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 최고 스타를 탄생시킨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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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계 최고 스타를 탄생시킨 노래
  • 박지순 기자
  • 승인 2010.02.02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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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의 음악실타래]-4막5장의 'J에게'
1984년 7월 29일 춘천 남이섬에서 열린 제5회 강변가요제는 가요제 역사에서 가장 뚜렷이 기억되는 대회다.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가 던져준 신선함과 충격에 비견될 만하다고 볼 수 있다.
 
몇 해 전 대학가요제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제1회 대상곡인 ‘나 어떡해’가 최고의 곡으로 선정된 적이 있다. 강변가요제만을 놓고 설문을 받았다면 단연 제5회 대상곡 ‘J에게’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J에게’는 이선희가 부른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진 제5회 강변가요제에서는 ‘4막5장’이라는 남녀 듀엣으로 선보였다.
 
‘J에게’ 한 곡의 대히트로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한 제5회 강변가요제 LP에는 4막5장의 구성원으로 ‘인천전문대 환경관리과 1학년 이선희, 인천전문대 기계과 2학년 임성균’이 소개돼 있다. 이선희는 1964년 생으로 출전 당시 나이는 21살이었다.

남성 멤버였던 임성균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전무하다. 강변가요제가 끝나고 바로 군입대를 하면서 노래를 접었다는 소식이 잠시 전해졌을 뿐이다. 임성균이 이선희와 4막5장으로 노래를 부른 것은 강변가요제 무대가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받은 이선희는 가요제 출신 최고의 스타다.     © 시사오늘 박지순


오랫동안 ‘양대 가요제’로 일컬어지던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에서 남녀 듀엣이 대상을 수상한 기록은 매우 드물다.
 
두 가요제가 히트곡을 양산하며 신인 가수들의 산실 역할을 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 살펴보면 대학가요제에서는 1985년 ‘높은 음자리’(수상곡 ‘저 바다에 누워’)가 유일하며 강변가요제에서는 4막5장에 바로 이어 1985년 ‘마음과 마음’(수상곡 ‘그대 먼 곳에’)이 듀엣으로 출전해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1984년 ‘J에게’가 대상을 받기 이전까지 강변가요제는 대학가요제에 비해 그다지 주목을 못 받는 대회였다. 1983년 제4회 대상곡 손현희의 ‘이름 없는 새’가 선전하면서 대회 이름이 이전보다 알려지긴 했지만 대학가요제의 아성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J에게’는 그야말로 ‘한 방’이었다. 강변가요제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졌고 참가자들의 수준도 급상승해 유미리의 ‘젊음의 노트’(1986년 제7회), 이상은의 ‘담다디’(1988년 제9회) 같은 공전의 히트곡들이 쏟아져 나왔고 수상자들은 이후 꾸준한 음반 활동을 보인 예들이 많다.

지금도 ‘J에게’를 회상할 때 강변가요제 무대에서 보여준 이선희의 월남치마와 아줌마 파마머리, 얼굴을 반이나 차지하는 잠자리테 안경이 회자되곤 한다. 이선희의 솔로1집 LP 뒷 면에는 4막5장 당시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앞면의 큰 자켓 사진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 도무지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선희는 고3때부터 서울 남영동에 있는 ‘장욱조 음악실’에 다니며 음악 공부를 했다고 한다. 장욱조는 ‘장욱조와 고인돌’을 만들어 한 때 유명세를 치렀던 가수다. 승려였던 아버지의 반대가 심해 강변가요제 출전이 난관에 부닥치자 이선희는 감쪽같은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월남 치마는 본래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고 한다. 이선희는 청바지 차림으로 대회장에 갔지만 담당 PD가 “청바지는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급하게 방청객의 치마를 빌려 입고 무대에 섰다. 필자는 1984년 강변가요제 음반 뒷 면에 나오는 참가자들의 사진을 하나 하나 유심히 봤다.

분명 청바지 차림도 있었고 면바지 차림도 있어서 의아스러웠다. 다시 자세히 봤더니 여자 참가자들은 모두 치마 차림이었다. 지금과는 시대가 달라서 그랬는지 대회가 한 여름에 열려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여자 참가자들에게 바지를 못 입게 했던 것 같다.
 
이선희는 치마를 빌려준 관객에게 치마부터 돌려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대상 수상 발표를 듣고는 놀랐다고 당시를 회고한 적이 있다.

‘J에게’는 이선희의 무대 의상 만큼이나 곡부터가 드라마 같은 성격이다. 이 곡의 작곡가는 이세건으로 무명이었다. 이선희는 음악실에 다니던 무렵 이세건이 악보를 쓰레기통에 무더기로 버리는 모습을 봤다.
 
무명 작곡가의 곡을 가수들이 부르지 않자 화가나 버렸던 것이었다. 이선희는 ‘J에게’를 집어 들고 “이거 제가 써도 돼요?”라고 말했고 이세건은 “쓰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대꾸했다. 이렇게 해서 ‘J에게’는 진흙 속의 진주처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J에게’는 동유럽의 어느 여자 가수가 한국어로 취입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외국의 유명 노래를 한국 가수가 부르는 일은 흔하지만 한국 노래를 외국 가수가 한국어로 부른 예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다. ‘J에게’가 외국인이 듣기에도 곡이 빼어나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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