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도의 수제명품 ‘달마고도’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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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도의 수제명품 ‘달마고도’를 걷다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1.06.27 09: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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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너덜겅, 달마산이 겪었던 세월의 흔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도솔암 만불상의 모습. 금강산이나 설악산의 모습 그대로인 미니어처다 ⓒ 최기영
도솔암 만불상의 모습. 금강산이나 설악산의 모습 그대로인 미니어처다 ⓒ 최기영

집안 사촌 남매들이 메시지나 안부를 주고받는 단체 대화방이 있다. 거기서 대화를 나누던 중 동생 하나가 해남 달마고도를 완주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마산 주위 둘레길이 생겼다는 말은 들었지만 아직 가본 적이 없어 함께 가자고 했더니 두 명의 동생들이 더 참여하며 날을 정했다. 그렇게 달마고도를 걷기 위해 우리 4남매는 해남에 있는 미황사에서 만났다. 

달마고도는 달마산(489m)의 7∼8부 능선, 해발 고도 280~400m 높이에 조성된 남도에서는 유일한 산 둘레길이다. 둘레길 길이는 17.7km이고 4개 구간으로 나뉜다. 그리고 6개의 지점에서 스탬프 인증을 받아 다시 미황사로 돌아와 제출하면 완주증을 받을 수 있다. 

날카롭고 뾰족하게 각이 진 바위들이 온 산을 뒤덮고 있는 달마산 너덜지대의 모습. 수많은 너덜겅은 달마산이 겪었던 지난 세월, 풍파의 상처이고 흔적이다 ⓒ 최기영
날카롭고 뾰족하게 각이 진 바위들이 온 산을 뒤덮고 있는 달마산 너덜지대의 모습. 수많은 너덜겅은 달마산이 겪었던 지난 세월, 풍파의 상처이고 흔적이다 ⓒ 최기영
달마고도를 걸으며 바라본 달마산의 기암괴석의 모습 ⓒ 최기영
달마고도를 걸으며 바라본 달마산의 기암괴석의 모습 ⓒ 최기영

우리는 시작점에서 스탬프 북을 받아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산고사리나 이끼들이 많이 보이는 숲길이었다. 길을 걷다가 동생 하나가 잘 익은 산딸기를 따서 우리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리고 숲길을 벗어나자 날카롭고 뾰족하게 각이 진 바위들이 온 산을 뒤덮고 있는 너덜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마산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행이 의외로 힘든 것은 수천 개의 바위들이 쏟아져 흘러내린 듯 너덜겅들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너덜지대가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규암으로 이루어진 달마산의 바위들이 오랜 세월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깨져 떨어지고 바람에 깎이면서 생긴 것들이라고 한다. 그 수많은 너덜겅은 달마산이 겪었던 풍파의 상처이고 세월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달마고도를 따라 나 있는 너덜겅 길은 그리 위험하지 않다. 돌을 깎았는지 아니면 판판한 돌을 하나하나 골라서 깔아 놓은 건지 그리도 억세고 무섭게 생긴 너덜지대에 가지런하게 다져진 돌길을 만들어 놓았다. 산을 타다 보면 위험하다 싶은 곳에 어김없이 있는 말뚝이나 철심, 밧줄 같은 인공 구조물은 단 한 개도 없다. 손과 삽으로만 돌을 깔아 길을 낸 것이다. 

달마고도를 걸으며 바라본 해남 그리고 남해의 모습 ⓒ 최기영
달마고도를 걸으며 바라본 해남 그리고 남해의 모습 ⓒ 최기영
가파른 벼랑길에는 난간이라도 하나 설치해둘 만 한데 그러한 것은 전혀 없다. 흙과 돌로만 다져진 달마고도의 모습 ⓒ 최기영
가파른 벼랑길에는 난간이라도 하나 설치해둘 만 한데 그러한 것은 전혀 없다. 흙과 돌로만 다져진 달마고도의 모습 ⓒ 최기영

너덜지대를 지나 숲길을 조금 걷다가 큰바람재를 지나니 첫 번째 인증 쉼터가 나오며 바로 눈앞에 남도 바다가 정겹게 펼쳐졌다. 그리고 뒤에는 달마산의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서 있다. 그렇게 숲길과 너덜지대가 반복되며 이어진 좁다란 산길을 걸으며 왼쪽으로는 숲, 해남의 마을, 논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져 있었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기막힌 달마산 암릉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시원한 산바람이 모여드는 널찍한 쉼터가 군데군데 있는데 그 흔한 나무 벤치 하나가 없다. 그저 흙을 다지고 그 위로 평평한 돌을 골라 쌓아두었다. 그곳에 앉아서 쉬면 된다. 가파른 벼랑길에는 난간이라도 하나 설치해둘 만 한데 그러한 것도 전혀 없다. 그렇게 달마고도 어디에도 사람들은 못질 한번 하지 않고 손으로만 그 긴 길을 만들었다.

도솔암은 사방으로 완벽하게 바위에 둘러싸인 작은 암자다. 바위산에 공간을 찾아내 새 둥지처럼 거기에 딱 맞춰 암자를 지었다 ⓒ 최기영
도솔암은 사방으로 완벽하게 바위에 둘러싸인 작은 암자다. 바위산에 공간을 찾아내 새 둥지처럼 거기에 딱 맞춰 암자를 지었다 ⓒ 최기영
까치발을 들고 갈라진 바위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남해쪽으로 바라본 모습 ⓒ 최기영
까치발을 들고 갈라진 바위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남해쪽으로 바라본 모습 ⓒ 최기영

도시랑골에 도착해 네 번째 인증을 마치고 우리는 둘레길을 벗어나 도솔암에 올랐다. 굉장히 가파르다. 그렇지만 꼭 올라보길 권한다. 도솔암은 사방으로 완벽하게 바위에 둘러 싸인 정말 작은 암자다. 어떻게 이 바위산에 그 공간을 찾아내 새 둥지처럼 거기에 딱 맞추어 암자를 지었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런데 또 그 작은 암자에 좁은 마당도 있다. 그리고 그 마당에 서서 본 풍광은 참으로 기막히다. 바로 앞에 펼쳐진 암릉은 그야말로 설악산이나 금강산을 그대로 빼박은 미니어처다. 멀리서 바다에서 본 암릉의 모습은 마치 부처들이 앉아 있는 모습 같았는지 여기 사람들은 그것을 만불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고 갈라진 바위 사이로 고개를 내밀면 암릉과 바다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우리들은 연신 탄성을 내지르며 이곳에 오르지 않았다면 큰 후회를 할 뻔했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게 한참을 머무르다 다시 도시랑골로 내려와 길을 이어갔다. 

마지막 여섯 번째 ‘너덜’ 스탬프 인증을 하고는 삼나무 숲을 지나 드디어 미황사에 도착했다. 도솔암의 만불상을 병풍삼아 서 있는 대웅전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때문에 미황사 대웅전에서 부처를 향해 절을 단 세 번만 해도 3만 배를 한 셈이다. 자연과 그대로 조화를 이루도록 정성과 땀으로 닦아놓은 달마고도를 걷고 미황사 대웅전에서 소원을 빈다면 만불(萬佛) 중 어느 한 부처라도 그 소원을 들어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둘레길을 돌며 스탬프 북에 받아 놓은 인증 도장을 펼치며 완주를 기념했다.

솔암의 만불상을 배경으로 서 있는 미황사 대웅전의 모습 ⓒ 최기영
솔암의 만불상을 배경으로 서 있는 미황사 대웅전의 모습 ⓒ 최기영

명품이란 무엇일까? 10여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주인공 ‘현빈’은 자신이 입은 옷을 무시하는 듯 말하는 극 중 길라임(하지원 분)에게 “그쪽이 함부로 무시해서 될 물건이 아니야! 이태리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이건 댁한테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옷이 아니야, 프랑스 남부출신 자연주의 디자이너가 한 올 한 올…”이라는 식으로 말해 한때 유행어가 됐었다. 

달마고도는 그야말로 바윗돌 하나하나, 흙 한 삽 한 삽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수제 명품이었다. 그리고 도솔암의 만불상 모습에서는 명품의 감동에 더해 경외감마저 든다. 

이날 함께 했던 남매들은 서로의 어릴 적 모습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아무도 비껴가지 못한 세월은 우리의 모습만큼 흘러 있었다. 세월이 덧없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남아 있는 흔적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세월이 묻은 흔적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 흔적들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낸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명품 달마고도의 너덜겅처럼 말이다.

마지막 스탬프 인증을 하고 너덜지대를 배경으로 달마고도 완주를 기념하는 모습 ⓒ 최기영
마지막 스탬프 인증을 하고 너덜지대를 배경으로 달마고도 완주를 기념하는 모습 ⓒ 최기영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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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남 2021-06-27 15:46:57
사촌이 아니드라도 함께산행할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가 있다는것!
넘 부럽구 행복한 현실....
최본부장!
인생 여조로.여부운 이자너?~~~
벨거읍짜너?
열씨미 인생즐기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