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숨통 탁 막힌 전세·월세 수요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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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숨통 탁 막힌 전세·월세 수요자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09.23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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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값 쑥 오르고, 대출 꽉 묶여…이사 걱정에 한숨만
깊어지는 실수요 우려와 부담, 정부 대책 마련 절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어디 괜찮은 곳 없냐", "싼 데 있는지 좀 알아봐줘." 건설·부동산 기자라면 명절마다 가족, 친지, 친구, 지인들로부터 최소한 한 번씩 듣는 얘기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집값이 하도 오르는 바람에 비슷한 질문들을 여기저기서 받았는데, 특히 이번 추석 연휴 때에는 저렴한 전셋집, 월셋집을 찾는 비슷한 또래 직장인, 신혼부부들의 물음이 상당히 많았다. 사연은 비슷했다.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는 이유로 나가라는데 이사를 갈 만한 집은 대부분 보증금과 임차료가 기존 대비 2~3배 이상 비싸 부담스럽고, 대출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거 같아 걱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답답한 기분일 거다. 한국부동산원의 R-ONE 부동산통계 뷰어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8월 기준 전국 종합주택 평균 전세가격은 2억5010만 원으로 전년 동월(1억9814만 원)보다 26.22% 뛰었다. 2019년 8월 대비 2020년 8월 평균 전셋값 상승률이 5.76%임을 감안하면 오름폭이 1년 만에 5배 가까이 확대된 것이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의 상승세가 매섭다. 지난달 기준 서울은 전년 동월 대비 29.52% 오른 4억8058만 원, 같은 기간 수도권은 32.19% 오른 3억6060만 원으로 전국 평균치보다 전세가가 더 급등했다.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아파트 전세 시장 상황은 더 나쁘다. 지난해 8월 2억3893만 원이었던 전국 평균 전세가가 올해 같은 달 3억1155만 원으로 올랐고, 같은 기간 4억 원대 중후반이었던 서울 전셋값은 6억 원을 돌파했다. 

월세 시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기준 전국 종합주택 평균 월세가격은 72만9000원으로 전년 동월(64만7000원)보다 12.67% 올랐다. 2019년 8월 대비 2020년 8월 평균 월셋값 상승률이 1.41%임을 고려하면 오름폭이 1년 만에 약 9배 확대된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 평균 월세가는 지난 7월을 기점으로 각각 100만 원, 90만 원을 넘어섰다. 아파트 월세 시장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지난달 기준 전국 평균 아파트 월세 보증금은 6670만 원으로 전년 동월(4625만 원)보다 44.20%, 월세가격은 11.67% 상승했다. 역시 서울과 수도권 지역 상승세가 눈에 띈다. 같은 기간 서울 평균 아파트 월세 보증금은 68.27%, 수도권은 60.21% 오르며 각각 2억 원대, 1억 원대에 진입했으며, 월셋값도 지난 7월부터 각각 120만 원대, 100만 원대에 올라섰다.

전월세 수요자들을 우려스럽게 만드는 건 가격뿐만이 아니다. 보증금을 구할 길이 막히고 있다는 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실정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집값 안정화와 가계부채 관리라는 명분으로 대출 규제를 전방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투기 목적 대출 수요를 차단하겠다며 중도금대출,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 등 부동산 대출 규제에 혈안이 된 상황이다. 실제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기재부 출입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올해 하반기 전세대출은 '스퀴즈'(쥐어짜다)할 수밖에 없다"며 추석 명절 연휴 후 전세대출 규제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대책이 나올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한숨밖에 안 나온다. 극단적인 얘기를 들먹이며 불안감을 조장할 생각은 없다. 이번 연휴 동안 들은 얘기 중 가장 평균적이고 보편적으로 보이는 사연을 하나 소개한다. 

한 30대 신혼부부는 2019년 당시 준공된지 5년 안팎인 서울 마포구 소재 아파트에 보증금 1억 원, 월세 150만 원의 조건으로 보금자리를 구했다. 그리고 2년 뒤 집주인으로부터 자신이 직접 거주해야 하니 이사를 가라는 요구를 받았다. 집주인이 정말 실거주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확인할 도리도, 비거주를 확인하더라도 실익이 없기에 새 월셋집을 찾고자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같은 아파트, 동일 면적 월세가격이 불과 2년 만에 보증금 4억~7억 원으로 폭등했다. 그나마 직장과 가까운 용산구로 눈을 돌렸는데 지은지 20년이 넘은 아파트 월세가격(보증금 1억 원, 월세 300만~400만 원 정도)을 보고 포기했다. 신축 아파트에 비교적 괜찮은 조건(보증금 4억~5억 원, 월세 150만 원 안팎 수준)의 매물을 찾았지만 직장에서 거리가 먼 성동구였고, 계약하더라도 연소득 때문에 정부 지원 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 없어 수억 원의 보증금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걱정이란다. 

이 같은 전월세 실수요자에게 혹자들은 '눈높이를 낮춰라', '능력이 없으면 외곽으로 빠져라', '차라리 돈을 더 보태서 수도권에 집을 사라' 등과 같은 말을 한다. 심지어 유력 정치인 입에서조차 이와 비슷한 발언이 종종 나온다. 언뜻 보면 현실적이고 일리 있는 조언 같지만 이에 대한 수요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균형발전을 외치면서도 인프라를 특정 도시에 집중시키고, 신도시로 가라, 빌라·다세대로 가라면서도 인서울, 아파트가 아니면 속으로 혀를 끌끌 차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집값·전월세가격이 오른 게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내가, 내 자녀들이 밀려나야 하느냐'는 식의 이유 있는 항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계속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한다. 홍 부총리는 지난 15일 "전월세가격 안정과 시장 어려움을 완화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에 대해 시장 전문가, 연구기관 등 의견 수렴을 거쳐 연말까지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급하게 이사를 가야 할 전월세 실수요자들은 냉소를 띤다. 또한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자신 있다"는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는 수요자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란 말이냐'는 식의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임대차3법의 허술함과 부작용,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방침에 대해 맹목적으로 헐뜯으려는 의도는 없다. 일부 보완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분명 효과가 나타날 여지가 아직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정책과 입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결과다. 셋값은 쑥 오르고, 대출은 꽉 묶여 전월세 실수요자들의 숨통이 탁 막혔다. 지금 이들에게 필요한 건 현실적이고 일리 있는 것 같은 조언도, 인내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당장 숨통을 트게 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문제는 묘수가 없다는 것이다. 설사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부동산 시장이 너무 과열된 데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이 커 실효성을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럼에도 마냥 손을 놓아선 안 된다. 일시적으로나마 전월세 실수요자에 한해 대출길을 열어주고, 정부 지원 금융 상품에 대한 소득 요건을 완화하는 등 선의의 피해를 경감시킬 수 있는 단기적 처방이라도 빨리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추석 연휴가 지났고 이제 완연한 가을 이사철이다. 높아지는 하늘처럼, 무르익는 단풍처럼 전월세 임차인들의 우려와 부담이 점점 깊어만 간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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