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선 캠프 어슬렁거리는 퇴행적 대관팀들
스크롤 이동 상태바
[기자수첩] 대선 캠프 어슬렁거리는 퇴행적 대관팀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1.28 15:07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대기업 대관팀(對官)에게 올해 상반기는 무척 바쁜 시기다. 오는 3월 대선, 6월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때여서다. 정권재창출 또는 정권교체를 염두에 두고 각 캠프에 줄대기 작업을 펼쳐야 한다. 대선 캠프진들 중 지선 공천을 받는 사람들이 많으니 출마 예상자들에게 눈도장도 찍어야 한다. 때문에 주요 대기업들은 본격 선거정국에 돌입하기 앞서 대관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 집중했다. 삼성그룹은 미래전략실의 유산인 삼성전자 사업지원TF를 지난 연말 서초사옥으로 불러들였고, 현대자동차그룹은 현 야권에 편중된 그룹·주요 계열사 대관팀 체질 개선을 일찌감치 추진했다, LG그룹과 SK그룹도 대관팀 조직개편을 최근 2~3년 간 꾸준히 진행했으며, 포스코그룹과 한화그룹 역시 비슷한 시기 대관팀 물갈이를 단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관은 정부와 국회, 사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등과 재계·산업계 간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함으로써 나름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특히 미국 등과는 달리 로비 행위를 합법화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기업 대관팀은 비공식적인 로비스트 활동을 펼치면서 정부 정책과 법·제도에 대해 조언·보완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한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선 썩 이미지가 좋지 않다. 비리와 뇌물수수, 특혜 시비 등 각종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사례가 셀 수 없이 많고, 정치권과 재벌 오너일가 간 오가는 거래의 대가와 정경유착의 통로로 활용돼 대형 게이트의 시발점이 되는 경우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각 회사들은 선언적이나마 대관팀을 총수 보위조직이 아닌 정보수집 조직으로 운영하겠다며 나름 자정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서울 여의도 일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등 주요 정당 대선 캠프 주변에 자주 출몰하는 몇몇 기업 대관팀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이 같은 자정 노력이 전혀 엿볼 수가 없다. 이들은 대통령 후보자가 청와대에 입성할 걸 대비해 정책·공약 관련 정보를 수집하거나 인맥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후보자를 둘러싼 비리·부패 의혹에 연루된 경영진들을 비호하고자 하는 목적 아래 대관업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그 행태도 우스꽝스럽다. 이재명 후보의 스캔들에 휩싸인 업체 대관팀은 국민의힘 캠프 관계자들에게 줄을 대느라 여념이 없고, 윤석열 후보 관련 논란에 언급된 업체 대관팀은 민주당 캠프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모색하고 있다. 유력 대선 후보 스스로 '대선에서 지면 없는 죄로 감옥에 갈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감방행 선거' 구도가 형성된 실정인 만큼, 선거 후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총수·경영진들이 대관팀에게 이 같은 업무를 맡긴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 파면돼 조기대선을 치른 2017년, 그해의 사자성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다. 민간인, 대기업과의 국정농단으로 민주주의를 어지럽힌 정권을 끌어내렸으니, 이제는 나라를 바로세울 기반을 구축해 올바른 정부를 구현하자는 취지에서 선정됐다. 그런데 이번엔 새 정권이 출범하기도 전에 국정을 농간하려는 시도가 캠프 주변에서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시곗바늘을 5년 전으로 다시 되돌릴 셈인지 참으로 경멸스러우면서도 안타깝다. 왜 지난해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와 한 패가 됐다)가 꼽혔는지 알만 하다는 생각도 든다. 대선 캠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기업들은 이제라도 퇴행적인 대관팀 운영을 삼가고, 올바른 대관업무가 수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자정 노력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여의도에는 보는 눈이 많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박장순 2022-01-29 08:55:26
대선 때마다 반복되는 구태의연한 행태에 염증을 느낍니다.
시원한 기사 감사합니다.~~~

이경자 2022-01-28 19:39:59
퇴행적 양상들은 대관뿐만 아니라라~~!
오랫만에 좋은 기사를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