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흐르는 도시 부산…쪽빛 바다가 부른다 [일상스케치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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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흐르는 도시 부산…쪽빛 바다가 부른다 [일상스케치㊳]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5.0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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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도시, 항만도시 부산의 이모저모
해운대 등 세계적 관광지로 자리 잡아
영도대교와 자갈치시장의 어제와 오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일상을 족쇄처럼 옥죄던 팬데믹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본격적인 여행 열풍이 번지고 있다. 마침 5월의 싱그러운 향기가 코끝을 스치니 봄의 여흥을 즐기려는 채비들로 바쁘다.

나 역시 쉼을 꾀하고자 모처럼 바다로 향했다. 기분 전환하기에 생동감 넘치는 푸른 바다, 철썩이며 부서지는 새하얀 파도만으로도 족하지 않겠나 싶었다.

새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해운대. ⓒ정명화 자유기고가
새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해운대. ⓒ정명화 자유기고가

항구도시 부산,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해 사시사철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바다다. 그러니 부산하면 우선 해운대나 광안리 등 해수욕장이 떠오른다. 해운대와 광안리는 부산의 동부에 있고, 그런 연유로 새해 해맞이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산의 랜드마크 해운대

지중해 빛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이 조화를 이룬 해변, 그 주변의 고층 빌딩과 고급 호텔들이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지중해 빛 바다와 고운 모래사장이 조화를 이룬 해변, 그 주변의 고층 빌딩과 고급 호텔들이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전국 제일의 해수욕장으로 각광받는 해운대엔 해마다 여름이면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세계적 명소로, 고층빌딩과 어우러진 해운대 경관과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풍광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축제나 공연 행사가 자주 열려 볼거리 또한 풍부하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포털사이트에서 해운대해수욕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부산 지하철 2호선 해운대역에 내려 도보로 10분 거리면 다다르니 도심에서 접근성도 좋다.

올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열리는 해운대 모래축제가 '모래로 만나는 세계여행'을 주제로 개최된다. 에펠탑, 피라미드 등 각 나라의 랜드마크를 모래로 표현한 작품 15점이 선보인다.

'굳세어라 금순아'의  영도다리

피난민의 안식처였던 영도대교는 지난 시절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피난민의 안식처였던 영도대교는 지난 시절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여행지에 도착하면 맨처음 어느 곳으로 향할까. 관광객들의 세대와 경험, 취향에 따라 우선순위는 달라질 것이다. 6.25를 경험한 세대들에겐 부산하면 영도대교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6.25 전쟁 이후 긴 시간 동안 피란 수도가 된 부산, 그 도심을 연결하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 가족들이 흩어지면서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라고 약속한 경우가 많아 여러모로 애환과 망향의 슬픔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일가 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봄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굳세어라 금순아).

전쟁통 고달픔을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는 1953년 휴전 무렵 전쟁과 분단으로 헤어진 사람들의 정서를 담은 곡이다. 노랫말에는 '흥남부두', '일사(1.4 후퇴)', '국제시장', '영도다리' 등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가 들어 있다. 심금을 울리는 실향민의 아픔과 기원을 토로한 절절한 묘사가 전쟁 직후의 시대상과 공명하면서 '국민가요'로 불릴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 후 7080 세대들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통해 부산의 이미지를 연상할지 모른다. 그 지역과 시대상을 반영하는데 유행가만큼 파급력이 높은 홍보수단은 드물 것이다. '여수 밤바다', '안동역에서' 등 역시 노래를 통해 여행지가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영도대교는 다리가 열리는 최초의 도개교로, 현재는 한달에 두번 상판이 들린다. ⓒ연합뉴스
영도대교는 다리가 열리는 최초의 도개교로, 현재는 한달에 두번 상판이 들린다. ⓒ연합뉴스

이러한 피난민 애환의 대명사인 영도대교는 다리가 열리는 최초의 도개교였는데, 지금은 한 달에 두 번 매월 2·4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15분 간 상판이 들린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건설되었으며 당시엔 많게는 하루에 일곱 번이나 들어 올릴 정도로 해상 교통량이 많았다.

오늘날도 부산의 가장 중요한 터인 부산항을 중심에 두고 바다와 육지의 끊임없는 소통 구실을 한다. 해운대 등 서구적이며 정돈된 해변 못지않게 짠 내음에 서민 정서 가득한 영도대교 언저리는 또 다른 부산의 얼굴이다.

자갈치 시장에서 바라본 부산항.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항만도시의 면모를 톡톡히 확인할 수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자갈치 시장에서 바라본 부산항.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항만도시의 면모를 톡톡히 확인할 수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자갈치 시장의 생명력

자갈치 시장은 부산시민의 해산물을 공급하는 생활 터전이다. ⓒ연합뉴스
자갈치 시장은 부산시민의 해산물을 공급하는 생활 터전이다. ⓒ연합뉴스
부산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온갖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난다. ⓒ연합뉴스
부산 앞바다에서 잡아 올린 온갖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난다. ⓒ연합뉴스

그렇게 지난 역사 속 부산도 세월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젠 바다를 보러 아니면 부산을 여행 목적지로 선택한 이유 1위는 맛집 탐방이다. 그 중심에 있는 자갈치 시장은 우리나라 최대의 수산물 시장으로, 활어와 전복 선어 잡어 건어물 등 모든 해산물을 취급한다.

팔딱거리는 활어의 생명력은 자갈치 아지매들로 상징되는 서민들의 생활상과 맞닿아 끈끈한 삶의 체험 현장이 된다. 삶의 회의를 느낄 때 자갈치 시장을 방문하면 새로운 활력을 찾아 돌아오게 된다. 재래시장 특유의 분위기는 물론이고 그 옆에 부두가 있어 부산항의 경치도 감상할 수 있다.

유명한 자갈치라는 지명은 자갈이 있는 해안에서 비롯됐다는 설과 자갈치란 어종의 명칭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회자된다.

용두산 공원과 국제 시장

용두산 공원의 부산 타워와 이순신 장군 동상 등이 어우러져 있다. ⓒ연합뉴스
용두산 공원의 부산 타워와 이순신 장군 동상 등이 어우러져 있다. ⓒ연합뉴스

한편, 어떤 이는 용두산 공원을 추억의 장소로 회상할 수 있다. 용두산은 '용의 머리 형상을 한 산'이란 뜻으로 높이가 낮아 산이라기보다 언덕에 가깝고, 명성에 비해 실제로는 매우 아담하다. 예전 층층 계단으로 올라가던 때와 달리 광복동 패션 거리에서 용두산 공원으로 바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오르기에 편해졌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녹음으로 둘러싸인 휴식처이며, 산 정상에는 부산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부산 타워가 위치해 있다.

원래 용두산이라는 이름은 일본인들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용을 닮았다 하여 불렀던 이름으로 추정한다. 처음 일본인 신사가 있어 일본인들의 성역으로 조성되었지만 해방 후 신사는 헐리고 용두산은 피란민들의 판자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4년 용두산 대화재로 인해 모든 것은 잿더미가 되었고 그 후 용두산은 공원으로 새롭게 조성된 것이다.

이전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은 용두산공원 40계단에 앉아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고달픔과 향수를 달랬다. 일제강점기 및 한국전쟁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대신에 지금은 대한민국이 경제 기적을 이루며 항구와 함께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공원을 중심으로 마주 하는 부산항, 영도대교, 보수동 책방골목,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 자갈치시장, 광복로 패션거리가 바로 인접하여 붙어 있다. 이곳에 가면 유명 해수욕장을 제외한 부산의 절반을 만날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용두산 공원 아래 영화 ‘국제시장’으로 더욱 유명해진 국제 시장은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남긴 물건과 해외동포들이 가져온 물건을 거래하기 위해 현재의 자리를 장터로 삼으며 시작되었다. 처음 도떼기시장이라 불리다가 자유시장으로, 1950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까지 취급하면서 국제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부산은 너른 세상의 관문

부산대교. ⓒ정명화 자유기고가
부산대교. ⓒ정명화 자유기고가

여행의 묘미는 처음 가보는 곳도 좋지만 예전 추억을 친구삼아 재회하면 더욱 맛깔스럽다. 이러한 6·25의 흔적이 절절한 부산은 나에게도 특별한 도시다. 친척들이 많이 살아 초등학교 방학이면 자주 찾던 곳이라 더욱 친숙하다.

지방 읍내 출신인 나에게 부산은 어린 시절 너른 세상으로 가는 관문으로, 그 당시 언제든 가고 싶었던 곳이며 설렘의 장소였다고 할까. 한적하고 조용한 고향 시골 마을이 좁고 나에겐 부족함 투성이었다. 자연 도시의 활발하고 생기 넘치는 모습은 동경의 대상으로, 부산에 가면 대도시가 안고 있는 다양한 혜택을 맛볼 수 있었다.

첫날 도착해 잠자리에 들면 멀리서 들리던 기차 기적소리는 낯선 타지에 왔다는 소외감을 안겼다. 그러나 이질감도 잠시 반드시 유명 해수욕장이나 번화가로 나가지 않더라도 부산이라는 지역 자체가 나에겐 관광지였다. 도시의 문화와 만나는 접점인 셈이다.

무엇보다 그 당시 아직 보급이 안된 고향 마을과 달리, 1960년대 도시 문화의 정점인 TV의 존재와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어린이 프로 상영 시간대인 오후 5~6시면 여축없이 사촌 오빠랑 TV 앞에 자석처럼 달라붙어 앉았다. 1960년대 후반 방영된 황금박쥐, 요괴인간 벰, 베라, 베로, 타이거 마스크 같은 만화영화 감상은 나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자 즐거운 놀잇감이었다.

방학이 끝나 만화 시리즈 물 다음 편을 못 보고 돌아오는 게 제일 아쉬웠다. 시골집에서 수시로 만화 가게를 찾아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철 지난 만화책 다음 편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나에겐 신세계였던 것이다.

또한 시골 우리 집에서는 크고 깊은 우물이 냉장고를 대신하던 시절, 부산에 가면 보물창고 같은 냉장고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석빙고 아이스케키, 부영극장에서 년소자 관람가 영화 한 편 사촌 오빠랑 보고 오는 게 부산 방문의 하이라이트였다.

광안리 해수욕장과 광안대교. 해변과 한껏 들떠 보이는 여심의 조화가 눈에 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광안리 해수욕장과 광안대교. 해변과 한껏 들떠 보이는 여심의 조화가 눈에 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물 멍하기 좋은 광안리 해수욕장

추억을 가슴에 묻고 요즘 가끔씩 찾는 곳은 시내에서 접근이 용이한 광안리. 광안리 해수욕장에 들어서면 싱싱한 갯내음과 함께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광안대교다. '다이아몬드 브리지'라고 불리는 광안대교는 특히 밤이 되면 주변 건물에서 쏟아지는 불빛과 함께 어우러져 멋진 야경을 만들어 여행객의 시선을 잡기에 충분하다.

해수욕장을 따라 주위에 멋진 카페도 많아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멍 때린 채 광안리를 눈에 담아도 좋다. 바나나보트, 윈드서핑 등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무리, 해변로 곳곳에서 악기를 들고 나와 공연하는 젊은이들도 볼 수 있다.

여행은 볼거리와 먹거리 외에 지나간 서사와 함께 한다. 언제 누구랑 어떤 에피소드를 만들었던 곳인지 회상하며 덧칠을 해보면 더욱 진하고 감동적인 그림이 그려진다. 드넓은 바다가 출렁이고, 뱃고동 소리와 함께 생활 전사인 자갈치 아지매들의 호객소리는 항구 도시의 낭만을 배가 시켰고 부산 여정은 서서히 저물어 갔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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