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광화문 광장은 밥풀이 이마에 붙어 있는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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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광화문 광장은 밥풀이 이마에 붙어 있는 격"
  • 박지순 기자
  • 승인 2010.01.11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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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석학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인터뷰

지난달 22일 서울 태평로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75)을 처음 봤다. 이 전 장관을 인터뷰하기 위해 약속된 시간인 오전 11시보다 50분 정도 일찍 연구소에 도착해서 연구소 직원이 타준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는데 10시 30분 경 이 전 장관이 들어 왔다.

외투부터 벗는 이 전 장관의 모습은 70대 중반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몸의 움직임이 건강해 보였다. 기자가 인터뷰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 전 장관은 연구실의 한 방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방송에서만 듣던 그의 목소리가 회의실 밖으로 쩌렁쩌렁 울려 나왔다. 회의인지 강의인지 구분이 안 되는 듯 이 전 장관의 목소리가 주로 들려왔다.

11시에 잡혀 있던 인터뷰는 30분 늦게 시작됐다. 연구소 직원으로부터 이 전 장관의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인터뷰를 일찍 끝내 달라는 언질을 들었던 터라 준비한 모든 질문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듯했다.

이 전 장관의 화법은 기자를 좀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다. “그런 질문은 실례”라고 말하거나  기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답답하네”라고 그때 그때의 감정을 표출했다.
 
그러나 질문은 눈을 지그시 감고 듣고 답변은 막힘없이 내 놓는 이 전 장관에게서 우리 시대 최고의 석학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광화문광장을 "밥풀이 이마에 붙어 있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연구소 바로 근처에 광화문 광장이 있습니다. 서울시가 전시행정으로 광화문 광장을 꾸몄다는 비난이 가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있어야 할 곳에 있는가’를 따져 봐야 합니다. 적재적소에 위치하고 있느냐를 말하는 것이지요. 밥풀이 이마에 붙어 있으면 보기 싫지요. 밥이 아무리 맛있어도 밥은 입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광화문은 본래 육조 거리로 국가의 상징적 장소입니다. 광장이 아니라 넓은 도로여야 합니다. 지금은 광장이 만들어지면서 도로 중앙이 분리된 모습이 됐는데 ‘기형적’ 형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본래 계획은 차가 다니지 않는 광장으로 조성하려고 했다가 여러 사정으로 도로 중앙에 광장을 만드는 편법을 쓴 것으로 압니다. 서울시의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전에 광화문 광장을 보니 젊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화기애애한 축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광화문 광장을 잘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사물은 태어나고 성장하는 법입니다. 청계천도 처음에는 떠들썩하지 않았습니까. 광화문광장이 ‘보여주는’ 역할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각종 이벤트를 열고 몽골 텐트가 쳐지고 스노우 보드가 설치된 현재의 상황은 조잡하고 뒤범벅이 된 초기 혼란이라고 봅니다.
 
음식도 부글부글 끓다가 안정이 돼서 식는 것처럼 광화문광장도 시행착오를 거치며 ‘끓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아마 내년 쯤 되면 ‘세틀 다운(settle down)’ 돼서 디자인 감각도 살아나고 육조거리의 풍모를 되찾을 것으로 봅니다.”
 
친일 논란 문인들의 문학작품은 독립적으로 이해해야

-광장 옆 끄트머리에 판석으로 1392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그해 가장 중요 사건을 기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대기를 보면서 최근 친일인명사전 발표로 일고 있는 친일청산문제가 떠올랐습니다. 문인이기도 한 이 전 장관께서는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친일 문인들의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 질문은 나에게 실례입니다. 이미 다 했던 얘기거든요. ‘이광수 전시회’를 제일 먼저 연 것이 나입니다. 문학작품은 독자들이 판단하는 겁니다. 살아 있는 사람도 재판이 3심까지 있는데 죽은 사람을 어떻게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판단한다는 겁니까?
 
이광수 전시회를 연다고 하니까 친일인사를 옹호하는 것이냐며 나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내가 의도한 것은 이광수의 문학작품을 젊은이들에게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한용운도 ‘시인 한용운’과 ‘애국자 한용운’이 있지요. 시인과 애국자는 별개예요. 서정주가 친일을 했다고 해서 그의 시까지 폄하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문학은 그 자체로 봐야하는데 친일과 관련시킨다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읽고 감동받은 사람들이나 홍난파의 ‘봉선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 친일파라는 말도 성립될 수 있겠지요. 문학의 독립성을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 미국의 시인으로 ‘시인의 시인’으로 불림)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반미 운동에 나섰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역적’이지만 시인으로서의 그는 절대적인 위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문학을 정치와 관련시킨다면 에즈라 파운드는 영미 시사에서 매장 당했을 겁니다.”
 
일제 식민정책의 가혹함 고려하지 않는 것은 일제에 면죄부 주는 꼴

-일제 치하에서 절필하거나 끝까지 친일을 거부한 문인들도 있지 않습니까.

“일제의 식민정책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들의 악랄함을 논하지 않고 문인들의 친일을 비난하는 것은 일제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입니다.”

▲ 문학은 정치와는 독립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 시사오늘 권희정

-이 전 장관께서는 초대 문화부장관(1990~1991년)을 지내셔서 현실 정치에 직간접으로 관여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구도가 이념과 가치관에 따라 형성되지 않고 지역에 따라 형성돼 있는 현상에 문제의식은 없으십니까? 미국의 민주, 공화 양당제나 영국의 노동, 보수 양당제와 대비되는 듯합니다.

“그건 말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닙니까? 도의원까지는 지연, 혈연으로 할 수 있겠지만 국회의원은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을 기반으로 정당문화가 형성된 것은 잘못이지요.
 
누가 나서서 지역정당을 노골적으로 옹호한다면 논란거리가 될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이 있나요? 지역 정당들도 자기들이 지역정당이라고는 안 하지요.”

-20대 초반에 ‘우상의 파괴’로 한국문단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합니까.

“예술가들은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지요. 나르시시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저 내 생각을 썼을 뿐인데 사람들이 나를 독창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상의 파괴’는 기성 문단의 파벌을 깨뜨리겠다는 생각에서 썼습니다. 당시의 문단풍토에 저항했던 것이죠. 김동리 선생 제자들은 김동리 선생처럼 써야 발탁된다는 사고가 퍼져 있었습니다. 문학도 도제제도처럼 사사를 받는 것으로 인식됐지요. 문학이 아니라 ‘문당(文黨)’이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나 당연시하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서 지구는 돌지 않는다고 말하고는 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혼잣말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과연 갈릴레오가 진짜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을 했는지 누가 들었다는 말입니까? 만약 누군가 들었다면 혼잣말을 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죠."
 
▲ 모든 사람이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독창적'이란 평가를 받았던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나는 글로써 오빠 부대 거느렸다”


-갈리레오가 진짜로 혼잣말을 한 것을 우연히 다른 사람이 들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종교재판에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갈릴레오가 무사할 수 있었을까요? 어느 문헌에도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아무 고민 없이 그렇게 믿는 것뿐이죠.

솔로몬의 재판에서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리기 위해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한 판결을 명 판결이라고들 말합니다. 불가능한 상황을 명한 것이 어떻게 명 판결입니까?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피를 한 방울도 안 흘리고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살을 도려낸다는 것도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아무 고민 없이 남들이 명판결이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겁니다.

나는 남들이 생각해 내지 못한 발상을 했고 나의 이런 면을 ‘독창적이다’, ‘천재적이다’ 했던 것 같습니다."

-오래 전에 “권력과 돈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학이 주는 신성한 재미를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했습니다. 한국사회의 대표적 지성으로서 권력과 돈의 유혹이 닥친 적은 없었나요? 문학이 주는 신성한 재미는 현재도 유효합니까.

“나는 문학의 재미가 권력과 돈보다 우월했다는 것이지 청렴결백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권력과 돈이 필요하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도 권력 관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문학이 메이저라면 권력과 돈은 마이너라는 원칙이 내 평생 동안 지켜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문학의 시대는 아니다”

-문화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었다고들 합니다. 문학의 위치를 영화가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 문학의 진지성과 질이 떨어져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요.


“요즘은 시집을 자비 출판해야 하니까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지요. 문학의 시대는 아니라고 봅니다.”

-최근 ‘한국인 이야기’ 연재를 마쳤습니다.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고 저도 재밌게 봤는데요. ‘한국인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의 우수성을 말하고자 했던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일제시대는 과거와 현재에 끼어있는 시기지요. 당시의 시대상을 심층적으로 파헤치긴 했어도 한국인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한국인들도 몰랐던 한국인들의 특징을 발굴하다보니 한국 민족을 미화했다는 오해를 받은 듯합니다. 미화의 의도가 있었다면 ‘한국인 이야기’는 선동문이 됐을 겁니다. 나는 ‘쇼비니스트’가 아닙니다.”

-과거에는 이 전 장관을 거리에서 마주친 여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전 장관이 시대의 정신으로 여겨지는지 의문입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과거에 누리던 신비감이 현재는 약해졌습니다. 내 글이 활자화 된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던 과거와 누구나 자기 글을 쓰고 대중에게 보일 수 있는 현대는 시대가 다릅니다. 과거에는 명함 말고는 자기 이름이 새겨진 글을 일반에 공개한다는 건 아주 특별한 일이었거든요.
 
지금은 연예인들에게 오빠부대가 있지만 나는 글로써 오빠부대를 거느렸습니다. 말하자면 내 글에는 ‘아우라’가 있었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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