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S’ 빼고 ‘EG 경영’ 펼치는 대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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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S’ 빼고 ‘EG 경영’ 펼치는 대기업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1.12.10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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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경영 구호 외치며 폐기물처리업 진출 도미노
자본가들은 '다이아몬드'에 집중…'석탄' 양보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최근 여러 국내 재벌 대기업들이 본업과 거리가 먼 친환경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폐기물처리업 진출이 트렌드가 된 분위기입니다. 강원 영월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조성하려는 쌍용C&E(이하 쌍용씨앤이, 구 쌍용양회공업), 중소 폐기물처리업체를 연이어 인수 중인 SK에코플랜트(구 SK건설), 폐기물매립장을 짓기 위해 지난 11월 5일 강원 강릉 주문진읍 향호리 일대 토지 약 30만 ㎡를 매입한 태영건설그룹의 태영동부환경 등이 대표적이죠. 이들이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건 ESG 경영입니다. 기업 가치, 투자 판단 등에 있어 ESG 관련 지표를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는 추세가 전(全)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경영환경 속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친환경 신사업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고 있다는 건데요.

대기업들이 왜 수많은 친환경 신사업들 가운데 유독 폐기물처리업에 눈독을 들이는 걸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이런 것 같습니다. 미국, 중국 등 선진국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경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기후변화 대응, 탄소중립 등 친환경 프레임을 적극 활용한 데 따른 우리나라 정부의 관련 규제 강화 기조,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증하는 폐기물 등 영향으로 향후 폐기물처리산업이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실제로 국내 폐기물처리 단가(1톤당)는 팬데믹 전인 2019년 말 소각처리 16만5100원, 매립처리 18만6800원에서 2021년 9월 말 기준 소각처리 18만5400원, 매립처리 23만3800원 등으로 12~25% 가량 인상됐습니다. 관련 업계에서는 국내 폐기물처리 시장 규모가 오는 2025년 약 2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합니다. 쓰레기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환골탈태한 셈이죠.

최근 여러 국내 재벌 대기업들이 폐기물처리산업에 연이어 뛰어들고 있다. 자원선순환도 좋지만, 동반성장을 위한 산업생태계 선순환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 pixabay
최근 여러 국내 재벌 대기업들이 폐기물처리산업에 연이어 뛰어들고 있다. 자원선순환도 좋지만, 동반성장을 위한 산업생태계 선순환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 pixabay

그런데 말입니다. 재벌 대기업들이 폐기물처리산업에 진출하는 게 과연 ESG(환경 Environment, 사회 Social, 지배구조 Governance)에 부합하는 경영활동일까요. 우리나라에서 폐기물처리 시장은 그간 중소기업들의 텃밭이었습니다. 이들은 건설현장, 생산·제조현장 등에서 배출된 각종 폐기물에 대해 대기업들과 하도급계약을 맺고 용역을 공급해 수익을 창출해왔죠. 국내 전체 재활용산업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99%에 달하고, 이중 절반 이상이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이라는 통계도 존재합니다. 때문에 폐기물처리업을 영위하는 중소기업들 사이에서는 대기업들의 이 같은 움직임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자원순환단체총연맹·한국재생플라스틱제조업협동조합·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은 "SK, 보광, 롯데, LG, 한화, DL 등 대기업·중견기업들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수준을 넘어 아예 밥상을 통째로 가지겠다는 방식으로 침탈 행위를 하고 있다"며 "일정 부분을 중소기업적합업종이나 생계형적합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벌써부터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해 울산시에서는 중소기업들이 신청한 폐기물매립장 건설 관련 허가는 반려하고, 고려아연이 신청한 폐기물매립장 건설 관련 허가는 승인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해당 중소기업은 고려아연이 폐기물매립장을 짓겠다는 땅과 동일한 부지에서 폐기물매립장을 건설하겠다고 허가를 신청했었죠. 그런데 지방자치단체가 재벌 대기업인 고려아연의 사업만 승인을 내준 겁니다. 특혜 논란이 일자 시(市)는 적극 해명에 나섰으나, 대기업의 자본력과 로비에 지자체가 놀아나고 중소기업이 당한 게 아니냐는 의혹만 확산된 바 있습니다. 지역사회 반발도 커지고 있습니다. 폐기물처리시설은 혐오시설입니다. 누구도 집 근처에 폐기물처리장이 들어서는 걸 바라지 않죠. 그런데 중소기업이 수행하면 3만~5만 평 규모가 될 게 대기업이 맡으면 10만~20만 평으로 커지니까 더욱 주민 반대가 극심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쌍용씨앤이가 폐기물매립장을 지으려는 강원 영월 한반도면 일대, 태영건설이 폐기물매립장 조성을 추진하는 강릉 주민진읍 일대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 이유입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 토지 매매 과정에서 수십억 원 규모 땅 투기가 의심되는 대목까지 있기도 합니다(이 부분은 추가 취재 후 보도하겠습니다).

물론, 대기업들도 사정이 있습니다. 이들이 폐기물처리산업에 뛰어드는 건 단순히 수익성만을 고려한 행보가 아닙니다. 재활용이 가능한 포장재를 사용하고, 폐기물을 고부가가치 소재로 만들어 재활용하는 등 자원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라는 정부 차원의, 나아가 전(全)세계적 차원의 압박과 제재가 본격화되고, 점차 강화되고 있으니까요.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게 이를 맡기는 게 못미더울 수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ESG 경영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석탄'은 중소업체에 양보하고, 대기업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 있을지, 더 아름답게 세공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는 게 올바른 방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소기업들이 폐기물처리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영세사업장 자체 기술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폐기물까지 다룰 수 있도록 자본과 기술력을 투자·공유하고, 나아가 상생협력을 도모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S'(사회 Social) 경영이 아닐까요. 중국 춘추전국시대 명재상 관중은 '관자'라는 책에서 '천자는 주옥을 소장하려고 하고, 제후는 금석을 소장하려 하고, 사대부는 말과 소를 기르고, 일반 백성들은 곡식이나 포목을 가지려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힘세고 지혜로운 자들이 값이 싼 것을 비싸게, 비싼 것을 싸게 엉망으로 만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럼 홀아비, 과부, 독신자, 노인 등 저소득층은 곡식과 포목을 얻지 못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기업이 ESG 경영이라는 명분 하에 쓰레기장, 고물상까지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면 중소기업, 영세사업장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대기업 입장에서 폐기물처리업을 영위하는 건 ESG 경영이 아니라 'EG'(Easy) 경영이 아닐까 싶습니다. 땅 사고, 매립·처리장 짓고, 자신들의 사업장에서 나온 폐기물 운반하면 수익도 나오고, 덤으로 친환경 이미지도 얻는 '돈 놓고 돈 먹기'니까요. 사회(Social)의 'S'도,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물론 중장기적 국가경제 발전 차원에서 대기업이 나서서 수행해야 할 혁신·전환(Shift)의 'S'도 쏙 뺀 채 말입니다. 다시 한번 물어봅니다. 재벌 대기업들이 폐기물처리산업에 진출하는 게 과연 ESG 경영에 부합하는 경영활동일까요.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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