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양평 중원산에서 도일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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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양평 중원산에서 도일봉까지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1.08.07 08: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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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山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도일봉 정상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 선배는 산행의 맛에 푹 빠져 있다 ⓒ 최기영
도일봉 정상에서 포즈를 취하는 모습. 선배는 산행의 맛에 푹 빠져 있다 ⓒ 최기영

한참 등산 재미에 푹 빠져있는 대학 1년 선배로부터 지난 주말, 별일 없으면 같이 산에 가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시원한 계곡이 있는 양평 중원산에 가보자고 했다. 중원산에서 도일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오대산 두루봉에서 한강 두물머리까지 한강을 따라 장쾌하게 뻗어있는 한강기맥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원계곡에서 시작해 타원을 그리며 종주를 하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올 수 있다. 

양평은 용문산이 유명하다. 용문산 그리고 중원계곡의 그늘에 가려 이곳 중원산이나 도일봉은 그리 잘 알려진 것 같지 않지만 대간, 정맥, 기맥 등을 타는 종주 마니아들은 한 번쯤은 이곳을 거쳐 갔다. 

계곡에 도착하니 주말 더위를 피해 정말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우리는 지체 없이 중원산 등산로 입구 이정표를 따라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산으로 들어가자 가파른 흙길을 오르는 초입부터 여간 힘에 부치는 게 아니다. 등산을 취미로 삼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선배는 왜 이런 곳에 계단을 만들어놓지 않았냐며 숨을 몰아쉬기 바쁜 와중에도 불평을 쏟아냈다. 

초입부터 하늘 한번 보여주지 않던 울창한 숲길을 한참 동안 오르다 만난 첫 번째 조망터. 구름이 산야와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멋들어졌다 ⓒ 최기영
초입부터 하늘 한번 보여주지 않던 울창한 숲길을 한참 동안 오르다 만난 첫 번째 조망터. 구름이 산야와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멋들어졌다 ⓒ 최기영
이날 첫 번째 봉우리 중원산 정상 ⓒ 최기영
이날 첫 번째 봉우리 중원산 정상 ⓒ 최기영

초입부터 하늘 한번 보여주지 않던 울창한 숲길을 한참 동안 오르다 보니 처음으로 탁 트인 조망터가 나왔다. 아침에 세찬 비가 내리다 그친 뒤라 아직도 구름이 걷히지 않고 산야와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멋들어졌다. 그 뒤에도 거친 돌길과 오르막을 지나 드디어 오늘 첫 번째 봉우리인 중원산(800m)에 도착했다. 

뜨거운 태양에 달궈지고 가파른 산길에 열을 받을 대로 받은 온몸은 진즉에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중원산 정상 근처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자 선배는 얼린 막걸리를 꺼냈다. 정말 시원하고 세상없는 꿀맛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도란도란 사는 이야기를 하며 땀을 식혔다. 

우리는 군에서 제대를 한 뒤 학교 근처에서 함께 자취하기도 했다. 정말 젊은 시절 서로 볼꼴과 못 볼 꼴을 다 보며 지냈던 사이다. 이른바 IMF 시대에 졸업을 했던 우리는 취직자리를 찾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선배는 학교 시절, 입시 학원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인연을 발판삼아 취직 대신에 바로 학원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시작했던 사업은 몇 번의 커다란 부침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자 학원가도 큰 타격을 입었다. 선배가 산을 한번 데려가 달라고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 왔던 때도 그즈음이었다. 

중원산에서 단월봉으로 가는 길.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 최기영
중원산에서 단월봉으로 가는 길.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 최기영
이날 마지막 봉우리인 도일봉 정상 표지석 ⓒ 최기영
이날 마지막 봉우리인 도일봉 정상 표지석 ⓒ 최기영

시원한 막걸리 한 통을 비우고 우리는 산길을 다시 걸었다. 잘 정비돼 있고 멋진 풍광이 이어지는 국립공원의 등산로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원시림처럼 나무와 무성한 풀이 엉켜있기도 하고 산길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아무렇지 않게 위험하게 흩어져 있기도 했다. 그러한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걷다 보면 중원산 상봉(816.5m)이 나왔고, 단월봉(778m)을 지나 싸리봉(811m)을 만나기도 했다. 봉우리를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한참을 내려왔다가 다시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선배는 내리막길이 반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만큼 다시 치고 올라갈 일이 걱정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위험한 바위 구간을 힘겹게 오르니 드디어 이날 마지막 봉우리인 도일봉(864m)에 도착했다.

도일봉에 서니 손에 닿을 듯 용문산과 함께 양평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용문산 방향으로 바라 본 모습 ⓒ 최기영
도일봉에 서니 손에 닿을 듯 용문산과 함께 양평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용문산 방향으로 바라 본 모습 ⓒ 최기영

도일봉에 서니 손에 닿을 듯 용문산과 함께 양평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계곡 손님은 많지만, 산행 손님은 거의 없는 듯했다. 주말인데도 산길에서 마주친 등산객은 정말 손으로 헤아릴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는 도일봉의 정상을 둘이서만 호젓하게 차지하며 온전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제는 하산이다. 도일봉에서 중원계곡으로 바로 내려가는 하산 길 약 1km 정도 구간은 정말 마의 구간인 듯하다. 흙길이 너무 가파르고 길이 좋지 않아서 대단히 힘이 들고 미끄럽다. 그저 조심조심 발을 디디며 남은 거리를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들렸다. 저 아래에는 많은 사람으로 계곡이 혼잡하지만, 산을 다 타고 내려온 우리는 아무도 없는 계곡 상류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계곡을 보자마자 곧장 신발과 웃통을 벗고 서로에게 등목을 해줬다. 산행의 피로가 한 방에 날아갔다. 

중원계곡의 모습. 산을 다 타고 내려온 우리는 아무도 없는 계곡 상류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 최기영
중원계곡의 모습. 산을 다 타고 내려온 우리는 아무도 없는 계곡 상류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 최기영

산에서 내려와 막걸리를 마시며 우리만의 뒤풀이를 했었다. 한잔 두잔 술이 이어졌고 취기가 돌았다. 학교 시절 선배에게는 술버릇이 하나 있었다. 술에 취하면 이야기가 끊임없이 펼쳐졌다. 방금 했던 말도 몇 번이고 반복됐다. 그리고 말끝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러나 선배는 대답도 하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곤 했다. 

‘인생이 말이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또 오르막이 있는 거 아니냐? 오늘 산길처럼 말이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선배는 내게 물었다. 대답할 시간도 줬다. 나는 ‘형 말에 전적으로 동의!’라고 말했다.

그 뒤에도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던 것은 이날 산행의 보너스라고 생각하련다. 그 괴로웠던 주사도 학교 시절 나의 그리운 추억이기에….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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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남 2021-08-09 07:02:11
산은 모든이들의 즐거움,괴로움,등 희노애락을 포용할수 있는 위대함을 갖고있는것같군요.
말없이 친구의 얘기를 들어주며 한잔 할수있다는것이 당신의 품격입니다.
어느산이라도 당신과 함께라면 좋겠습니다.

김용주 2021-08-07 12:03:13
꼭 가보고 싶네요. 선배님의 주사도 경험하고 싶구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