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대우건설 사람들은 왜 매각작업에 반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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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대우건설 사람들은 왜 매각작업에 반대할까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06.22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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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매각·졸속매각 반대' 구호에 가려진 진짜 반대 이유, 직접 들어보니…
"국내외 일선 수주 현장서 애로사항 커"…"FI 끌어들인 귀결, 이미 경험해"
일각선 무조건 찬성 목소리…"일단 산업은행 품 떠나야"·"임금동결 답답"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대우건설 매각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대우건설 매각을 주관하는 산업은행 M&A컨설팅실과 BOA(뱅크오브아메리카, 옛 BoA메릴린치)는 오는 25일 대우건설 매각에 대한 본입찰을 실시하고, 오는 7월께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예정입니다. 당초 업계 예상에 비해 무척 빠른 속도입니다.

현재까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대우건설 인수 의사를 밝힌 국내외 업체는 대우건설 인수에 대한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냈던 '중흥건설그룹', 진대제 전 장관이 이끄는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DS네트웍스', 최근 남양유업을 인수해 관심을 끈 사모펀드 '한앤컴퍼니', 세계 최대 규모 국부펀드 운용사 '아부다비투자청'(ADIA), 그리고 중국 건설업체인 '중국공정총공사' 등입니다. 여기에 과거 대우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인수를 포기한 바 있는 '호반건설그룹'이 또다시 입찰 참여를 검토 중이라는 〈한국경제〉의 22일자 보도도 있네요.

하지만 대우건설을 처분하기 위해 속도전에 돌입한 대주주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와는 달리, 대우건설 직원들은 앞서 거론된 모든 인수 후보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들이 내세운 표면적인 반대 이유는 '밀실매각·졸속매각'입니다. 대주주가 매각작업을 본격 추진한다는 소식이 나온 이후부터 대우건설 노동조합은 "매출액 8조 원이 넘는 건설사의 인수금액을 25일 만에 결정해 입찰서를 제출하라는 요구가 정상적이지 않다. 또다시 잘못된 매각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해선 안 된다. 산업은행의 밀실매각, 졸속매각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본지가 입수한 국회의원 300명에게 지난 18일 대우건설 노조가 보낸 호소문에서는 사뭇 다른 이유가 엿보입니다. 노조는 "정부 보유·관리 기업의 지분매각은 관리기관의 이익이 아닌 미래가치를 고려한 매각이 이뤄져야 한다. 투명한 공개매각으로 정부의 기업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결실이 특정 세력에 의해 독점되는 걸 막아야 한다.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매각에 대한 평가는 단순 매각금액이 아니라 '기업의 정상적인 지속경영 여부'에 따라 판단돼야 한다"며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의 자산이 아니다. 잘못된 매각으로 '기업 경쟁력을 훼손'시키는 건 무책임한 행위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의 독선과 전횡을 막아내는 걸 의원들이 도와달라. 정책금융기관들의 잘못된 매각의 피해자인 대우건설에게, 산업은행의 밀실매각과 잘못된 매각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고 의원들에게 호소했는데요.

이 호소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기업의 정상적인 지속경영 여부', '기업 경쟁력의 훼손'이라는 문구입니다. 중흥건설그룹, DS네트워크, 한앤컴퍼니, 아부다비투자청, 중국공정총공사, 호반건설 중 어떤 회사든지 이번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대우건설을 인수할 경우 '대우건설의 정상적인 지속경영 여부가 불투명'하고, '대우건설의 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의 '밀실매각·졸속매각'에 포커스를 맞췄던 이전 성명서나 기자회견 내용과 다소 차별적이죠. 왜 대우건설 노조는 이런 호소문을 의원들에게 보냈을까요. 진짜 반대 이유는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몇몇 전현직 대우건설 직원들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이들은 노측이나 사측을 대변할 가능성이 있는 부서 소속 직원이 아니며, 임원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들의 말은 대표성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대우건설 사람들이 왜 이번 매각작업에 반대하고 있는지, 그 현실적인 배경을 독자들이 유추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저 참고하시라는 겁니다.

ⓒ 대우건설 CI
ⓒ 대우건설 CI

우선, 이런 식으로 매각이 성사될 시 일감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는 말이 나옵니다. 대우건설의 한 사업팀 직원은 "전에 매각작업이 있었던 2017~2018년 즈음에 얼마나 현장에서 애를 먹었는지 몰라요. 그때 홍보하러 나가면 다른 건설사에서 조합원들한테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대우건설은 곧 중견업체', '쟤네랑 계약하면 이주비도 제대로 안 나온다', '아무리 푸르지오라도 중견 건설사면 격이 떨어진다' 등 네거티브 흑색선전을 해서 정말 힘들었어요. 더 큰 문제는 거기에 마땅히 우리가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 답답한 일이 또다시 생길 수 있다는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업팀 직원도 "비방이요?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국내보다 해외 수주현장에서 더 심한 측면이 분명히 있었죠. 함부로 비방하거나 허위사실 유포하면 영업정지도 떨어질 수 있는데도 말이죠. 경쟁사에서 '대우건설이 수주하면 매각 이슈 때문에 공사가 제대로 되겠느냐. 중견업체가 되기 때문에 직원들 다 떠난다' 이런 말들을 해요. 실적을 보면 그게 다 나옵니다. 2017~2019년 해외 매출이 계속 줄었을 거에요. 그 여파가 지난해 상반기까지 이어졌습니다"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재무적투자자(FI)가 개입한 인수는 결사반대해야 한다는 대우건설의 전(前)직원 말도 소개해 보겠습니다. 그는 "재무적투자자가 끼면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기 어려워요. 그 귀결은 이미 우리가 경험해서 잘 알죠.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사고 제일 먼저 한 일이 기자님도 뭔지 알잖아요. 업무용 차량을 전부 금호렌터카 것으로 교체하지 않았습니까. 금호에서 다시 팔 때도 재무적투자자들 때문에 참 힘들었고요"라며 "더 독한 산업은행 품에 들어가는 겁니다. 경영간섭하지 않겠다면서 더 심하게 할 거고, 직원들 희생도 더 커질 거에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재무적투자자가 참여한 우선협상대상자가 나오면 결사반대하라고 후배들에게 얘기하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가 매각을 위한 홍보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불만도 감지됩니다. 또 다른 전 직원은 "산업은행이 국내나 해외에서 대우건설이라는 회사를 소개하는 행사 따위를 연 적이 있습니까. 인수 후보가 정해지면 그들만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죠.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의 계열사나 자회사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국민이 주인인 기업입니다. 대우건설의 회사가치, 잠재력 등을 제대로 소개해서 제값을 받는 게 바로 산업은행이 해야 할 역할인데, 주가 부양에만 몰두하고 비용을 줄이라고 압박하고 있으니 괜찮은 업체가 입찰에 참여할 리 있겠습니까"라고 꼬집었습니다.

물론, 일각에선 이번 매각작업을 지지한다는 말 역시 들립니다. 어찌 됐든 저찌 됐든 KDB산업은행을 벗어나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겁니다. 대우건설의 한 직원은 "일단은 산업은행 품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저는 노조에서 왜 이렇게 심하게 반발하는지 모르겠어요. 민간기업으로 들어가면 최소한 운신의 폭은 넓어지는 거잖아요. 차라리 산업은행 밑에 그대로 있는 게 낫다고 말씀하시는 선배들도 있는데, 좀 더 멀리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은 "다른 건 몰라도 임금동결 문제 때문에 숨이 막혀서 빨리 팔렸으면 좋겠어요. 수년째 앞 단위가 안 바뀝니다. 올해 임금협상도 결렬됐어요"라고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대우건설 매각이 어떻게 마무리될진 가늠이 쉽지 않습니다. 다만, 그런 생각은 듭니다. 대우건설 사람들이 왜 이번 매각작업에 대해 걱정하고 우려하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영하는 시늉이라도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어차피 마음대로 할 건데 굳이 그들을 외면하고 방관하면서 국책은행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릴 이유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다 자칫 후폭풍이 발생한다면 그 책임은 모두 이번 매각작업을 주도한 이들이 지게 될 텐데 말이죠.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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