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또 건설현장 ‘인재’…정부, 건설업 규제 완화 기조 시정해야
스크롤 이동 상태바
[기자수첩] 또 건설현장 ‘인재’…정부, 건설업 규제 완화 기조 시정해야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06.10 1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지난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돼 지나가던 버스를 덮쳤다. 119 소방대원들이 무너진 건축물에 매몰된 버스에서 승객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 뉴시스
지난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돼 지나가던 버스를 덮쳤다. 119 소방대원들이 무너진 건축물에 매몰된 버스에서 승객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 뉴시스

또다시 후진국형 인재다. 지난 9일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 건설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도로 쪽으로 붕괴돼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해당 차량에 타고 있던 시민 9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가 터진 것이다. 이런 사고는 요즘엔 후진국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 참으로 원통하고 안타까운 희생이 발생했다.

원청업체인 HDC현대산업개발은 즉각 머리를 숙였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사고 직후 직접 광주를 찾아 "이번 사고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 사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의 피해 회복, 조속한 사고 수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전사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사죄했다. 그럼에도 여론은 싸늘하다. 수많은 시민들이 허망하게 귀중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직 중대재해법 시행 전이지만 정 회장과 권순호 HDC현대산업개발 사장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이번 사고 책임을 모두 원청사에게 묻긴 어렵다. 물론, 안전관리 소홀, 하도급 최저가 낙찰 등 앞으로 조사 결과를 지켜볼 문제가 많으나 아직까지는 HDC현대산업개발보다는 해당 현장 철거 작업을 맡은 하청업체인 한솔기업의 책임이 커 보인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참사가 발생한 현장은 붕괴 위험이 있음에도 안전장치 따위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으며, 사고 당시 재개발조합이 선정한 감리업체에서 감리자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총체적 난국이다.

한솔기업은 일부 매체에서 광주 지역 중소업체라며 잘못 보도하고 있는 것과 달리, 2006년 설립 등기된 철거 분야에서 나름 업력이 있는 서울 소재 회사다. 키스콘과 대한전문건설협회 자료를 살펴보면 한솔기업은 2008년 6월 강서구에서 비계구조물 해체 공사업 등록 면허를 취득했으며, 2019년 기준 구조물해체로만 108억5707만 원의 공사실적을 내기도 했다. 또한 현재 한솔기업은 기능사 5명, 건설기술자 고급 1명, 초급 1명 등 총 7명의 기술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비계구조물 해체 공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건축부문 인원은 5명이다. 비계구조물 해체 공사업은 최소 2인 이상의 기술자가 상시근로해야 영위할 수 있는데 5명이나 있으니 꽤 넉넉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업체가 왜 후진국형 참사를 냈을까.

정부여당은 건축물을 해체할 시 전문가로부터 검토를 받은 해체계획서를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해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건축물관리법을 제정,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다. 해체계획서대로 철거가 이뤄지는 현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도 마찬가지였다. 계획서에 명시된 그대로 철거 작업이 수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포착됐고, 감리자도 없었다. 일선현장 관리·감시·감독 없는 법은 무용지물이다. 애초부터 법을 잘 만들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참사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욱이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현장과 같은 소규모 현장에서는 마땅히 배치돼야 할 인력이 부재하고, 서류상 책임자와 실제 관리자가 다르거나 아예 책임자가 없는 경우도 많다. 원 업체가 면허를 불법대여해 전혀 다른 회사에서 철거하는 사례 역시 종종 발생한다. 이번 사건에서 재하도급 의혹이 불거지고, 원청의 해명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여전한 것도 이런 일들이 업계에 만연해서다. 업체들의 고의·과실, 법망의 허술함 등으로 인해 잊을만 하면 인재가 터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되레 정부는 최근 들어 건설업과 관련된 여러 규제를 완화 중이다.

정부는 2019년 건설업 자본금 등록기준을 하향 조정해 진입장벽을 낮춘 데 이어, 지난해에는 '건설비전 2040' 로드맵을 통해 건설업 업종 개편 계획을 밝히면서 동일 대업종 내 주력분야를 추가할 경우 추가 자본금과 기술자 보유 요건을 면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같은 해 5월부터 외국인노동자, 중국동포 등이 건설기능사 자격 취득 시 장기 체류 가능한 F4 비자를 발급하는 제도도 시행했다. 종목별 차이가 있으나 기능사 자격시험은 현장 경험이 전무해도 일주일 정도 준비하면 통과 가능하다. 일례로 비계기능사는 3~4일만 준비해도 충분하다고 한다.

그 결과 새로 등록된 면허 수와 건설업 등록 수가 단기간에 증가했으며, 그만큼 업체간 수주 경쟁이 치열해져 저가 낙찰도 늘었다. 아울러 장기 체류 비자를 받기 위해 기능사 자격을 따는 외국인노동자, 중국동포들이 급증하면서 기술인력 역량과 공사 품질·안전 저하에 대한 우려가 깊어진 실정이다. 

건설현장은 전쟁터와 같다. 특히 안전관리에 있어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 항상 최악을 가정하고 대비해야 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건설업 규제 완화 정책 기조를 재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