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진’이의 배신과 안타까운 라면 사랑가
[기자수첩] ‘진’이의 배신과 안타까운 라면 사랑가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07.20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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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오뚜기가 대표 제품 진라면을 비롯해 라면 가격을 전격 인상한다 ⓒ 오뚜기
오뚜기가 대표 제품 진라면을 비롯해 라면 가격을 전격 인상한다 ⓒ 오뚜기

진아, 진아, 오뚜기네 진라면아. 노란색 옷을 차려입고 갑자기 내 앞에 불쑥 찾아온 너, 진이. 네 존재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 건, 내가 가장 어려운 시절이었지. 가물가물하지만 어느 만추인 걸로 기억한다. 대학 시절 자취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네가 그랬듯 나 또한 너에게 불쑥 찾아갔어. 아무 라면이나 먹었던 내가 그저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널 찾았지만, 진이는 그런 날 묵묵히 받아줬지.

가격은 저렴하지만 맛은 그렇지 않았어. 내 입가를 촉촉하게 적시는 달달한 국물, 내 입술을 부드럽게 건드리는 얇은 면발…, 진하고 굵은 라면을 좋아했던 내게 넌 너무 신선한 충격이었다. 난 그런 너에게 흠뻑 빠졌지. 농심네 신이랑 안성댁이 표고향과 된장맛으로 날 유혹할 때도, 삼양네에서 풍기는 햄 냄새가 코끝을 자극할 때도, 난 널 저버리지 않았다. 쇠고기면, 대관령김치면 같은 더 저렴한 제품도 있었지만, 진정한 싼맛은 너였다.

진아, 진아, 오뚜기네 진라면아. 너는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내 곁에서 날 위로해줬어. 나도 그런 너에게 보답했지. 주변 친구들이 '진라면은 너무 달다', '먹고 나면 배가 아프다'라며 진이를 음해할 때마다 난 청양고추, 콩나물을 팍팍 넣고 참기름 한 방울로 마무리해 시원하게 끓여냈지. 순한맛에는 계란물을 풀면 최고였어. 그 라면 맛에 친구들이 입을 싹 다물었지.

도통 풀리지 않는 취업 때문에 힘들고 지치고, 외로움을 부쩍 느낄 때도 진이는 내 옆에 있었어. '류현진~라면'이라는 너의 응원과 애교에, 야구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힘이 날 수밖에 없었단다. 너는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보듬었고, 내 흐트러진 모습에도 나에게 잔소리 한번 안했지. 그런 너를 사랑했었다. 심지어 네가 30주년이라면서 어울리지 않는 초현실적인 옷을 입고 내 앞에 섰을 때도 난 눈을 돌리지 않았단다.

하지만 너는 도대체 왜 그랬니? 왜 갑자기 날 배신한 거니? 내가 널 좋아한 건 내가 가장 힘들 때 곁에 있어줬기 때문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행동은 가장 힘들 때 뒤통수를 치는 거란다. 그런데 진이 넌 왜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우리를 배신한 거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전(全)국민의 시름이 깊어진 지금 진정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정말 궁금하구나.

진아, 진아, 오뚜기네 진라면아. 너는 다음달부터 가격을 684원에서 770원으로 12.6% 올린다더라. 연초에 간을 볼 때 발표했던 9%보다도 인상률이 높구나. 13년 만에 인상 조치에 네가 제시한 명분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부담이었다. 왜 모르겠니. 팬데믹과 가뭄 등 여파로 밀가루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고, 팜유 가격도 많이 올랐다는 것을. 인건비가 올랐다는 것도 다 안다. 그런데 좀 참지 그랬니. 고통을 함께 감내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코로나19가 조금은 잠잠해진 후 올렸어도 되지 않았니?

CME(CBOT, Chicago Board of Trade) 월별 소맥 가격 추이. 최근 주춤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 화면 캡처 ⓒ 시사오늘
CME(CBOT, Chicago Board of Trade) 월별 소맥 가격 추이. 최근 주춤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 화면 캡처 ⓒ 시사오늘

더욱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를 살펴보면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 급격하게 오른 국제 소맥 가격은 지난 5월 정점을 찍은 후 주춤하고 있더구나. 농업관측본부에서는 올해 연말부터 밀을 비롯해 세계 주요 곡물들의 수급여건이 개선될 전망이라는 보고서도 냈더라. 팜유도 살펴보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오뚜기네가 공개한 곳간 정보를 보면 오뚜기네는 팜유를 톤당 958달러(지난 1분기 기준)에 매입하고 있는데, 많이 오른 건 맞다. 지난해에는 602달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팜유 가격은 변동폭이 큰 편이라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니. 2012년에는 톤당 매입가가 986달러였고, 2011년에는 1154원, 2010년에는 1004원이었잖아. 참으로 너의 배신을 이해할 수 없구나.

인건비도 좀 따져보자. 진아, 너가 탄생한 오뚜기네는 대기업이란다. 최저임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회사는 아니라는 뜻이야. 물론, 판촉 따위에 투입되는 인건비 부담은 상당히 늘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시대라는 걸 감안해야지 않겠니. 최근에는 그런 식의 비용 부담은 오히려 줄었단다. 지난해 오뚜기네가 광고선전비와 판매촉진비로 쓴 비용은 전년 대비 각각 4.83%, 13.49% 감소했어.

진아, 진아, 오뚜기네 진라면아. 너의 배신으로 다른 친구들도 연이어 배신을 생각하고 있다더라. 아까 서두에 말했던 농심네 신이랑 안성댁, 팔도네 비빔이랑 뚜껑이, 그리고 삼양이네 마당에서 뛰노는 불닭이까지…. 가슴이 참 아프다.

나처럼 너 때문에 위로받고 너와 함께 기뻐한 이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꼭 그렇게 해야만 했니? 너 없이 이 혹독한 시기를 어떻게 버티라는 것이더냐. 묻고 또 묻고 싶다. 이제는 누구한테 위로를 받아야 하나.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른다. 너를 사랑한 만큼, 갑작스런 너의 변심에 화가 나고, 분노가 치솟는다.

그럼에도 진아, 내 가슴 속에는 너와 함께 보낸 무수한 추억들이 가득하다. 내 곁엔 네가 필요하단다. 진아! 언젠간 너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해다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유통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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