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정판·품절 꼼수, 추락하는 소비자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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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정판·품절 꼼수, 추락하는 소비자주권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05.14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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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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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간 유통가 마케팅 전략의 대세는 '한정판·품절 마케팅'이다. 과거에는 일부 명품 브랜드 제품, 또는 몇몇 굿즈 상품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요즘 들어서는 규모 불문 수많은 기업에서 이 같은 전략을 펼치고 있다. 노이즈 마케팅 의혹이 불거진 한 제과업체의 성공 사례가 그 시발점이라는 분석이 있지만, 이제는 꼭 그렇게만 보기 어렵다. 희소성과 소장 가치를 내세워 구매심리를 자극하는 한정판·품절 마케팅 효과가 코로나19 사태 속 보복소비와 더해지면서 극대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리셀 붐도 일고 있다. 생산업체와 유통업체 입장에서 한정판·품절 마케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셈이다.

하지만 심각한 부작용도 눈에 띈다. 바로 '소비자주권' 추락에 따른 소비자 피해다. 한정판·품절 마케팅이 무분별하게 쓰이다 보니, 꼭 물량을 한정해 내놓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상품을 굳이 '한정판'으로 출시하고, 생산 여력이 있거나 재고가 있는 제품임에도 '품절대란'이라는 문구를 앞세우는 경우가 종종 목격된다. 이는 마케팅이 아니라 '꼼수'다. 이 같은 꼼수가 확산된다면 시장의 수요와 공급 법칙에 균열이 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생산자에 비해 소비자가 재화·서비스의 질과 양,  그리고 가격을 결정하는 권한을 더 많이 갖게 되기 마련인데, '한정판·품절 꼼수'가 판을 치면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에게 그 권한이 더 부여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주권이 추락하면 생산자들은 더 저렴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다. 똑같은 제품에 디자인만 좀 바꿔서, 맛과 향만 좀 바꿔서 한정 출시하거나, 셀럽과 인플루언서에 비용을 들인 뒤 품절 임박(사실 품절되지도 않았는데)이라는 식으로 꼼수를 부리면 된다. 가격도 고가에 책정할 수 있다. 그 피해는 모두 소비자들에 돌아가며, 나아가 생산자들도 어느 순간부터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시쳇말로 노가 나는 건 대형 유통업자들뿐이다. 이는 제품의 성격에 따라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팬데믹 직후 터진 마스크 대란이다. 더 생산할 수 있음에도 생산하지 않거나, 재고가 쌓여 있음에도 물건을 시장에 내놓지 않고 품절됐다며 거짓말을 한 일부 몰지각한 생산·판매자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곤욕을 치렀는가.

문제는 한정판·품절 꼼수를 응징할 만한 마땅한 방법이 없다는 데에 있다. 아무리 꼼수가 의심돼도 민간기업 소유 공장이나 창고를 맘대로 털 순 없다. 민간기업이 제품을 한정판으로 출시하겠다는데 막을 도리도 없고, 품절대란을 허위과장광고로 판단하기도 어렵다. 내부고발자나 소비자의 폭로 후 사후조치는 할 수 있어도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등에서 예방·방지 대책을 실행에 옮기기 힘든 사안이다. 결국 현 시점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소비자들이 알아서 이 같은 꼼수에 철퇴를 내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현실은 좀 다른 것 같은데 아무튼 헌법에는 그렇게 명시돼 있다. 현대 시민사회에서 주권은 신이 부여하는 것도, 정부나 특정 세력이 부여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찾아야 한다. 금이 가거나 빼앗긴 주권을 회복하는 것도 그렇다. 소비자주권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소비자 한사람 한사람이 스스로 추락한 소비자주권을 다시 세우고, 스스로 제고해야 한다. 소비자가 한정판·품절 꼼수를 응징하는 합리적인 소비문화가 조성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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