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유신의 이무기 이후락과 잠룡 홍준표
[역사로 보는 정치] 유신의 이무기 이후락과 잠룡 홍준표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1.10.17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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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왜 이무기 됐는지 반면교사 삼아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홍준표 의원은 이후락이 왜 이무기가 됐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후락 전 중정부장(사진 좌, 사진제공=국가정보원), 홍준표 의원(사진 우, 사진제공=홍준표 의원 페이스북)
홍준표 의원은 이후락이 왜 이무기가 됐는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후락 부장, ‘7ㆍ4남북공동성명’ 발표 (사진 좌, 사진제공=국가정보원), 홍준표 의원(사진 우, 사진제공=홍준표 의원 페이스북)

잠룡(潛龍), 주역의 64괘 중 첫 번째인 건괘(乾卦)에서 나온 단어로, 연못이나 늪에 숨어 아직 승천하지 않은 용을 의미한다. 우리 정치권에선 대통령 선거의 유력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뜻한다. 특히 최근처럼 대선을 앞두면 여야 모두 잠룡으로 평가받는 인물들이 여론의 주목을 받는다.

우리 정치사 잠룡 중에는 진짜 용으로 승천하지 못하고 이무기로 남는 비운의 인물들도 허다하다. 박정희 정권 당시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버금가는 2인자로 득세했던 이후락 전 중정부장이 대표적이다.

이후락은 제갈량과 조조를 합친 제갈조조(諸葛曹操)라고 불리울 정도로 박정희의 책사로 인정받아 정권 내내 승승장구했다. 

이후락은 해방 직후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교해 이듬해 3월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탁월한 영어 능력으로 정보계통과 주미 대사관 무관 등을 거치며 5·16 직전인 1961년 소장으로 예편했다.

민간인 이후락에겐 5·16은 천운신조의 기회였다. 민간인 신분으로 쿠데타 주체가 된 이후락은 특유의 정치력으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장의 공보실장을 꿰찬다. 박정희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사 1963년 5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승승장구하던 이후락은 1969년 주일 대사로 잠시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으나, 박정희가 정권연장에 뜻을 두고 있는 것을 알아채 그의 환심을 샀다. 그는 일년 만인 1970년 12월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이후락은 이제 명실상부한 정권의 2인자인 잠룡이 됐다. 특히 유신 직전인 1972년 5월 중정부장의 신분으로 휴전선을 넘어 평양에서 주석 김일성과 담판을 벌여 7·4남북공동성명을 성공시켰다. 

호사가들은 박정희 후계자로 김종필 대신 이후락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1973년 '윤필용 사건'이 터졌다. 고향 울산 후배이자 군부의 최고 실력자인 윤필용 수경사령관이 박정희 후계자로 이후락을 거론한 것이 문제가 됐다. 

권력의 화신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면 절대로 용서치 않았다. 그는 최측근인 윤필용을 가차없이 내쳤고, 이후락도 멀리하기 시작했다. 권력의 태양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이후락은 점점 불안해졌고, 결국 최악의 자충수를 두게 된다.

이후락은 박정희의 신임을 회복하고자 중정부장의 권력을 악용해 정권의 눈엣가시인 김대중 납치사건을 기획해 실행에 옮겼으나 미국의 적극 개입으로 실패했다. 결국 중정부장에서 전격 해임됐다. 권불십년이라는 역사의 법칙이 작용했다. 사실상 정계를 떠난 이후락은 1979년 고향 울산-울주 선거구에 출마해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하늘은 잠룡 이후락의 승천을 외면했다. 정계 복귀 후 7개월만에 10·26사건이 터졌다. 전두환 신군부는 이후락을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전 재산을 환수했고. 영욕의 정치인생을 마감했다. 

제갈조조 이후락은 출중한 능력으로 정권의 2인자로 잠룡 지위에 올랐지만 윤필용 사건과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몰락했다. 잠룡 이후락이 용이 되기엔 2%가 부족했다.   

최근 대선정국이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보수 야권의 오랜 잠룡이었다. 5선 국회의원과 재선 경남도지사, 두 차례의 당 대표 등 권력의 중심을 점령했다. 특유의 돌파력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여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장악하며 호불호가 뚜렷한 지지층과 혐오층을 확보한 대중 정치인이다. 

잠룡 홍준표에게 용이 될 뻔한 기회가 오긴 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와신상담한 홍준표는 지난 21대 총선에서 당과 첨예한 갈등을 빚으며 탈당해 무소속 출마로 화려하게 여의도로 복귀했다. 이제는 재수생으로 보수 야권의 대선 후보가 되고자 한다.

최근 홍준표 후보가 역선택 논란 속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치열한 경선을 치루고 있다. 특유의 현란한 입담과 거침없는 행동으로 ‘조국수홍’과 같은 설화와 논란을 몰고 다니는 잠룡 홍준표가 용이 되느냐, 아니면 이무기로 승천을 못하느냐는 본인의 능력에 달렸다. 

능력으로는 이후락 못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잠룡 홍준표는 이후락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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