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경제] 조청상민무역장정과 미중 무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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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경제] 조청상민무역장정과 미중 무역전쟁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06.06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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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조선 상인 비참한 최후 잊어서는 안 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구한말 조선 상인들의 비참한 최후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청의 속국 거부를 상징하기 위해 세워진 독립문(사진 좌)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 우) 사진제공=뉴시스
구한말 조선 상인들의 비참한 최후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청의 속국 거부를 상징하기 위해 세워진 독립문(사진 좌)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 우) 사진제공=뉴시스

18~19세기는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광풍이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 희생물은 근대화에 무지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후진국들이었다. 심지어 중국과 인도와 같은 아시아 대국들도 자만심에 빠져 서구 제국주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특히 청은 중화주의의 덫에 걸려 근대화라는 시대 정신을 깨닫지 못하고 책봉=조공 체제에 안주했다. 청은 영국의 사신을 맞이할 때도 조공국으로 대우했다. 영국은 이미 인도를 유린한 제국주의 침략국의 에이스였는 데도 말이다. 

결국 청은 영국의 간계에 빠져 아편전쟁의 수모를 겪으며 강제 개항했다. 청은 잠자는 사자가 아닌 병든 돼지였다. 수도 베이징까지 함락되는 등 근대화에 무지했던 역사적 과오의 죄값을 톡톡히 치렀다. 서구 열강들은 청의 이권 침탈에 여념이 없었다.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은 청에서조차 구닥다리가 된 성리학 절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해 중농억상의 경제정책을 고수하고 있었다. 주로 청나라와 일본과 무역을 했지만 청의 절대적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임진·병자 양난 이후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민간 상공업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문제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미국 페리제독의 함포외교에 굴복, 강제 개국으로 700여 년에 걸친 막부체제를 종식했다. 일본이 개항하자 영국과 프랑스 등 다른 열강들도 야수같이 달려들었다. 일본은 서구제국주의의 경제침략을 당하면서도 이를 교훈삼아 제국주의 학습에 나섰다. 자신을 침략한 제국주의 열강에 유학생을 대거 파견해 서구문물을 적극 수용했다.

마침내 일본은 아시아 최초의 근대화 국가가 됐다. 자기가 당한 만큼 되갚아 주고 싶었다, 만만한 상대가 있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골육상쟁으로 ‘나라 같지 않은 나라’가 된 조선이었다. 근대화는커녕 오로지 권력쟁탈에 목숨을 건 무지한 위정자들이 판을 치는 조선이 첫 타깃이 됐다.

일본은 미국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운요호 사건을 일으켰다, 예상대로 조선은 자중지란에 빠졌다. 결국 조선은 일본의 요구대로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을 맺었다. 일본 상인들이 조선 상권을 유린했다. 

조선의 종주국 청은 일본의 행태에 기가 막혔다. 조선은 청의 영원한 조공국인데 감히 섬나라 오랑캐 일본이 설쳐대는 꼴이 보기 싫었다. 호시탐탐 전세 역전의 기회를 노렸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며느리에 쫓겨난 시아버지가 다시 권력을 잡았다. 임오군란이 터진 것이다.

나쁜 며느리는 못난 시아버지에게 복수하고자 청에게 손을 내밀었다. 청은 곧바로 군대를 파견해 시아버지 대원군을 압송했다. 나쁜 며느리 민비가 다시 권력을 잡았다. 청에게 큰 빚을 진 민비는 뭐든지 해줘야 했다. 청은 일본에게 빼앗긴 조선의 상권을 회복해야 했다. 이른바 ‘조청 상민 수륙무역 장정’이 체결됐다.

<고종실록> 고종 19년 10월 17일 기사를 보자.

“조선은 오랜동안의 제후국으로서 전례(典禮)에 관한 것에 정해진 제도가 있다는 것은 다시 의논할 여지가 없다. (중략) 이번에 제정한 수륙 무역 장정은 중국이 속방(屬邦)을 우대하는 뜻이며, 각국과 일체 같은 이득을 보도록 하는 데 있지 않다.”

한 마디로 청의 특혜를 주겠다는 항복선언문이다, 오히려 이번 조약은 중국이 속방인 조선을 우대한다는 데 감읍할 따름이라는 굴욕적인 사대주의의 극치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청 상인은 내륙통상권과 연안무역권을 인정받아 조선 상권을 마음껏 유린하게 만든 불평등조약이었다.

결국 조선은 청과 일본의 경제침략의 대결장이 됐고, 죽어나는 것은 조선 상인들이었다. 사대주의에 기댄 위정자들은 조선 상인들의 피맺힌 절규를 외면하고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로 분열돼 권력쟁탈전에 혈안이 됐다. 

무능하고 부패한 조선 위정자들이 경제를 포기하자 조선 상권을 놓고 기존 종주국 청과 신흥 강국 일본의 경제침략이 본격화됐다. 일본도 청의 반격에 맞서 후일을 도모했다. 결국 청일 경제전쟁은 훗날 청일전쟁이 발발하는 한 원인이 됐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미국과 도전자 중국이 세계 패권을 놓고 국운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신의 GDP 40%를 위협하는 도전자를 철저히 제거했다는 분석이 있다. GDP 40%선은 미국이 용납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라는 주장이다. 일본은 플라자 합의로, 구 소련은 무한 군비전쟁으로 굴복시켰다. 소련의 경우에는 아예 국가가 해체되는 굴욕의 길을 걸었다. 그만큼 챔프 미국의 도전자 제거는 냉혹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이 GDP 40%선을 위협할 무렵 글로벌 금융위기로 제대로 대처를 못했다. 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최우선주의와 양적완화로 기력을 회복시켰고 중국의 도전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았다. 이에 시진핑도 중국몽을 내세워 미국에 맞서고 있다.

특히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내걸자 미국도 반도체 동맹을 구축해 대응하고 있다. 하필 이 중심에 반도체 강국 한국기업들이 있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으로 미국 반도체동맹에 동참한 한국기업들은 중국의 반격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혹시라도 중국이 제2의 사드보복에 나설 경우 ‘차이나 리스크’가 재점화될 가능성이 놓다. 중국이 언제라도 제2의 조청상민무역장정처럼 종주국 행세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전쟁 최전선에 서 있는 반도체 기업들이 애꿎은 희생자가 돼서는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이 총력전을 벌이듯 우리도 국가적 차원에서 반도체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은 제2의 청일전쟁이 될 수 있다. 구한말 조선 상인들의 비참한 최후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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