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경선, 원칙대로 하라
스크롤 이동 상태바
[특별기고] 경선, 원칙대로 하라
  •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박사
  • 승인 2021.06.21 11:07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권자들 바보아냐…원칙대로 경선 치러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박사)

대선 10개월 전. 한국의 양대 정당은 서로 정권을 잡겠다는 야욕으로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그 동안 기득권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국민의힘은 30대 청년을 기수로 내세워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은 신중 모드로 들어가 말실수 하나라도 하면 끝장이라는 자세로 바짝 얼어 있는 모양새다. 무서울 것 하나도 없다는 듯 막나가던 그들이 이렇게 얌전해질 줄이야…. 건강한 야당이 있어야 건강한 여당이 있다는 상식을 한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목도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옥에 티랄까. 민주당은 대선후보 경선을 놓고 다시 정치권을 진흙탕으로 만들 기세다. 원칙대로 경선 날짜를 지키자는 쪽과 미루자는 쪽. 무슨 일이 있어 미루자는 것일까. 혹시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또 잔머리를 굴려 자기편의 이해득실을 따지다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대참패를 하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180석의 횡포로 원칙을 깨면서까지 후보를 낸 결과는 어떠했는가. 선거도 잃고 명분도 잃지 않았던가.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당헌당규를 바꿔 경선을 연기하는 그런 신선노름이 아니다. 집값폭등, 코로나 펜데믹, 물가앙등으로 살아가기 힘든 나날. 민생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해야지 자기편의 유불리를 따져 이전투구만 해야겠는가. 유권자와 괴리된 문제로 물고 뜯는 싸움만한다면 내년 대선도 백전백패다.

최근 프랑스 정치인들도 우리 정치인들처럼 애고(égo)가 강하다. 따라서 정치가 극도로 불안정하고 유권자들은 정당을 바꾸기 일쑤다. 2007년부터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다. 2017년 대선에서는 대정당인 사회당과 공화당이 대참패했다. 존폐위기에 놓인 이 정당들은 아직껏 허우적대며 재건의 실마리를 못 찾고 있다.

기존정당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은 정당 없는 30대의 젊은이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일 년도 채 안 돼 노란조끼운동을 벌려 코너로 몰았다. 마크롱은 전국을 투어하며 국민을 설득했고, 가까스로 인기를 만회하는 듯했지만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확률은 크지 않다. 이대로라면 극우의 마린 르 펜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대혁명의 기수인 프랑스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정치 책임자들의 이기심과 부정직 때문이다.

2017년 12월 파리정치대학 정치연구소(Cevipof)가 실시하고 르 피가로(Le Figaro)가 발표한 여론조사를 보면, 프랑스인 90%는 정치인들이 국민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이익만 챙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치가 몇몇 정치공학자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피플(People)"을 파는 단순한 오락거리로 전락하고 있다고 느낀다.

지난 해 12월 입소스(Ipsos)가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인들은 정치 책임자들이 점점 더 솔직하지 못하고 약속도 안 지키고 공약도 잘 이행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특히 이런 감정은 18세에서 25세 청년들에게 더욱 크다. 이들은 위정자들이 상투적인 선동에 익숙하고, 각종 인사에 있어 편파적인데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80%의 프랑스인들은 정치 책임자들이 재선에 성공하려면 좀 더 진실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여론조사 결과는 프랑스 내년 대통령선거 후보들에게 경종을 울릴 것으로 보인다. 2022년 봄 프랑스 유권자들은 틀림없이 후보들이 얼마나 정직한지, 그리고 얼마나 진실한지를 심판할 것이다. 그들의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정치력이 실행 가능한지 또한 주목할 것이라는 평가다. 만약 후보들이 이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프랑스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회의와 불신은 더욱 커지고, 심지어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정치를 거부하는 최악의 사태까지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처럼 프랑스정치도 한국정치가 처해진 상황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그들의 삶과 직결된 정치를 하길 원하고 보다 공정한 세상을 만들길 원한다. 이런 그들의 심중을 헤아리기는커녕 원칙을 깨면서까지 경선을 연기하겠다고 시시콜콜한 싸움만 벌인다면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말 것이다.

여당의 일부의원들은 째째한 계산기를 버리고 민생과 같은 좀 더 큰 대의명분을 위해 라이벌 계파와 싸워라. 이 싸움만 제대로 해 준다면 이준석의 국민의 힘을 두려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제는 포장이 아닌 알맹이를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학자 스나이더만(Paul Sniderman)의 말처럼 21세기 유권자들은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정치를 엔터테인먼트화 하면 금방 들통나고 만다. 민주당은 원칙을 지키고 국민과 밀착된 정치를 하는 새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de Paris) 정치학 박사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푸른하늘 2021-06-24 22:36:33
경선 관련하여 쓰신 칼럼의 울림소리가 폐부를 찌르는 듯 아주 카랑카랑하네요.
여ㆍ야의 정치인들이 이글을 읽으면 깜짝 놀라겠는걸요
복잡하게 돌아가는 작금의 정치현실을 야당의 잠룡들이 제대로 읽어내기를 기대합니다. .
그렇지않으면 정권교체의 꿈은 또 묘연해 질 것입니다
기울어진 민심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슴은 분명하지만
양측의 정당한 페어플레이가 대선이 끝나는 그날까지 굳건히 유지되길 희망합니다

구구 2021-06-21 16:02:20
우리나라도 양당구도에서 벗어나 인물만 보고 선출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면에서 프랑스가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