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증오의 정치’ 못 넘으면 미래도 없다
[기자수첩] ‘증오의 정치’ 못 넘으면 미래도 없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1.10.27 14: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대 진영을 ‘적’으로 인식하는 풍토 바뀌지 않으면 누가 대통령 되든 미래 없어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증오의 정치’가 대한민국 정치권을 휩쓸고 있다. ⓒ연합뉴스
‘증오의 정치’가 대한민국 정치권을 휩쓸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이런 대선이 있었나 싶습니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한탄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저 사람만은 막아야 한다’며 보수·진보 유권자들이 결집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런 민심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한국갤럽>이 10월 19일부터 21일까지 실시해 2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3강’을 형성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62%)과 이재명 전 경기지사(60%), 홍준표 의원(59%)이 모두 60% 안팎의 비호감도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세 사람의 호감도는 30% 안팎(이재명 32%·홍준표 31%·윤석열 28%)에 그쳤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면 전부 비호감’이라는 양극화된 지지 양상이 여론조사 결과로도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해당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사실 지금까지의 정치적 흐름을 보면, 이런 반응은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여당 후보도 야당 후보도 ‘통합’보다는 ‘증오’를 말하고 있으니까요. 여당 후보는 야당을 ‘적폐’로 규정하며 상대를 절멸(絶滅)해야 할 ‘악(惡)’으로 규정하고, 야당 후보들은 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러니 여당 지지자들도 야당 지지자들도 죽기 살기로 상대에게 증오를 퍼붓습니다. 누가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할 선거가, ‘누가 상대를 때려잡을 수 있는 강한 사람인가’를 뽑는 무대가 돼버린 겁니다. 여당에도 야당에도 ‘저 미운 상대 후보를 꺾을 수 있으면 누가 우리 후보가 되든 상관없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지부터가 문제입니다. 상대 진영을 ‘적’으로 생각하면서 ‘전쟁에서 이길’ 후보를 선출하는 것과, 상대 진영을 생각은 다르지만 존중해야 할 집단으로 생각하면서 ‘내가 생각하기에 더 좋은 나라를 만들 후보’를 선출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까닭입니다.

또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현재 대한민국에 필요할 과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상대를 공존 불가능한 적으로 보는 사회라면, 대화와 토론을 통한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위해를 가하려고 하는 ‘적’과 타협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제 이런 증오의 정치는 멈춰야 합니다. 우선 대선 후보들부터가 상대 후보와 지지자들을 인정하고, 단지 생각이 다를 뿐인 ‘대화의 상대’로 인식해야합니다. 상대 후보를 범죄자 취급하면서 ‘구속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런 풍토에서는 증오의 정치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대선 후보들이라면,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국가의 미래를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유권자들도 바뀌어야 합니다. 상대를 악마화(惡魔化)해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단호히 거부하고, 정책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후보들에게 높은 점수를 줘야 정치인들의 ‘나쁜 버릇’을 없앨 수 있습니다. 유권자들이 변하지 않으면,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언제든 ‘편 가르기’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의 나쁜 습관에 회초리를 들고, 다시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K-유권자’의 현명한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