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경제] 원경왕후의 비극과 화성산업 숙부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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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경제] 원경왕후의 비극과 화성산업 숙부의 난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2.03.27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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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의 피해는 누가 보상하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경영인의 골육상쟁은 자해로 끝나지 않는다. 주주의 피해는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인릉 사진 좌. 사진출처: 문화재청/ 화성산업 사진 우, 사진출처: 화성산업 홈페이지)
경영인의 골육상쟁은 자해로 끝나지 않는다. 주주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인릉 사진 좌. 사진출처: 문화재청/ 화성산업 사진 우, 사진출처: 화성산업 홈페이지)

골육상쟁은 자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는 혈육도 용서치 않았다. 수 양제는 용상을 위해 형도 죽였고, 아버지 문제도 살해했다는 의혹도 전해진다. 당 태종도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을 일으켜 형 이건성을 죽이고 황제에 올랐다. 

조선 태종은 골육상쟁의 대명사다, 1~2차 왕자의 난을 주도하며 이복동생을 죽이고, 형 이방간을 제치고 권력을 쟁취했다. 태종은 혈육의 피로 만족하지 못했다, 자신의 권좌에 도전하는 세력이라고 판단되면 즉시 칼을 들었다.

태종의 비정함은 원경왕후 민씨 집안을 멸문에 가깝게 탄압한 사례에서 알 수 있다. 원경왕후는 태종 못지않은 권력의 화신이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태종과 자웅을 겨룰 만한 지략과 용맹을 갖춘 여장부였다.

원경왕후는 시아버지 이성계와 남편 이방원이 군왕의 자질을 갖췄다는 것을 일찍 알아채고 친정 민씨 집안의 모든 역량을 모아 지원케 했다. 그는 시어머니 신덕왕후 강씨 못지않은 여걸로서 조선 개국에 일조했다. 특히 제1차 왕자의난 때 정도전의 계략에 맞서 승리를 거두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원경왕후는 스스로 조선의 대주주라고 판단했다. 연하의 남편 이방원도 한 수 아래로 여기고 가르침의 대상으로 삼았다. 태종은 원경왕후 혼자만의 착각이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태종은 부인과 권력을 나눠 가질 생각이 없었다. 처가의 발호를 짓밟아야만 했다.

태종은 처남 민무구와 민무질을 본보기로 삼아 죽였다. 이들은 왕자의난 때 태종을 앞장서서 도왔던 쿠데타 동지였다. 태종은 양녕대군을 뒷배로 삼아 권력을 탐하려는 처남들을 용서치 않았다. 6년 뒤 어린 처남들인 민무휼과 민무회도 죽였다.

원경왕후는 남편의 배신에 치를 떨었으나 힘이 없었다. 그나마 아버지 민제가 살아남은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세자 양녕이 외삼촌들의 비극을 겪고 나서 권력을 증오해 각종 악행을 저지르며 자멸했다. 양녕의 불행에는 원경왕후의 책임도 크다. 

태종과 원경왕후, 두 거인 사이에 권력욕이 없었다면 민씨 집안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고, 양녕의 추락도 없었을 것이다. 태종과 원경왕후는 부부가 아닌 원수가 됐다. 권력은 절대로 함께 나눌 수 없다는 쓰라린 교훈을 남긴 피의 역사다.

최근 주주총회가 한창이다. 올해도 역시 대주주간의 경영권 다툼도 단골 주제다, 혈육 간의 경영권 다툼도 변함없다. 특히 화성산업의 숙부와 조카간의 대결이 눈에 띈다. 사업가에게는 경영권이 권력이다. 경영인의 골육상쟁은 자해로 끝나지 않는다. 주주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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