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신문 보기] 정경유착?…DJ의 현대 밀어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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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신문 보기] 정경유착?…DJ의 현대 밀어주기
  • 방글 기자
  • 승인 2022.02.22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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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와 불편했던 정주영 회장, DJ와 급속도로 가까워져 ‘눈길’
DJ정부, 현대 금강산 관광선 출항에 ‘햇볕정책 옥동자’ 평가
현대, 구조조정 강도 높이며 정부 뒷받침설 부인 ‘밀월 없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방글 기자]

청와대와 현대가 모종의 ‘딜’을 했다는 의혹은 야당은 물론, 언론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던 문제 중 하나였다. ⓒ시사오늘 김유종
청와대와 현대가 모종의 ‘딜’을 했다는 의혹은 야당은 물론, 언론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던 문제 중 하나였다. ⓒ시사오늘 김유종

“빅딜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빼앗겼습니다.”

억울한 LG의 호소에서 그칠 일은 아니었다. 분통터지는 LG라고 그냥 한 소리는 아니었다. 청와대와 현대의 유착관계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유 있는 의혹 중 하나였다. 알면서도 빼앗길 수밖에 없는 현실에 구본무 LG 회장조차 힘없이 주저앉은 것이었다. 

청와대와 현대가 모종의 ‘딜’을 했다는 의혹은 야당은 물론, 언론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던 문제 중 하나였다. 

시작은 김영삼 정부 시절 5년간의 보복을 견뎌야 했던 정주영 회장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92년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던 해, 정주영 회장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이 선거에서 김영삼(43%) 후보, 김대중(34%) 후보에 이어 지지율 3위(16%)에 올랐지만, 결과적으론 낙선했다. 

“돈으로 권력을 사겠다는 사고와 버르장머리를 반드시 고쳐놓겠다.”

김영삼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을 향해 내뱉은 한 마디다. 이후, 현대의 사업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현대 계열사들은 국책은행 설비자금 일체를 쓸 수가 없었고, 공공기관 발주 공사도 막혀버렸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자 현대는 김대중 대통령과 손을 잡아야겠다는 판단을 한다. 그렇게 현대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 파트너로 거듭났다.

1998년 12월 25일자 조선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
1998년 12월 25일자 조선일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

정부-현대 ‘상부상조시대’

현대그룹이 24일 반도체 통합경영주체 자리를 사실상 확보함에 따라, 현정부 출범 이후 신정부와의 ‘수퍼 밀월 관계’를 다시 한 번 과시했다. YS정권시절 현대는 미운 털이 박혀 관료들과 은행들의 눈치 보기에 바빴으나, DJ정권이 들어서면서는 ‘안 되는 것이 거의 없는 재벌’로 변했다고 재계 경쟁자들은 말하고 있다. 

현대는 당초 올 봄 3각 빅딜 얘기가 나왔을 때 이를 거부하는 입장을 취했다가 지난 8월 정주영 명예회장과 김대중 대통령의 청와대 면담을 계기로 방향을 선회, 본격적인 확장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그 후 현대가 해온 일은 대부분 정부가 좋아할 만한 것들이었다. 정부의 고민을 풀어주는 해결사 역할을 현대가 해왔다는 얘기. 

(중략) 또 끈질긴 협상 끝에 당초 출항일보다 2개월 늦은 11월 18일 금강산 관광선을 띄움으로써 ‘햇볕정책의 옥동자’를 탄생시켰다는 칭찬을 정부로부터 받았다. 

(중략) 꼭 이 때문이라고 할 순 없지만, 국방부는 최근 중형잠수함 도입사업을 경쟁체제로 바꾸겠다고 발표, 현대중공업이 잠수함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활짝 열어주었다. 여기에 반도체 빅딜도 결국 현대편 손이 올라갔다. 정부와 너무 박자가 잘 맞는다고 다른 경쟁 기업들은 수군거린다. 

금융계에선 이런 추세라면 현대가 12%의 지분을 갖고 있는 강원은행, 조흥은행, 현대종금의 합병도 결국은 현대 측 의도대로 결말이 지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생명을 통한 본격적인 보험업 진출도 시간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조선일보>1998.12.25

“대기업 한 곳이 거부해 안 되고 있다. 나는 빅딜을 간절히 바란다. 졸속이라도 해야 한다.”-김대중(1998.06.18.)

김대중 대통령이 말한 ‘한 곳’은 사실 현대였다. 이때만 해도 현대는 DJ정부가 추진하던 삼각 빅딜에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8월, 정주영 회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직접 면담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정주영 명예회장 김 대통령 면담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24일 저녁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청와대나 현대그룹은 그동안 이를 비밀에 부쳤으며, 구체적인 면담 내용도 일절 밝히지 않았으나, 27일 밤 면담 사실을 시인했다. 

(중략)

이와 함께 지난 6월 현대-삼성-LG그룹 간의 소위 ‘3각빅딜’ 협의를 막 시작하려고 했을 때 현대가 이를 거부한 데 대해 정 명예회장이 정식으로 사죄했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당시 현대는 비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3각빅딜을 거부했던 것을 청와대에 사죄했었다. 

-<조선일보>1998.08.28.

이후, LG에 반도체를 포기하라는 압박이 본격화됐고, 실사를 진행하는 등 반도체 빅딜에 속도가 붙었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현대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 ‘햇볕정책’이 있었다. 

“DJ정권 현대 특혜 의혹”

한나라당은 10일 발간한 당보 ‘민주저널’을 통해 김대중 정권의 현대그룹 특혜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한나라당은 “새 정권 출범 이후 현대만이 유독 승승장구 하는 것은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서 “정부의 햇볕정책은 현대의 대북사업의 방패가 되고 있어 정부와 현대간의 모종의 거래설이 유력하며, 92년 대선의 인연으로 김 대통령과 정주영 회장이 힘을 합치게 됐다는 설, 김대중-정주영 공동 노벨상 수상 목표설도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의혹의 근거로 △현대종금과 강원은행, 조흥은행의 합병 △현대의 기아-아시아자동차 인수 △금강산 독점개발 △빅딜로 5대그룹 중 현대만이 실질이익을 본 점 △현대중공업의 잠수함사업 진출 등을 꼽았다. 

-<조선일보>1999.02.11.

청와대와 현대의 밀월을 향한 의심은 잦아들지 않았고, 빅딜을 향한 각종 비아냥도 다양한 표현으로 표출됐다. 

빅딜 진행과정에서 정부의 무원칙을 빗대 ‘빅 스틸(Big steal)’, ‘빅킬(Big kill)’이라며 거칠게 비판했고, 일각에서는 빅딜의 최대 수혜자가 현대인 점을 이유로 “한국의 21세기가 현대화하고 있다”고 지적해댔다. 현대공화국, 신정경유착, 현대독주 등 각종 수식어가 현대에 따라 붙었다.

이쯤되니, 현대도 모른 채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1999년 1월 9일자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1월 9일자 경향신문.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현대 독주’ 비판여론 몸집 줄이기로 진화

현대가 그간의 영토 확장에 따른 세간의 정경유착 의혹, LG와의 보상 빅딜설, 자금난 제기 등에 대해 적극 진화에 나섰다.

현대 박세영 구조조정본부장은 8일 발표한 구조조정 계획을 통해 자산 1조 원 이상 대형계열사 3~4개사를 매각하는 한편 비주력 사업을 정리, 연내 자산을 32조 원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또 2005년까지, 5개 업종별로 소그룹으로 만들어 사실상 그룹을 해체한다고 덧붙였다. 

(중략) 그는 또 LG에 대한 보상 빅딜에 대해서도 검토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와 관련, 현대 관계자는 “‘현대공화국’, ‘신정경유착’, ‘현대독주’ 등 달갑잖은 여론과 시선이 부담스럽다”며 “박 본부장의 기자회견은 이를 무마하고 외국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현대는 특히 신규 투자사업 인수 등은 21세기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장기목표 아래 추진되고 있는 만큼 이를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보는 것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대규모 자산매각이나 거액의 외자유치가 쉬운 일은 아니어서 암초에 부딪힐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렇게 될 경우 현대의 구조조정 청사진은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어 앞으로 현대가 어느만큼 강한 의지로 구조조정에 나설지 주목된다. 

-<경향신문> 1999.01.09.

현대의 덩치는 커졌지만, 속은 달랐다. 기아에 LG반도체까지 인수하느라 자금에도 여력이 없었다. 구조조정은 여러모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악성 여론은 잦아들지 않았다. 급기야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 해명하기에 이른다. 

“현대그룹 특혜 없었다”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은 20일 “현대그룹은 외형이 확대된 만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더 많은 자구 노력과 계열기업 재편을 해야할 것으로 정부는 인식하고 있다”면서 “현대는 먼저 채권은행과 정부에 약속한 구조개혁 프로그램을 철저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 수석은 이날 국민회의 경제대책위 운영위원회에 참석, “현대그룹이 기아자동차 인수, 반도체 빅딜, 한화정유 인수 등으로 외형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나 이는 국제공개입찰이나 국제기관의 평가 결과에 따른 것이지 정부가 의도적으로 현대를 키운 결과는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략)

-<경향신문> 1999.04.21.

청와대는 “현대의 외형확대를 의도한 것은 아니다”고 했지만, “외형이 확대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해명은 했지만, 어딘가 시원하지는 않았다. 

정경유착, 현대공화국…사실 누가 뭐라해도 괜찮았다. 외형이 커진만큼 사업이 번창했다면…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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