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스케치㉜] 나의 이야기①-할머니의 옛날옛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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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케치㉜] 나의 이야기①-할머니의 옛날옛적에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3.20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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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어령 교수가 남긴 메시지
다큐 '내가 없는 세상', 울림 커
범부인 우린 무얼 남기고 떠날까
버킷리스트 자전적 에세이 집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이어령의 '내가 없는 세상'. ⓒtvN
이어령의 '내가 없는 세상'. ⓒtvN

우리 모두에게 '내가 없는 세상'이란 테제(These)가 주어진다면…. 과연 상상이 되겠는가. 미래가 창창한 젊은 세대는 더더욱 공감키 어렵고 생각조차 하기 싫을 것이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고(故) 이어령 교수가 우리 사회에 전하는 마지막 강의가 공개됐다. 지난 3월 17일 방송된 tvN 다큐멘터리 '이어령의 내가 없는 세상'은 제작진이 2019년부터 약 2년여에 걸쳐 이어령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그가 없는 세상'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한 작품이자 마지막 유산이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는 “마지막으로 전하는 생각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2500여 분의 유산과도 같은 기록을 의연하고 담담히 남기고 2022년 2월 26일 우리 곁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없는 세상'을 통찰하고 격려하는 지성의 따뜻한 가르침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마지막이라면 뭘 남길까

무엇보다 이어령 교수는 “나는 말을 남기고자 한다. 사실 그 사람의 진실한 목소리가 담긴 건 말이다. 내가 없는 세상에는 글보다도 생생한 내 육성의 유언과 같은 말을 남기자”라 했다.

내가 없는 세상, 범부인 우리는 무얼 남기고 떠날까. 인터뷰를 보면서 나 역시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길지 않을 나이라, 지난 시간들을 회상해 컴퓨터 하드에 보관된 나의 지난 기록들이 떠올랐다. 기억의 편린들을 끄집어 내 퀼트 조각이불처럼 한 땀 한 땀 엮어보면 어떨까 해서 끄적여놓은 말의 잔치를. 

미숙하고 근사하진 않더라도 지난 시절을 기록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의의를 두고 싶었다. 쉬엄쉬엄 그 끝이 언제가 될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한줄한줄 써 내려가는 길 위에서 때론 가슴 아픈 순간이 오더라도 즐겁고 행복한 여정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였다. 그리고 자손 중 누군가가 읽어주면 좋겠단 바람과 함께.

연어처럼

세월의 저 건너편으로 연어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볼까.

봄이면 나의 고향 마을엔 화려한 꽃잔치가 열리고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친다. 그러나 아름다운 섬진강과 지리산은 지난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말없이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우리 조국의 역사뿐 아니라 평범한 집안의 가정사까지도. 이에 고향의 멋진 풍광이 하드웨어라면 명암이 교차하는 과거는 소프트웨어이기에 나에겐 동시에 떠오른다.

내가 자전적 글의 형태로 써놓은 내용엔 유독 할머니 존재의 비중이 크다. 나의 유년시절은 할머니의 옛날 옛적 이야기와 함께 자랐다. 과거,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이 있었지만 할머니는 지난 살아온 궤적을 자식들은 떠나고  함께 살던 어린 손녀딸을 붙들고 하소연이었든지 속풀이 었든지 풀어놨다.

나이 들어 반추해 보면, 부모님 다음으로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할머니가 차려준 밥상과 함께 날 반이상 키웠다 할 수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여 정작 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한게 아니라 나에게 할머니 이야기는 영양가 가득한 밥상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할머니 생전 증손인 나의 큰아들과 함께. ⓒ정명화 자유기고가
할머니 생전 증손인 나의 큰아들과 함께. ⓒ정명화 자유기고가

할머니 구술은 교육의 현장

그렇게 쌓인 할머니와 보낸 어린 시절은 나의 세계관 형성에 초석을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이야 자라는 세대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보다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접하는 시대로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말이다.

나라가 풍전등화같이 한 치 앞도 모를 험로를 지날지라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 할머니가 살던 시기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급변하던 시절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1910년 한일합방을 거쳐 1919년 삼일운동 즈음에 조부모님께서 혼인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할머니의 성장기부터 할아버지와 만나 결혼하게 된 사연, 8남매인 아버지 형제들을 키운 이야기 등과 함께 살아온 지난 삶을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와 역사를 책 보다 더 생생히 배울 수 있었고, 그 시대상을 가늠할 수도 있었다. 그 당시 민초들의 삶을 실감나게 알게 된 역사 교육의 현장이었다.

특히 지금은 외국 유학의 비중으로 미국이 압도적이지만 그 시대엔 일본 유학이 주류라 신식 교육을 받은 할머니를 통해 집안 일가친척들이 다닌 유수의 일본 대학교 이름과 국내 일류 대학을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진료 목표도 세우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더 넓은 세상을 상상하며 원대한 포부를 품게 된 셈이다.
 
그땐 그랬었지

인간사에서 어느 한 시절도 굴곡지지 않은 때가 없었겠지만, 난 조선조 말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 6·25를 거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흥미로웠다. 역사의 격동기라고나 할까. 1901년생 소띠 할머니는 뉴 밀레니엄 2000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92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녀의 삶은 시대의 역사 그 자체였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8.15 해방이 되고 6·25가 종식된 후에도 지리산에 남아 채 피신 못한 빨치산(partisan)들이 허기진 밤이 되면 총을 든 채 민가로 내려와 근동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고, 여전히 전쟁의 잔재가 남아 어수선한 과도기, 어두운 우리 민족의 행로가 진행 중이었다.

우리 집도 지리산이 지근거리에서 보이는 곳에 위치해 빨치산을 피해 병중이던 할아버지와 주변 한적한 친척집으로 피난을 떠나기도 했다. 할머니에 의하면 가마니를 가득 쌓고 그 밑에 숨어들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와 딸

그 시대를 살지는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정신대 문제나 강제 징용, 민족 탄압및 수탈과 민족 상전의 비극 6·25 등 역사 공부를 통해 나는 반일과 반공 감정이 강했다. 무엇보다 독립운동 하다 투옥되어 마루타 같이 생체실험의 피해자가 된 기록이라든지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탄압 역사, 윤동주 시인이 투옥돼 감옥에서 사망한 일대기는 나의 반일 감정에 정점을 찍었다.

한편, 그 당시 공직자였던 할아버지와 독립운동해 투옥되기도 했던 한 고모와 고모부. 할아버지는 감옥으로 딸 면회를 다녔다니 조국의 격동기에 사상적으로 갈린 가족들이 많았다. 그 후 조부모님은 타지에서 할아버지 정년 퇴임 후 1940년대 초 고향으로 돌아와 정착했다.

고향에서 1945년 광복을 맞고 1950년 6·25를 거치며 2000년대 중반까지 60여 년 동안 우리 집이었던, 내가 태어나 친구들과 잠자리 잡기 놀이하며, 술래잡기하던 마당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그러나 6·25 때는 마당 넓은 우리 집에 국군이, 때로는 인민군이 주둔하기도 했다니 그 땅이야말로 한국 근대사의 불운을 함께 했다고 볼 수 있다. 지리산 근처에 살던 집안엔 한가족 안에서 이념이 갈리며 불행의 역사를 쓴 가정이 많다. 국군과 인민군으로 갈리며 서로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는 비극이 난무했다.

할머니는 함구하고 엄마는 병으로 사망한 걸로 얘기했지만 고모와 독립운동하며 감옥에 들락거렸던 고모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좌익의 사상적 갈등으로 스스로 세상과 등졌다고 한다. 암울한 역사와 함께 엇갈린 불행한 가족사다.

내가 남기는 옛날 옛적에

할머니의 옛날옛적에를 떠올리며 박경리의 '토지', '김약국의 딸들'처럼 소설로 엮을 재주는 없고, 내가 듣고 느끼며 기억하는 내용을 사실 기록의 형태로나마 정리해 보고자 했다. 자신을 비워내는 작업이자 또 다른 나의 표상인 글쓰기를 통해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같이 거대한 서사는 아니더라도, 집안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나의 삶도 풀어 주면 나름 의의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설사 자전 글을 남긴다고 누군가 읽을지는 장담 못한다. 유한한 인간들이 세상을 하직하고 나면 그 이후는 남겨진 자의 몫이다. 물론 우리가 떠나면 대부분 세상으로부터 잊힐 것이다. 다만 내가 나의 할머니를 기억하는 것처럼 손주들도 기억해주길 기대하는지 모른다. 그러니 그저 최선을 향해 종착지를 향해 열심히 달릴 뿐이다. 보다 향기롭게 오래 기억되길 소망하며….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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