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가계부채 세계 1위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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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가계부채 세계 1위의 본질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1.12.0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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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안정이 우선
서민 고통 덜어줄 대책은
'3C의 습격' 경계해야
정부 실패의 희생자들…금리 아수라장
대출만 눌러 될 일 아니다
누가 국민을 빚의 늪에 빠뜨렸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대한민국이 어쩌다 가계부채 비율 세계 1위의 나라가 됐을까.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밝힌 혁신국가 세계 5위를 자랑하던 한국이 아니었던가. 실로 허장성세(虛張聲勢) 였던가.

우리나라 가계 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증가 속도도 가장 빠른 것으로 확인됐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세계 주요 37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4.2%로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2~4위인 홍콩(92.0%), 영국(89.4%), 미국(79.2%) 등에 한참 앞서는 압도적인 1위이다. 증가 속도 역시 우리나라가 가장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부채 비율이 104.2%라 함은 가계가 지고 있는 빚이 나라 전체의 경제 규모를 웃돌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조사에서 100%를 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했다. 

통제 범위를 넘어선 과도한 가계 부채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최대의 위험 요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돈이 풀렸는데 이 돈이 주택과 주식, 가상화폐 등 자산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가계부채 비율 세계 1위의 나라가 됐을까.ⓒ연합뉴스
대한민국이 어쩌다 가계부채 비율 세계 1위의 나라가 됐을까.ⓒ연합뉴스

잘못된 정책, 국민 생활고 가중

우리기업들은 치솟는 원가(cost), 공급망(chain) 교란, 불투명한 환율(currency)의 ‘3C 공포’가 덮쳐 내년 사업계획도 시계(視界) 제로다. 물가 금리 환율 모두 종잡을 수 없어 컨틴전시플랜 수립조차 버겁다.

이런 가운데 IIF에 따르면 한국 가계부채의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주택 가격이 급등한 게 주원인이라는 얘기다. 26차례나 이어진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대책이 낳은 결과였다. 이 때문에 집이 없는 사람들은 한순간에 벼락거지가 됐다. 늦게라도 집을 사려는 사람들과 다락같이 올라간 전세금을 마련하려는 사람들은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했다. 

물가가 약 10년 만에 가장 높은 3.2%의 상승률을 기록할 정도로 상승세가 가파른데도 정부의 방만한 씀씀이는 여전하다. 내년 예산을 600조원대 초팽창 규모로 편성한 것도 모자라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의 현금 살포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잘못된 정책이 물가와 주거비, 이자 부담 등을 동시 다발적으로 급등시켜 국민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있다. 그 최대 피해자는 다름 아닌 저소득 서민층이다.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 실패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정부의 정책 실패다.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대책이 최악의 ‘미친 집값’을 불렀고 청년·무주택자들이 ‘영끌 빚투’에 나서면서 가계 빚이 폭증했다. GDP 대비 가계빚 비율이 세계 1위에 이르고 말았다. 정부가 뒤늦게 돈줄 조이기에 나서자 청년과 서민들이 빚과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빚을 내야 하는 지경이다.

정부의 실패한 정책과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재난이 겹쳐 국민을 빚더미에 몰아넣은 것이다. 정부는 뒤늦게 가계대출의 심각성을 깨닫고 주택담보대출을 축소하는 등 법석을 떨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니 실효가 없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자영업자들의 부채도 큰 문제이다. 2021년 8월 말 기준으로 개인사업자 대출잔액은 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합하여 총 988.5조원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12월 말에 비해 173조원이 증가했다. 여기에 희망을 잃은 청년들이 주식과 가상화폐에 투자한 '영끌 부채'도 규모가 만만치 않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집값 상승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일으킨 전 세계적 현상과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한국의 집값 상승이 2020년부터 시작했는지, 현 정부 출범 시기인 2017년부터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투기 탓’은 정부의 무능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한 과잉 유동성이 더해져 집값이 올랐고, 덩달아 가계부채도 급증한 것이다.

생활물가 급등 가계부담 상승

최근 보험연구원의 한 보고서는 주택 가격이 하락하면 가계 부채도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라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사례를 볼 때 주택 가격 조정 없이 가계 부채가 조정된 경우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주택 가격이 안정돼야 가계 부채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 수년간 수도권을 중심으로 값이 2~3배 폭등한 아파트 단지가 부지기수이다. 투기 수요에 더해 무주택자와 젊은 층이 '영끌' 대열에 동참하면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 과정에서 가계 빚이 많이 늘어난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한 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가 만연한 탓이 크다. 부동산 값이 치솟으면서 투기 수요에 더해 무주택자 등이 온갖 수단으로 돈을 빌려 집을 구입하는 대열에 나서면서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랐다. 이 과정에서 가계빚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청년층이 주식과 가상화폐 열풍에 편승해 빚을 내서 투자한 영향도 크다.

서민들 고통은 일자리 악화와 직결돼 있다.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이 좋은 일자리를 없애고 저소득층의 돈벌이도 줄어들게 만들었다. 주 40시간 이상 풀타임 일자리가 지난 3년 새 약 200만개 줄었다. 이 와중에서 물가는 고공 행진 중이다. 기름값부터 라면·밀가루·과자·막걸리까지 온갖 생활물가가 뛰어올라 가계 부담을 키우고 있다. 

국가경제 전체, 잠재적 위험에 노출

가계는 국가 경제의 기초이지만 국가나 기업 등 다른 경제 부문과 비교해 외부 충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가계가 빚더미 위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향후 경기 변동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결국 국가 경제 전체가 잠재적 위험에 노출돼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자산·소득 불평등은 프랑스 혁명 때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이런 양극화는 저출산·고령화를 포함한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결국 전 사회구성원을 피해자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여당은 국민을 ‘빚의 늪’에 빠뜨린 근본 원인을 돌아보지 않은 채 대출을 더 풀겠다는 식의 달콤한 약속만 쏟아내고 있다. 여당은 가계 빚 폭증 요인으로 코로나19를 지목하고 재정 확대를 주장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속도의 가계 빚 증가 원인을 전 세계적 현상인 코로나19로 돌리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과도한 가계 부채는 소비에 타격을 주고 경기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국내외에서 금리 인상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가계부채가 지금처럼 가파르게 증가하면 향후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최악의 경우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지난 8월 0.25%포인트 인상된 데 이어 추가로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연 이자 부담 규모는 지난해 말 대비 5조8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은 금리가 오를 경우 무더기 부실에 빠질 수 있다.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 가능성

최근 물가 상승이 심상치 않다. 게다가 국제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지난달 우리나라 수입물가가 6개월 연속 상승했다. 수입물가는 통상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급증한 가계부채에다 향후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면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전체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여당은 가계 빚 폭증 요인으로 코로나19를 지목하고 재정 확대를 주장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 속도의 가계 빚 증가 원인을 전 세계적 현상인 코로나19로 돌리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과도한 가계 부채는 소비에 타격을 주고 경기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또 경기 침체기에 과도한 가계·기업 부채로 연쇄적인 부실 확대와 자산 버블 붕괴 등이 벌어질 경우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닥칠 수 있다. 부채 뇌관이 터지는 것을 막으려면 적정 수준의 금리 인상과 대출 관리, 부동산 시장 안정책 등을 아우르는 정교한 ‘안전핀’을 마련해야 한다.

전반적인 규제 방향은 맞지만 디테일에 더 강해져야 한다. 문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잡으려면 과잉 유동성을 해소해야 하는데, 전통적 접근법으로 하자면 금리를 더 올리고, 대출 규제를 해야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해법은 부동산에 있는데, 규제의 도그마에 빠진 정부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신도시 계획이 늦어져 당장의 주택 부족을 해소할 수 없다면 기존 주택이라도 매물이 나오게 해야 하는데, 엄청난 양도소득세 과세로 퇴로마저 막고 있다. 정부가 세계 1위 가계부채와 부동산 폭등 문제를 정말 풀고 싶다면, 규제 일변도에서 벗어나 문제의 본질을 봐야 한다.

주요 원인 제어할 총체적 대책을

정부의 호언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벼락 거지'로 전락한 서민들에게 정교하면서도 담대한 정책으로 집값 안정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주는 것을 최우선일 것이다.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억제하지 않고 방치하면 후폭풍이 거셀 것이다. 경제 규모 대비 가계빚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실물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경제 충격에 그치지 않고 사회 문제로 비화할 우려도 크다. 금융당국은 금리 인상에 앞서 충격을 최소화하는 출구전략 마련에 나서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여야 대선후보들도 돈쓸 궁리만 할 게 아니라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해법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그나마 여력이 있는 재정을 활용해 서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데 일조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등으로 치명타를 입기 쉬운 저소득층이나 20·30대 청년층에 대한 각별한 관리가 요구된다.

IIF 보고서는 가계부채가 한국의 경제위기를 초래할 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을 발신한 것으로 허투루 들어선 안 된다. 가파른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억제하지 않고 방치하면 후폭풍이 거셀 것이다. 경제 규모 대비 가계빚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실물경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경제 충격에 그치지 않고 사회 문제로 비화할 우려도 크다. 

정부는 대출 억제 차원을 넘어 가계부채 증가의 주요 원인을 다독일 수 있는 총체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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