다. 물론 최선의 선택이었던 거고, 그 약이 세월이 흐른 지금 ‘도세 탁솔’이라고 불리는 표준치료 약제로 쓰인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보통은 외래 후 첫 치료 시행 때까지 기본 한 달 이상 시간이 소요되지만, 엄마는 완전 응급환자이니 첫 외래 날 바로 입원해, 온갖 검사, 결과 나오고 케모포트 심고 첫 항암 후 퇴원했다. 항암 후 백혈구 수치가 떨어질 것이고 그러면 열이 오를 수 있으니 심하면 반드시 응급실로 오라는 주의사항과 교육을 받고서였다.

부작용 심해 항암 치료 거부

그 해 여름은 몹시도 고통스럽고 지루했다. 항암 주사를 맞고 퇴원한 엄마는 식사는 거의 못하고 밥 삶아서 국간장만 달라며 2주 차까지 거의 누워 끙끙 앓았다.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무서운 항암 치료를 견뎌내야 할 엄마와 그 걸 지켜봐야 할 우리나 모두 숨 막힐 지경의 고행길에 서있었다. 물이라도 마셔야 한다는 나의 권유에 엄마는 생수만 겨우 마셨다. 계속되는 구토와 탈모, 하루 종일 누워서 앓는 모습은 나에게 고문 같았다.

한편, 항암 치료 부작용인 백혈구 수치 유지를 위한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했는데, 참고서적과 함께 환자 보호자들과 정보를 공유했다. 단백질 보충을 위해 추어탕, 장어국, 전복죽뿐만 아니라 잉어 삶은 물, 유황 오리탕 등 몸보신 음식에 계란 북엇국도 추천 메뉴였다. 다행히 3주 차부터는 상태가 호전되어 식사가 어느 정도 가능했기에, 계란찜 같은 단백질이 풍부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메뉴 위주로 식단에 올렸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짜장면을 먹고 싶다고, 나는 그 기름 범벅은 절대 안 된다고 말렸다. 막냇동생이 와서 그 장면을 보고 너무 하는 거 아니냐며 속상해했다. 암 투병과정에서 환자도 힘들지만 보호자 가족들도 불안하고 예민해져, 치료 방향 의견차 등 갈등이 야기될 수도 있다. 그 당시 나는 마음만 급했지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엄마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도리어 항암 때도 철저히 식이요법을 지켜야 한다고 원칙을 고수해, 밀가루 음식과 기름지거나 당분이 많고 나쁘다고 판단한 음식은 배제시켰다. 대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억지로 먹으라고 강요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지나쳤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에 시달리던 엄마랑 여러 번 다투기까지 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엄마는 나의 성의를 생각해 웬만하면 권하는 음식을 받아들였다.

그러다 항암 2회 차 후,  더 이상 항암주사를 못 맞겠다고, 부작용에 견디기 힘드니 항암치료를 거부했다. 엄마는 자신이 림프까지만 전이된 거 아니냐며, 2회 차 맞고 효과가 있어 림프 부위는 만져지지 않으니까 더 안 맞아도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무슨 소리냐, 끝까지 맞아야 된다고, 난 결코 물러설 수 없었다.

사실 입원 당시 회진 때, 담당 주치의한테 레지던트가 영어 의학 용어를 섞어가며 엄마 검사 결과 보고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다. 의료진이 우리한테 직접 소상히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난 어느 정도 알아듣는 용어도 있어 전이정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물론 굳이 직접 묻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미 너무나 확연히 드러난 심각한 병증에 세세한 전이 여부는 의미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완전 관해로 항암 치료 성공적, 그러나…

상세한 전이상태는 원발 유방 커다란 암덩어리 존재에 더해 겨드랑이 림프절은 물론, 폐에 두껍게 막이 형성, 그리고 심지어는 뇌 전두엽(Frontal lobe)에 까지 암세포가 가 있는, 유방암 4기였다. 처음엔 엄마한테 얘기 안 했지만, 항암치료 거부를 하니 하는 수 없이 폐 전이 상태라서 처음 계획대로 9회까지 맞아야 한다고, 강권하다시피 설득했다.

이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승복했고, 3회, 4회 차, 물론 40도 가까운 고열로 2~3번 응급실행을 하고 엄청난 부작용에 시달렸어도, 매 항암 후 3주 차 땐 식사를 꾸준히 했고 9회 차까지 항암이 밀린 적은 없었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백혈구 수치가 적정 이하로 떨어지면 주사를 계획대로 못 맞고, 어느 정도 회복돼야 다음 항암 회차가 진행된다.

그렇게 항암 3, 4회 차를 넘기면서 돌덩이 같던 종양은 점점 말랑말랑해져 보통의 유방 형태로 돌아오고, 어느 날부턴가 반듯이 누워 잘 수 있었다. 또한 이상한 냄새도 종적을 감추고, 터져나간 유방의 상처는 꼬들꼬들 마르며 아물어갔다. 참 놀랍게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따라서 마지막 회차 항암 전에 실시된 CT와 피검사상, 암세포는 거의 사라져 모든 수치는 정상으로 회복됐다. 엄마에게 신약인 ‘탁소티어’, 즉 ‘도세 탁솔’의 효과는 대단했다. 방사선 치료까지 끝난 후 드디어 의료진이 더 이상 암세포는 보이지 않는다고 통보하는 때가 왔다. 흔히들 완전 관해라고 한다.

그러자 나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고, 엄마는 친정에서 정기적으로 외래 검진을 다녔다. 그러다 보면 긴장이 풀리고 안이해지는 거다. 나 역시 엄마의 병에서 멀어져 별일 없겠지 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또다시 친정에서 날 급하게 찾는 연락이 왔다. 이번엔 어떤 경천동지 할 일이 우릴 기다릴지….

<다음 편에 계속>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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