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경제계가 복기해야 할 ‘20대 대선 세 가지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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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경제계가 복기해야 할 ‘20대 대선 세 가지 장면’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3.10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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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경영·데이터 경영·세대갈등 대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 앞에서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 앞에서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기업 경영전략과 국가 경쟁력 연구부문 최고 권위자 마이클 E.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18대 대선이 치러지기 직전인 2011년 우리나라를 방문해 연단에 섰다. 강의가 끝난 후 한 패널이 포터 교수에게 '다음해에 다시 한국에 오면 어떤 걸 가장 보고 싶느냐'고 물었고, 뜻밖의 답변이 나왔다. 그는 "선거다. 한국이 어떤 대통령을 선택할지 가장 궁금하다. 그리고 더 궁금한 건 왜 그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했을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영학의 대가의 입에서 왜 '선거'라는 말이 나왔을까. 정치와 기업경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위정자와 기업가들은 늘 충돌했고, 항상 공조했다. 이들의 앞서거니 뒤서거니가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확립된 현대시민사회 들어서는 자본권력이 우위를 잡는 듯했다. 기업가들이 건넨 후원금에 따라 선거 판도가 바뀌었고, 그들의 로비에 국가정책과 입법활동이 좌우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흐름이 다시 꺾였다. 코로나19 팬데믹라는 초유의 전염병 사태가 지속되면서 방역 통제권을 갖고 있는 정치권력의 힘이 급격하게 커졌다. 미중 무역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각 국가의 소부장·자원·식량무기화 전략 등 정치권력발(發) 지정학적 이슈들이 전례가 없는 리스크를 만들고 있고, 이 같은 불안정이 자본권력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정치적 환경에 따라 물가, 주가와 유가, 그리고 집값이 폭등과 폭락을 거듭하게 됐다.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고, 정치인들의 행보에 기업가들이 따라 움직이는 '선(先)정치 후(後)자본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난 9일 20대 대통령 선거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신승으로 막을 내렸다. 윤 당선인은 전통적 지지층인 TK(대구·경북), 서울 강남권, 60대 이상 유권자에 더해 이번 선거에서 캐스팅보트로 부각된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의 표심을 잡아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경기권에서 고전하고, 전통적 지지층인 호남에서도 제6공화국 이후 가장 많은 득표율을 보수정당에게 내주며 개표 막판 표차 극복에 실패했다. 최종 투표율(잠정)은 77.1%, 나름 민심이 분명하게 반영된 대선이었다. 다만, 승자와 패자 간 격차는 단 0.73%p로 미미했다. 기업가 입장에선 선(先)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유추하기가 쉽지 않은 수치다.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로 위기감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기업가들은 이번 대선으로부터 어떤 점을 배워야 하며, 또 어떤 경영적 메시지를 취사 습득해야 할까. 〈시사오늘〉은 2020년 21대 총선([시사텔링] 경제계가 복기해야 할 ‘21대 총선 세 가지 장면’,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831)에 이어 2022년 20대 대선에서 국내 경제계가 한번쯤 복기해야 할 세 가지 장면을 짚어봤다.

책임정치 시대의 만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선 패배 승복을 선언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선 패배 승복을 선언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21대 총선 당시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책임정치'라는 말은 없었다. 선거에서 패배해 물러난 당대표와 대선 후보들은 잠시 칩거에 들어갔다가 다음 선거 때 복귀하거나 기존 당을 깨고 새로운 당을 창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계은퇴 선언도 어디까지 선거공학적인 계산 아래 무책임하게 이뤄졌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 故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현재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정계은퇴를 번복한 수많은 인사들이 청와대,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지난 총선을 기점으로 국내에도 책임정치 시대가 본격 도래했다. 탄핵 후 도로친박당으로 회귀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박근혜 정부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을 차기 총선을 이끌 사령탑으로 선출했고, 선거의 여왕은 옥중서신을 전했다. 그리고 공천 파동이 터졌고, 원조 친박으로 불리는 인사(민경욱, 김석기 등)들이 직권 공천됐다. 탄핵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고, 지지도 않은 미래통합당은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을 내주며 참패했다. 진박들이 낙선했고, 황교안은 종로에서 체면을 구겼다. 황교안의 정치력은 궤멸됐다. 책임정치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20대 대선은 책임정치 시대의 만개를 알린 선거라고 감히 평가한다. 이번 선거는 국내 정치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거대양당의 10년 주기 정권교체설이 깨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탄핵 직후 치러진 대선, 여권의 총선 압승 직후 열린 선거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이재명이라는 대선 후보 한 개인이 대장동 스캔들 등에 연루되면서 경쟁력을 상실한 결과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는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국민이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40%를 위한 정치'에만 급급했다. 민주당은 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에도 '피해호소인'을 운운하면서 당헌·당규까지 바꿔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냈다. 21대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모습을 보고 책임정치 시대가 도래했음을 읽었어야 했는데, 이 같은 흐름에 내로남불로 대응하면서 2021년 4·7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그리고 정부여당은 이번 대선까지 그 스탠스를 줄곧 유지한 것이다. 제대로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 부동산 실패에 대한 사과는 끝까지 미루다 임기 말에나 이뤄졌다.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에 호남(비록 여전히 압도적이지만)마저 등을 돌렸다. 대장동 스캔들도 마찬가지다. 현 정권의 부동산 실정, 민주당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발(發) 투기 사태 사실상 방관 등이 없었다면, 결과론적이지만 화천대유 사태는 이렇게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법조인 스캔들'로 회자돼 윤석열과 국민의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줬을 공산이 크다. 

대선 전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겠다는 것인가"라며 윤석열을 겁박했던 문 대통령은 대선 후 "갈등과 분열을 씻고 국민이 하나가 되도록 통합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서야 책임정치 시대가 도래했음을 뒤늦게 깨달은 걸까. 책임정치 시대가 만개했다. 곧 책임경영 시대도 본격 도래할 공산이 커 보인다.

데이터의 중요성

ⓒ 여의도연구원
ⓒ 여의도연구원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과 이재명 간 표차가 0.73%p에 그친 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막판 선거 전략차 때문이라는 게 지배적이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던 민주당은 선거 직전 갑자기 읍소하기 시작했다. '참 죄송하지만 부탁한다', '우린 언제나 죄인입니다', '도와주십시오', '흠도 있지만 마음을 살펴주십시오'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이재명 본인조차 선거 당일 "아직도 3표가 부족합니다"라며 지지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갑자기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많게는 10%p 차이로 이길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우리나라 선거에선 선거 막판에 유권자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데 전혀 다른 자세를 취했다. 국민의힘은 과연 왜 그랬을까.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선거 캠프가 당 내부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주를 이룬다. 큰 표차로 윤석열이 이재명을 이긴다는 예측 자료에 너무 취해 그릇된 의사결정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선거 당일 한 지상파 개표 방송에 나와 지속적으로 이 같은 내용을 간접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간과했다. 여의도연구원(이하 여연)의 위상과 역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말이다.

여연은 새누리당 시절 18대 대선에서 박근혜가 승리한 이후부터 침체기를 겪었다. 연이은 선거 승리에 도취된 당은 여연의 예산과 인력 충원을 게을리했다. 특히 '옥새 파동'과 탄핵정국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여연의 인력이 많이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어 2020년 21대 총선으로 당세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연구비에 쓸 예산까지 여론조사로 당겨 쓰는 경향이 짙어졌다고 한다. 인건비도 많이 줄어 연구원들의 교육에 쓸 예산도 없었다고 한다. 더이상 싱크탱크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그런 집단에서 내놓는 자료가 과연 정확할 수 있을까. 시시각각 흐름이 바뀌는 대선판에서 여연만의 자료로 선거 전략을 수립하는 건 그야말로 리스크였다.

데이터의 중요성은 개표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윤석열이 근소한 차로 이길 것이라는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몇몇 여론조사 전문가와 유튜버 등이 이를 비판했다. 사전투표 반영을 이상하게 한 것 같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3.1~7.6%p 격차로 윤석열이 승리할 것이라는 블랙아웃 기간 여론조사들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일부 개표 방송 패널들은 "출구조사 집계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지상파 3사와 별개로 출구조사를 진행한 〈JTBC〉는 이재명이 신승할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놨다. 많은 민주당 지지층이 기뻐했고, 송영길 대표는 "이겼다"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가 가장, 무척 정확했다.

이와 비슷한 일이 기업 투자, M&A, 수주활동 등 과정에서 벌어진다면 그 업체는 얼마나 막심한 손해를 입게 될까. 데이터 미비, 잘못된 데이터 활용 등으로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본 기업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이 같은 리스크는 향후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4차 산업혁명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다. 믿을 만한 데이터를 창출·수집하고, 데이터의 신빙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AI가 데이터를 구축해도 판단은 사람이 한다.

성별갈등? 아니, 세대갈등 시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대 대선 전 유권자들에게 윤석열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대 대선 전 유권자들에게 윤석열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대남', '이대녀', '1번남', '2번남', 이번 20대 대선에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휩쓴 신조어들이다. 20대 남녀의 정치성향이 선거 판도를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 하에 각 정당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여기에 이용을 당한 2030세대가 스스로 갈라치기를 한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실제로 유효했다. 2030 여성들은 이재명과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몰아줬고, 2030 남성들은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추후 제대로 된 선거 통계가 나와봐야 알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전체 판도에 큰 영향을 주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50 대 50이 됐으니 말이다. 승패를 좌우한 건(연령별 측면에서만 볼 때) 4050과 60대 이상의 표 대결이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사회적 갈등은 성 대결이 아닌 세대 대결이 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특히 2030 대 4050의 구도가 예상된다. 2030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자신들이 정치권에 이용을 당했다는 걸 일부 깨닫게 될 것이며, 실제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세상에 반영시키기 위해선 현 사회 구조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4050과의 대결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4050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2030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경향이 짙어질 전망이다.

이미 선거 직후 이 같은 경향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정권교체를 이루며 권력을 잡은 국민의힘 내 기득권 세력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감지된다. 이번 대선에서 여러 개표 방송에 출연한 국민의힘 측 패널들 대부분은 신승의 책임을 이준석 대표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른바 '세대포위론'이 실패해 초박빙의 결과를 야기했다는 논리다. 정치권에서는 이들이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이준석 내치기'를 위한 밑밥을 깔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준석이 '공정'과 '줄세우기 타파'를 명분으로 앞세워 지선 공천 자격시험을 도입해 실행에 옮기고 있는데, 2030 젊은 예비 정치인들과는 달리 4050 이상 정치인들의 경우 시험 통과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 경제산업계는 이 같은 흐름을 인지해 삼성, LG, SK 등 재벌 대기업을 중심으로 연공서열 철폐 등 인사 혁신과 기업문화 개선에 착수한 상황이다. 능력만 있다면 2030도 임원이 될 수 있다며 홍보에도 적극적인 모양새다. 그러나 선(先)정치 후(後)자본 시대인 만큼, 정치권에서 세대 이슈가 터진다면 그 갈등은 언제든 경제산업계 전반으로 전이될 여지가 상당하다. 인사 혁신과 기업문화 개선은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슈 발생 전에 보다 적극적인 드라이브가 요구된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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