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다…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일상스케치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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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다…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일상스케치㊶]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06.2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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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 줄기 쉼터, 휴식과 여유 제공
과거와 현재가 존재하는 역사의 현장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도시의 차량 물결은 마치 점령군 같다. 이율배반적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한때 도심 차도가 한산했다. 이제 엔데믹 사회가 되어 거리두기가 풀리자 도로는 봇물 터지듯 인파와 차들로 빼곡하다. 도시의 특성상 당연하나, 숨 막힐 정도로 붐비는 현상이 탈도시를 꿈꾸게 만든다. 대도시의 단점이 아닐까. 걷고 싶다…서울의 차 없는 거리를.

번잡함을 쉬어가는 거리에서

덕수궁 돌담길 입구, 수문장과 취악대 행렬이 도열하여 덕수궁으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이색적인 광경에 주변 시선이 집중됐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덕수궁 돌담길 입구, 수문장과 취악대 행렬이 도열하여 덕수궁으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이색적인 광경에 주변 시선이 집중됐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주중 점심 시간대 차없는 거리의 덕수궁 돌담길. ⓒ정명화 자유기고가
주중 점심 시간대 차없는 거리의 덕수궁 돌담길.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동길과 함께 서울 도심의 대표적 산책길로 꼽히는 덕수궁 돌담길(德壽宮돌담길). 기존에 있던 도로를 보행자 중심의 도로로 재정비하고, 보행자를 위해 보도와 차도 공존 도로 및 가로공간인 녹도의 개념을 복합적으로 도입한 대한민국 최초의 사례다. 총길이는 900m이며 한국관광공사 야간관광 10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번잡한 빌딩 숲에서 운치 있고 때론 호젓해, 걷고 싶은 힐링코스로 인기가 높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고궁 담벼락을 끼고 걷는 길은 갖가지 수상이 떠오르게 한다. 구한말 대한제국의 슬픈 시대상과 덕수궁의 빛과 그림자까지 연상되면서 말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

그러나 어떤 연인들은 이 길을 걷는 것을 주저했던 적이 있거나 주저할 수 있다. 바로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덕수궁 돌담길 끝자락 정동길과 맞닿아 있는 지점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 ⓒ정명화 자유기고가
덕수궁 돌담길 끝자락 정동길과 맞닿아 있는 지점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 ⓒ정명화 자유기고가

‘연인이 덕수궁 둘레길을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과 연관된 서울시립미술관이다. 원래 이곳은 대법원과 가정법원이 있던 대한민국 법조타운이었다. 아마도 이혼소송을 하러 온 부부들이 이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지 않았을까. 법조타운이 서초동으로 이전한 요즘에는 덕수궁과 관련된 속설도 점차 잊혀가고 있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명화 자유기고가

서울 시내엔 몇 곳 일정 시간동안 차 없는 거리를 운행한다. 대표적으로 덕수궁길은 주말뿐 아니라 평일 점심 시간대 잠시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하고 있다. 차 없는 세상에서 살 수는 없지만 좀 더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직한 제도다.

정동의 과거와 현재

국립정동극장. ⓒ정명화 자유기고가
국립정동극장. ⓒ정명화 자유기고가

덕수궁 돌담길과 맞닿아 있는 중구 정동길은 정동교회 앞 사거리에서 이화여고 동문 앞을 지나 새문안길에 이르는 구간을 일컫는다. 1999년 서울시에서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했고, 2006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정동(貞洞)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조선 태조 이성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 씨의 정릉이 현재의 정동 4번지에 자리해 있었기에 예부터 정릉동이라 불렸다. 1936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정동정(貞洞町)이 됐고 1946년 정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시간이 멈춘 듯 그시절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한 정동길은 숨 가쁜 도시인들에게 산소 같은 산책 길을 열어준다. 주변 고층 건물과 대조적으로 돌담과 낮은 건물이 만들어내는 거리 풍경은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안식처가 된다.

근대유산 1번지 정동

1883년 미국공사관을 시작으로 외국공관들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정동은 외교의 중심지가 됐다. 그러니 정동 일대는 구한말 조선 땅에서 가장 서구화된 땅이었다. 그 중심에 대한제국의 탄생이 이루어진 덕수궁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신식학교, 개신교회 등의 서양 문물이 상륙하기도 한 정동에는 근대사의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 운치를 더한다. 대표적으로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인 정동교회 등이 있다.

정동제일교회.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동제일교회. ⓒ정명화 자유기고가
100주년 기념탑이 보이듯이 그 역사와 연륜이 깊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100주년 기념탑이 보이듯이 그 역사와 연륜이 깊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정동길의 시작엔 예쁜 교회당 정동제일교회가 서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힌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문세의 노래 <광화문 연가>에서 나오는 작은 교회당의 주인공이다.

이화여고 입구에서 개최된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로 잠시 쉬어간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이화여고 입구에서 개최된 평화를 위한 작은 음악회로 잠시 쉬어간다. ⓒ정명화 자유기고가

1896년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 건물로  1977년 사적 256호로 등록된 역사적·상징적 건물이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 곳곳에 아치형 창문이 나 있는 고딕 양식이 이국적인 풍미를 풍긴다.

정동제일교회를 지나면 이화여고를 만난다. 점심시간 개최된 작은 음악회에 지나가던 직장인들이 휴식을 취한다. 정동길이 빚어내는 깜짝 이벤트에 정감 있고 멋스러운 풍경이 연출됐다. 분주하고 각박한 일상에 여름날 소나기같이 시원한 여유를 안긴다.

1886년 미국 여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정동에 한국 최초 신여성의 요람 이화학당을 설립했다. 양반이 아닌 민중에겐 배움의 기회가 제한돼 있던 당시, 여자들이 학문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때였다. 이 학당의 첫 학생들은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거나 부모에게 버려진 여자 아이들이었으나, 학생의 수가 꾸준히 늘어 1887년엔 46명에 이르자 고종은 이곳에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손탁호텔(Sontag Hotel)

한편, 구한말 정동의 핫플레이스였던 손탁호텔. 현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앞에 표지석만 남아있는 손탁호텔은 과거 우리외교사에 아주 귀중한 장소로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다. 설립자 손탁(1854-1925)은 독일인이면서 초대 조선 러시아 공사의 처형으로 조선에 와 러시아 공사의 소개로 고종과 명성황후를 알현하였다. 그러자 고종과 명성황후의 호감을 사 자연스럽게 조선왕실의 외교에 기여하게 되었다.

이에 1895년 고종은 정동에 있는 왕실 주택과 토지를 하사했다. 이것은 왕실의 호의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과 친일파들의 간섭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였다. 현재 이화 100주년 기념관이 있는 터에 땅을 하사 받아 1902년 손탁 호텔을 세웠다. 손탁은 하사받은 한옥을 서양식으로 개조하여 서양 외교관들의 사교장으로 만들었다. 배일 운동의 근거지로 활용됐고 곧 손탁호텔의 탄생 배경이다.

또한 이 손탁호텔은 한때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나역시 푹 빠져 시청하며 반일감정을 고취시킨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핵심적 시대적 배경이자 실질적인 무대였던 호텔의 모델이다. 고종의 덕수궁을 기점으로 하여 가상의 인물이지만 역사에 있을 법한 주인공들의 서사였다.

그리고 정동은 한국 최초의 커피숍이 들어선 곳이다. 그 기원때문인지 정동길엔 많은 커피샵이 줄지어 성황중이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시기는 1880년 전후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손탁호텔에서 국내 최초로 커피를 팔아 서울에 거주하는 서양인들과 조선의 상류층 등이 주 고객이었다고 한다.

캐나다 대사관 앞 정동 회화나무. ⓒ정명화 자유기고가
캐나다 대사관 앞 정동 회화나무. ⓒ정명화 자유기고가

끝으로, 캐나다 대사관 앞 고령의 회화나무 한그루가 시선을 끈다. 현재 수령 600년 가까이 되며 1976년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됐다. 2003년 캐나다 대사관 신축 당시 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뿌리의 위치를 감안해 건축 디자인을 바꾸고 지지대를 세우는 등, 캐나다 대사관의 노력으로 다시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듬직한 풍채로 지난 시간과 함께 현재를 아우르며 서 있는 자태가 진정 정동길의 수호신 같다.

여름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여유를. ⓒ정명화 자유기고가
여름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여유를. ⓒ정명화 자유기고가

고층 빌딩을 제치고 들어서면 만나는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역사의 숨결이 물씬 풍긴다. 이처럼 정동은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품고 있다. 이러한 과거의 흔적과 어우러지며 현재에 이르러서는 낭만과 서정적 분위기로 오늘에 기여한다. 도심에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땐 종종 찾고 싶은 선물같은 곳으로, 커피 한 잔과 함께 유유자적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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