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초슈퍼예산 - 高물가속 '퍼주기'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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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초슈퍼예산 - 高물가속 '퍼주기' 인가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1.12.1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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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성 지출로 사상 첫 600조 원대
'밑 빠진 독 물 붓기 의구심' 늘어
비상경제 대응과 성장동력 초석을
구조조정으로 지출 효율성 높여야
민생회복과 경제활성화 촉매 기반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우리나라 예산이 600조 원대로 올라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내년도 예산안 607조7000원이 법정 시한을 하루 넘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됐다. 그런 ‘초슈퍼예산’이 꼭 필요한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예산 심사와 증액 시점의 적절성을 놓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정부안보다 예산을 늘렸다. 정부안보다 3조3000억 원 순증된 역대 최대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반대한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증액한 예산안을 일방 처리했다. 야당이 ‘이재명표 예산’이라는 지역화폐와 경함모 관련 예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여당 단독 처리로 귀결됐다. 

문재인 정권 후 예산은 크게 늘어났다. 2017년 400조7000억 원에서 현 정부 임기 5년 만에 200조 원 이상 불어났다. 애초 복지 확대에 비중을 두고 정부 지출을 크게 늘려온 데다 코로나 충격에 따른 방역·재난지원금이 늘면서 전례 없던 ‘메가(mega, 거대) 예산안’이 됐다.

문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인 내년에도 재정 지출을 확대하겠다며 사상 최초로 600조 원이 넘는 슈퍼예산안을 짰는데, 혈세 낭비를 감시해야 할 국회가 더 늘려 대선용 초슈퍼 예산을 만든 형국이다.

우리나라 예산이 600조원대로 올라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연합뉴스
우리나라 예산이 600조 원대로 올라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연합뉴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당초 정부 예산안부터 적자였다. 그런데도 당정은 세수에 여유가 생기면 나랏빚은 안 갚고 멋대로 쓰기에 바쁘다. 국가 예산을 제 주머닛돈인 줄 안다. 특히 이번에는 이재명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포퓰리즘 예산까지 만들었다. 이 정권엔 나라 살림보다 후보가 우선으로 보이는가.

더 가관인 건 내년도 예산안에 여야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다수 반영됐다는 점이다.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 늘리기에 골몰하며 제 실속만 차린 것이다. 민주당 김영진 사무총장은 지역구인 경기 수원시병에 수원팔달경찰서를 신축하기 위한 예산으로 100억 원을 따냈다.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지역구인 충남 천안시을의 KTX 천안아산역 지하에 재난 대피를 위한 구난역 설치 예산으로 1100억 원을 확보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울산 남구을)는 울산 남구 평창현대아파트 앞 공영주차장 조성사업 76억 원 등의 지역구 관련 예산을 확보했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이만희 의원(경북 영천시·청도군)은 당초 정부안에 반영되지 않았던 신규 예산을 대거 확보했다. 국가 재정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랏돈을 끌어다 지역구 예산 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몰염치가 도를 넘었다.

나라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 3분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 분기 대비 0.7% 감소해 실제 국민의 지갑은 더 얇아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 지출을 마구잡이로 늘리면 물가만 더욱 자극할 것이다.

국회심사 과정에서 예산이 증가한 직전 사례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다. 국회의 이런 행보는 우리 경제가 처한 작금의 상황이 금융위기 당시에 못지않다는 인식을 여야가 공유한 데 따른 측면이 큰것으로 보인다.

발상 자체가 포퓰리즘

국민 마음이 편하지 않는것은 당연하다. 지난 4년간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진 게 없고, 향후 경제 상황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는 세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국민도 늘어나고 있다. 집값 폭등으로 수십조원의 세금을 거두고도 정부 씀씀이가 커지면서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글로벌 공급망 대란으로 물가는 계속 폭등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3.7%를 기록해 1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그만큼 가계 소비와 투자가 움츠러들었다는 것이 올해 3분기 국민소득 통계로도 확인됐다. 물가가 오르는 와중에 경기는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짙어진 것이다.

여야는 지난해에도 예산을 정부 안보다 2조 2,000억 원 증액했다. 여야는 이번에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예산 증액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선심 경쟁일 뿐이다. 이른바 ‘이재명표’ 사업인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정부가 처음 책정한 6조 원에서 30조 원으로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 지역화폐 사업을 밀어붙여 5배로 확대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포퓰리즘이다.

차기 대통령, 과감한 구조조정을

누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내년 예산안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이번 예산안은 내년 3월 9일 대선과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예산이 대거 포함됐다. 내년 예산안에 포함된 30조 원 규모의 지역화폐와 각종 현금성 수당이 과연 불요불급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당초 제출한 예산안은 전년 본예산(558조 원)보다 8.9% 증액한 것이어서 ‘초슈퍼 예산’이란 지적을 받았다. 아동수당 확대 등 복지성 예산 비중을 사상 최대치로 늘리고 노인의 단기 일자리 창출, 청년 월세 지원 등 현금 뿌리기 위주로 편성해 ‘퍼주기 예산’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소상공인 손실보상 하한액을 50만 원으로 높인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를 위해 국회가 불요불급한 예산을 깎아야 하는데도 실제로는 예산을 증액하는 ‘역주행’을 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이미 정부 예산안 기준 50.2%에 이르렀는데도 나랏빚 급증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지역화폐예산 급증 논란

특히 논란이 컸던 ‘이재명표(標)’ 지역화폐 예산은 끝내 6052억 원으로 확대돼 발행물량이 6조 원에서 30조 원으로 무려 5배 늘었다. 지역화폐는 액면가를 10% 할인해 판매하는데, 이 차액을 정부가 보조한다. 당정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15조 원씩의 발행물량을 지원토록 했다. 

그러나 지역 화폐는 국책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차 지난해 9월 효과가 없다고 평가했다. 상당수 업소가 안 받는 등 전국적인 온누리상품권에 비해 사용처가 제한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떨어지며, 지역 매출 효과도 슈퍼마켓 등 일부만 본다는 것이다. 2020년의 경제적 순손실이 2260억 원이라는 분석도 제시했다.

지역화폐예산 급증이 논란거리이긴 하다. 소상공인 손실보상 하한금액을 기존 10만원에서 50만 원으로 높이고, 소상공인 213만명에 대해 35조8000억 원 규모의 저금리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도 “취임 후 100일 동안 50조 원을 투입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파격 공약을 내놓은 만큼, 코로나 직접 피해계층에 두텁게 지원한다는 방향을 살려 여야가 적기에 효율적 집행을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 국가채무, 가장 가파른 상승세 

우리나라 예산은 사상처음으로 600조 원대로 올라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50.2%로 상승하게 됐다. 위기 상황에서는 확장적 재정 운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나라 빚보다 가계부채가 더 많은 작금의 상황에서는 정부가 재정을 활용해 경기활력의 마중물 역할을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전제되지 않은 국가재정 남용은 파산을 부를 뿐이다. 현 정부 들어 지난해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1.63%에 그쳤다. 차기 정부를 이끌 지도자는 성장에 유능함을 증명해야 한다.

이 기간 재정지출을 해마다 8~9% 늘려온 결과, 정부 출범 직전 600조 원대에 머물렀던 국가채무는 내년 1070조 원에 이른다. 이 여파로 내년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50%를 넘어선다. 줄 잇는 선거마다 선심성 예산이 투입되면서 예산이 불어난 탓이다. 

물론,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과 사회 양극화 해소, 미래 먹거리를 위한 차세대 성장동력 확충 등에 적극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다만 재정건전성에 관한 우려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매년 7∼9%의 '슈퍼 예산'을 편성한 결과 내년에는 국가채무가 1천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국가채무가 선진 35개국 가운데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2026년에는 GDP 대비 66.7%를 기록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도 최근 발표됐다. 

국가 채무 특단의 장치 필요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이 녹록지 않다. 주요 경제지표도 기대에 못 미친다. 최근 발표된 각종 통계를 보면 한국 경제는 지난 3분기(7∼9월)에 0.3% 성장하는 데 그쳤다. 1분기(1.7%), 2분기(0.8%)와 비교해 크게 낮은데다 시장 전망치(0.5%)도 밑돌았다. 코로나 4차 유행과 공급대란 등으로 민간소비와 투자가 뒷걸음친 데 따른 결과다. 

경기둔화 속 물가상승을 의미하는 ‘슬로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소비는 물론 실질 국민총소득(GNI)도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방역에 실패하면 민생과 경기회복도 불가능하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 발등의 불인 병상 확보, 감염병 전담병원 설립, 재택치료 체계 지원, 보건인력 확충, 부스터샷(추가 접종) 등 방역 현안에 내년 예산이 유용하게 쓰여야 한다.

특히, 재정당국은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를 제어할 특단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엄중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번 예산안에 대선을 겨냥한 선심성 항목이 적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총 23조5천억 원이 책정된 청년 예산에는 저소득 청년의 월세 지원과 군인 월급 증액, 반값 등록금 지원 대상 확대 등의 다양한 현금성 지원책이 들어 있다. 

꺼져 가는 성장동력 불씨를 

이와 별도로 공공일자리 105만개를 만들기 위해 31조 원이 투입된다.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청년들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로 인해 불어나는 나랏빚은 결국 청년 세대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는 점에서 국회가 제대로 걸렀어야 했다는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정부는 수출에는 드라이브를 걸고, 내수 부진은 약발 있는 정책을 통해 상쇄하는 방향으로 정책과 예산 집행을 최적화해야 한다. 경기회복 기조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예산을 적기에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지난해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1.63%에 그쳤다. 이 기간 내년 예산은 집행 과정에서라도 구조조정을 통해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업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최대한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 꺼져 가는 성장 동력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하였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하였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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