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대우건설 노조 역사상 첫 삭발식…“산업은행, 공정매각 진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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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대우건설 노조 역사상 첫 삭발식…“산업은행, 공정매각 진행하라”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07.02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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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대우건설 본사 앞서 매각대응 비대위 출정식 기자회견 개최
"25일 만에 본입찰, 7일 만에 재입찰…졸속매각을 스스로 증명"
"KDB인베스트먼트, 매각 앞뒀다며 안전 예산 대폭 축소 지시해"
심상철 노조위원장 "올바른 매각·임직원 생존권 위해 총력 투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심상철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 대우건설지부 위원장이 2일 대우건설 본사 앞에서 매각대응 비상대책위원회 출정식과 더불어 삭발식을 벌였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심상철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 대우건설지부 위원장이 2일 대우건설 본사 앞에서 매각대응 비상대책위원회 출정식과 더불어 삭발식을 벌였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반팔에 반바지를 입어도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무더운 어느 여름날, 검정색 머리띠와 마스크를 두르고 남색 작업조끼까지 걸친 10여 명의 사람들이 서울 지하철 을지로4가역 10번 출구 앞에 나타났다.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 아래 이마에서 땀이 연신 흘러도 일렬횡대로 굳게 선 그들의 결연함은 결코 흐트러지지 않았다. 머리띠와 작업조끼 가슴팍에 아로새겨진 '단결투쟁', 뜨거운 것이 어디 한여름 무더위뿐이랴. 그들이 인내로 품어온 투쟁의 열기가 세상 밖으로 발산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우건설 노조는 투쟁을 선포했다.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 대우건설지부(이하 대우건설 노조)는 2일 서울 을지트윈타워 대우건설 본사 앞에서 '대우건설 매각대응 비상대책위원회 출정식'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전면에 선 노조 집행부 10여 명은 '우선협상자 선정기준 투명하게 공개하라', '인센티브에 눈먼 산업은행과 KDB인베스트먼트는 각성하라' '대우건설 미래 안중 없는 졸속매각 철회하라', '밀실특혜 매각전문 사채업자 이동걸을 국정감사 심판하라' 등 피켓을 들고 현재 대우건설 M&A를 주도하고 있는 대주주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를 강력 규탄했다.

이날 행사 시작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대우건설 본사 임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이나 회사 밖 음식점으로 이동하는 때다. 보다 많은 구성원들이 투쟁에 동참해주길 바라는 대우건설 노조의 속마음이 엿보였다. 이를 알아채기라도 한듯 섭씨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대우건설 사원증을 목에 단 30~40여 명의 사람들이 출정식을 회사 정문 앞에서 줄곧 지켜봤고, 일부는 노조 집행부의 구호 선창에 후창을 함께 외치기도 했다. 현재 대우건설 노조원은 사상 최대 규모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만큼 많은 임직원들이 이번 매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매각대응 비상대책위원회 출정식에서 KDB산업은행과 KDB인베스트먼트를 규탄하는 대우건설 노조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매각대응 비상대책위원회 출정식에서 KDB산업은행과 KDB인베스트먼트를 규탄하는 대우건설 노조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대우건설 매각대응 비상대책위원회 출정식은 심상철 대우건설 노조위원장의 삭발로 막을 올렸다. 대우건설 노조위원장의 삭발식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팔렸을 때도, 호반건설과의 M&A가 진행됐을 때도 없었다. 이번이 대우건설 노조 역사상 처음이라고 현장에서 만난 한 노조 관계자는 귀띔했다. 투쟁 의지를 굳혔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심 위원장의 머리 위로 바리깡(바리캉의 비표준어)이 수차례 움직일 동안 김경환 수석부위원장은 준비한 기조 발언을 낭독했다. 흩날리는 머리칼이 묵묵히 바닥을 향한 심 위원장의 시선을 조금씩 방해하기 시작했고, 마이크를 든 김 수석부위원장의 손이 조금씩 흔들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원고를 읽어 내린 김 수석부위원장은 "밀실매각, 졸속매각, 특혜매각으로 더이상 대우건설이 고통 받고, 우리의 가치가 훼손되면 안 된다. 대우건설 노조는 대우건설이 반드시 바른 매각이 돼야 한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기 위해 위원장의 삭발식을 포함한 이번 출범식으로 과거 대우건설의 매각 흑역사를 끊고, 이번 매각 사태에 대한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그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의 이대현 대표의 죄를 파헤쳐 책임을 묻게 할 시발점으로 삼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상철 대우건설 노조위원장이 총력 투쟁 의지를 밝히며 삭발을 단행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심상철 대우건설 노조위원장이 총력 투쟁 의지를 밝히며 삭발을 단행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그러는 사이 심 위원장의 삭발이 끝났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정수리에 맺힌 땀방울이 짧아진 머리 사이를 지나 이마로 흘러내렸다. 심 위원장은 대우건설 노조 역사상 최초 현장채용직 출신 노조위원장으로, 계약직으로 대우건설에 입사해 여러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며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직이 되고 노조 집행부로까지 선출된 입지전적 서사를 갖고 있다. 그만큼 일선현장과 밑바닥 직원들의 고충과 애환을 잘 알고 있고 애사심도 풍부한 인물이다. 실제로 이날 행사에 앞서 본지와 만난 심 위원장은 "어려운 시절 나와 내 가족을 일으켜 세워준 대우건설이 매각 이슈로 망가지는 걸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참 아프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심 위원장은 삭발식에 이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며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는 대우건설 매각 개시 후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25일이라는 초단기간 만에 본입찰을 강행했고, 그로부터 7일 만인 오늘(2일) 중흥건설이 입찰가를 높게 썼다는 이유로 재입찰을 진행했다. 이런 상식밖 결정이야말로 특정업체를 밀어주기 위한 밀실특혜매각이 아니면 도대체 뭐라고 설명할 것이며, 어떤 국가에서 정책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국가자산 매각을 이리도 졸속 진행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또한 "특히 KDB인베스트먼트는 1위와 2위 간 과도한 가격 차이를 이유로 재입찰을 진행한다는 이메일을 중흥건설과 DS네트웍스에 발송한 것으로 언론에서 보도됐는데, 이는 명백한 입찰방해이자 특정업체를 위한 배임죄에 해당될 것"이라며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는 이번 매각이 졸속매각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번 매각 사태에 대해 이동걸 회장, 이대현 대표의 무도한 행위의 진실을 낱낱히 밝히고 반드시 그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본지 취재 등을 종합하면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는 중흥건설이 너무 과도한 입찰가를 냈다며 대우건설 인수 포기 의사를 전하자, 재입찰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중흥건설과 DS네트웍스 컨소시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DS네트웍스는 재입찰 포기는 물론,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 대상으로 법적인 절차를 밟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일부 대우건설 임직원들은 만약 최종 재입찰가가 직전 최고 입찰가보다 낮을 경우 대주주를 배임 혐의로 고소하는 것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번 매각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든 후폭풍이 상당할 전망이다.

심상철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대우건설 노조 집행부들이 KDB산업은행과 KDB인베스트먼트의 이번 대우건설 매각을 졸속특혜매각으로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심상철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대우건설 노조 집행부들이 KDB산업은행과 KDB인베스트먼트의 이번 대우건설 매각을 졸속특혜매각으로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그러면서 심 위원장은 최근 대우건설 사업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그리고 이에 따른 고용노동부의 특별감독과 과태료 부과 등을 언급하며 이에 대한 책임이 대주주인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에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노동부는 지난 4월부터 실시한 대우건설 본사와 전국 현장에 대한 감독 결과를 발표하고 대우건설의 안전보건 관련 예산이 최근 2년 동안 급감했고, 인력과 조직 운용에 있어서도 안전 관련 전문성 등이 미흡하다며 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개선을 강력 권고한 바 있다.

그는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가 다양한 방법으로 인력채용을 방해해 신규현장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인력 투입이 불가능한 상황을 초래했다. 결국 관리감독자 없이 위험작업이 진행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불가피하게 위반하도록, 중대재해가 발생하도록 조장한 것"이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우건설은 안전혁신위원회를 만들고 중장기적 안전혁신안을 수립했으나, 대주주는 매각을 앞두고 돈 들어가는 일을 하지 말라며 안전혁신안 예산계획을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했다. 노동자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매각을 통한 본인들의 인센티브에만 혈안이 돼 대주주로서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우건설은 지난 2월 CFO(현 정항기 관리대표) 산하에 안전혁신위를 구성했다.

이어 심 위원장은 "대우건설 노조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이대현 KDB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졸속매각의 위법한 행위와 대우건설의 경영실패를 인정하고 자진사퇴하라. 또한 임직원을 사지로 내모는 경영간섭을 즉각 중단하고 대우건설의 자율경영체제를 보장하라. 산업은행은 밀실특혜매각을 즉시 중단하고 새로운 원칙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한 매각절차를 다시 진행하라. KDB산업은행·KDB인베스트먼트는 노조와 협의기구를 구성하고 그 의견을 모아 올바른 매각을 진행하라"며 "노조는 대우건설의 올바른 매각과 임직원들의 생존권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한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취재진과 만난 심 위원장은 "대주주와 지금의 각자대표들은 대우건설 임직원들을 위한 성공적인 M&A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없다. 대우건설 임직원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는 매각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그저 국책은행으로서 공정하고 올바른 매각 절차를 밟길 바라는 것"이라며 "우리가 원하는 특정기업은 없다. 우리 대우건설은 수차례 매각 풍파를 겪었고 KDB 산하에서 온갖 핍박을 받았지만 지금 건설사 단독의 힘으로 시공능력평가 6위를 달리고 있다. 막대한 수주 일감을 감안하면 매년 도급순위가 상향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대우건설의 DNA를 계승하고, 자율적인 경영체제를 통해서 더욱 더 발전할 수 있는 요건과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인수자를 원한다. 향후 행동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려우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말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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