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죄송하지만 당분간 그 두부 못 사먹겠습니다’
[시사텔링] ‘죄송하지만 당분간 그 두부 못 사먹겠습니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06.04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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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1. 운전자 A씨는 2017년 10월 차량을 운전하던 중 운전자 B씨가 자신의 진행 방향으로 끼어들어 사과도 하지 않고 그대로 갔다는 이유로 B씨의 차량을 추월한 후 그 차 앞으로 급하게 차로 변경해 B씨 차량 앞부분을 자신의 차 뒷부분으로 들이받는 보복운전을 했다. 1심 법원은 A씨가 위험한 물건인 차량을 이용해 B씨에게 2주 간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가했다고 판단, 특수상해와 특수손괴 혐의에 대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80시간을 명했다.

#2. 운전자 C씨는 2018년 3월 경부고속도로에서 운전자 D씨와 끼어들기 문제로 시비가 붙었다. C씨는 D씨가 모는 차량 앞을 가로막고 급제동하거나 중앙분리대 쪽으로 밀어붙이면서 보복운전을 했고, 이 과정에서 접촉사고가 발생하자 C씨는 차에서 내려 D씨를 폭행했다. C씨는 재판 전 D씨와 합의했음에도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3. 운전자 E씨는 2018년 6월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해 진행하던 중 운전자 F씨의 화물차가 자신의 차로를 침범해 운행했다는 이유로 F씨 차 바로 앞에서 속도를 급하게 줄이는 보복운전을 단행, F씨 차를 급제동시켜 그에게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혔다. 1심 법원은 E씨에게 특수상해 혐의를 적용해 징역 8월을 선고했다.

#4.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는 사고 내용과 피해 정도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건전한 양식에 비춰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교통사고를 일으킨 운전자가 자신의 인적사항이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은 채 사고 후 즉시 차량을 운전해 현장을 벗어나는 경우 도주의 운전 자체는 물론, 이를 제지하거나 뒤쫓아 갈 것으로 예상되는 피해자의 추격 운전으로 또 다른 교통상의 위험과 장애가 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조치를 다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뺑소니로 타인의 재산에 피해가 발생한 경우 보상하지 않고 현장에서 도주한 이상 도로교통상 위험 발생 여부와 상관없이 사고후미조치 혐의는 성립될 수밖에 없다.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전부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토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대법원 2017도15651).

앞서 열거한 사례에서 보듯 우리 사회에서 보복운전에 대한 처벌은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보복운전으로 사고를 유발하거나, 보복운전 후 상대 운전자에게 폭행 등을 가했을 경우에만 징역형을 선고하는 게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단순 위협운전 또는 보복운전으로 인해 경미한 사고가 났을 때에도 집행유예가 아닌 징역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했음에도 말이죠. 보복운전을 보다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처럼 보복운전에 대해 날로 예리해지고 있는 사정·사법당국의 칼날이 오랜 만에 다시 무뎌졌습니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은 보복운전을 한 후 차에서 내린 피해자를 차량으로 친 혐의로 기소된 구본성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구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차량을 운전하던 중 바로 옆 차선에서 진행하던 차량이 앞으로 끼어들자 해당 차량을 추월한 뒤 급정거해 자신의 차 뒷부분으로 상대방 차 앞부분을 들이받았습니다. 아울러 그는 사고 발생 후 아무 조치 없이 현장에서 도주했으며, 이를 추격한 피해자가 차에서 내려 '경찰에 신고했으니 기다리라'고 하자, 피해자의 몸을 차로 쳐 상해를 입히고 또다시 도주했습니다.

재판부는 "구 부회장이 범행을 자백했고, 차량 블랙박스와 폐쇄회로(CCTV) 등을 종합하면 유죄가 인정된다. 구 부회장의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피해 정도도 무겁지 않아 보이며, 피해자와 원만하게 합의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 실형을 선고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는데요. 이전 판례와 정반대되는 판시입니다. 앞선 사례2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에 이르렀음에도 가해자에게 징역형이 선고됐고,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례3에서도 급정거 보복운전으로 상해를 입힌 운전자에게 징역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입니다. 보복운전에 두 차례 뺑소니, 그리고 '위험한 물건'인 차량으로 상해까지 입힌 가해자에게 사실상 면죄부인 집행유예를 줬으니까요. 

심지어 검찰은 뺑소니 혐의에 대해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4일 보도된 〈중앙일보〉 기사를 살펴보면 당초 경찰은 구 부회장이 차량을 급제동시켜 상대 차량과 충돌시킨 1차 사고만으로도 피해자 상해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특가법상 도주치상죄(뺑소니)를 적용했습니다. 하지만 기소 검토 단계에서 검찰은 '교통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하고 도주해야 특가법을 적용할 수 있는데 피해자 상해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뺑소니 혐의를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검찰은 구 부회장이 피해자를 차로 들이받고 도주한 2차 사고 역시 뺑소니로 보지 않았습니다. 실수(과실)가 아니라 의도적(고의)으로 사고를 낸 경우에는 뺑소니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글쎄요. 앞서 사례4에서 소개한 대법원 판례와 같이 최소한 1차 대물사고에 있어서는 '사고후미조치' 혐의를 적용할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요. 재판부의 말처럼 '구 부회장의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 설사 처벌의 실익이 크지 않더라도 보복운전과 뺑소니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릴 필요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죠. 오히려 사법부는 이번 판결로 아무리 보복운전과 뺑소리를 해도 피해 정도가 무겁지 않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면 감방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우리 사회에 준 셈입니다. 물론, 단서 하나를 달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해자가 재벌 대기업 창업주 손자여야 한다'는 단서를.

ⓒ 아워홈
ⓒ 아워홈

구 부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날 저녁, 퇴근길에 마트를 들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된장찌개에 넣을 두부를 사기 위해서였죠. 평소와 마찬가지로 즐겨 먹던 두부 하나를 집었습니다. 수제 두부나 CJ제일제당, 풀무원 등 다른 업체에 비해서 맛은 좀 떨어지지만 가격이 너무 착해서 고르는 두부였습니다. 저 같은 박봉 직장인에게는 정말 고마운 제품이죠. 아마 주방 살림하시는 분들은 다들 알 겁니다. 타사 제품은 할인해도 1000~1200원대인데, 유독 그 제품은 항상 800원대에 판매되더군요. 아무 생각 없이 두부를 들고 계산대로 향하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습니다. 손에 들린 두부를 쳐다봤습니다. '아워홈 즐거운 요리두부 찌개용'. 내려놓고 대신 비싸지만 맛이 좋은 손두부 한 모를 비닐에 넣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에게 두부를 먹이는 풍습이 있죠. '하얀 두부처럼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깨끗하게 살아라', '콩이 두부로 변해 전혀 새로운 음식이 되는 것처럼 새 사람이 되라' 등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대표이사님께서, 아니 전(前) 대표이사님께서 거하게 싼 똥을 치우느라 고생하시는 아워홈 임직원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지만 앞으로 당분간, 적어도 2년 정도는 그 두부 못 사먹을 것 같습니다. 두부의 의미를 더럽히고 싶지 않습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유통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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