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국민의힘은 ‘2021년 체제’를 수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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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국민의힘은 ‘2021년 체제’를 수립할 수 있을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09.12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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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국민의힘은 과연 2030세대의 표심을 잡고 2002년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시사오늘 김유종
국민의힘은 과연 2030세대의 표심을 잡고 2002년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시사오늘 김유종

1865년. 4년에 걸친 남북전쟁이 끝나자, 미국에서는 산업화된 북동부를 장악한 공화당과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이 양분(兩分)하는 정치 구도가 형성됐다. 이후 30여 년 동안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이 같은 정치 지형은 점점 고착화됐고, 정치학자들은 북동부의 공화당과 남부의 민주당이라는 구도에 ‘1896년 체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던 미국에서, 1896년 체제는 공화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체제였다. 이미 산업화가 돼 있던 북동부는 낙후된 농업 지역인 남부보다 인구가 많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업은 공화당은 대통령선거에서 연전연승(連戰連勝)할 수 있었다.

실제로 1896년 체제 하에서 민주당이 대선 승리를 거둔 건 1912~1920년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집권 기간밖에 없었는데, 이마저도 공화당이 윌리엄 태프트(William Howard Taft)의 공화당과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의 진보당으로 분열한 어부지리(漁父之利)였다.

1896년 체제가 무너진 건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때다. 1932년 대공황을 계기로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남북전쟁 이후 이어졌던 북동부와 남부의 지역적 갈등을 사회·경제적 갈등으로 대체했다. 이로써 민주당은 기존의 지지 기반이었던 남부에 북동부의 노동자 계층을 얹어 새로운 다수파를 형성하는 데 성공한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정치는 ‘누가 다수파를 형성하느냐’의 싸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대한민국 정치는 ‘2002년 체제’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대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영남 출신 민주당 후보론’을 내세우며 지역주의에 균열을 냈던 바로 그 선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태동시킨 영호남 지역갈등은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4자 필승론’을 들고 나옴으로써 우리나라 선거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라는 큰 틀 안에서 다수파를 형성할 수 있는 방법론으로 ‘3당 합당’을 제시하며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 측 인사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하곤 했던 이 지형은, ‘지역 연합’과 같은 소극적 방식으로는 도저히 깰 수 없을 정도로 강고했다. 바로 이때 나온 ‘전략가’이자 ‘행동가’가 노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영남 출신 민주당 후보’라는 전략을 들고 나옴으로써 영남 대 호남 구도를 누그러뜨리고 ‘기득권 대 서민’ 구도를 전면에 등장시켰다.

이때부터 민주당은 기존에 갖고 있던 호남과 젊은 세대의 압도적인 지지 위에 일부 영남 유권자들과 노동자 계층의 표를 더해 자력으로 보수 정당과 일대일 승부가 가능한 수준의 기반을 마련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북동부 대 남부의 지역 구도를 사회·경제적 갈등으로 대체함으로써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잡은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2021년 4·7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2002년 체제에 변화 조짐이 보인다. 4·7 재보궐선거를 전후해 2030세대는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4050세대가 ‘사다리 걷어차기’를 해왔다는 실망감을 표하기 시작했고, 이준석 현 대표를 필두로 한 국민의힘 인사들은 그 틈을 파고들어 ‘2030 표심 잡기’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민주당은 4·7 재보궐선거에서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는 영남 대 호남, 기득권 대 서민의 갈등 구도를 거치는 동안 단 한 번도 민주당에서 이탈하지 않았던 젊은 세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남-젊은 세대-노동자라는 2002년 체제의 핵심 연합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국민의힘이 2030세대의 표심을 ‘지속적으로’ 붙들어 둘 수 있다면, 영남이라는 지역 기반에 2030세대와 60대 이상의 지지를 확보하게 되는 국민의힘은 4050세대를 ‘포위’하는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과연 국민의힘은 2030세대의 마음을 얻어 2002년 체제를 붕괴시키고 ‘2021년 체제’를 수립할 수 있을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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