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미래? 역사 보면 안다 [취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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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의 미래? 역사 보면 안다 [취재일기]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2.07.08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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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앞두고 지역·이념적 확장…선거 끝나면 TK·강성보수·60대 이상 정당으로 회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시사오늘 김유종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시사오늘 김유종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7일 오후 7시부터 8일 새벽 2시45분께까지 약 8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연 뒤 이 같은 징계 결정을 내렸습니다.

현직 대표에 대한 사상 초유의 중징계에,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준석의 실각(失脚)이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번 징계가 아니더라도, 이준석이 계속 당대표직을 이어가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관측입니다.

근거는 ‘역사’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힘의 주류는 TK(대구·경북), 강성보수, 60대 이상입니다. 하지만 이들만으론 정권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늘 선거를 앞두고 지역적·이념적·세대적 확장을 꾀했습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국민의힘은 어김없이 TK·강성보수·60대 이상의 당으로 돌아갔습니다. 요컨대, 정권 교체를 위해 선출된 수도권·중도보수·30대 당대표가 선거 뒤에도 자리를 지키긴 어려웠을 거란 분석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1992년. 민주자유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습니다. 민자당은 ‘3당 합당’으로 탄생한 정당입니다. 군부독재세력의 후예인 민주정의당과 신민주공화당, 민주화세력인 통일민주당이 결합했습니다. 김영삼 지분도 있긴 했지만 근본적으론 민정계가 주류였습니다.

민정계는 TK·강성보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정권을 재창출하려면 지지층 확장이 필요했습니다. 김영삼은 지역적으론 PK(부산·경남), 이념적으론 중도보수의 표상이었습니다. 여기에 김영삼 특유의 정치력이 더해지면서, 민자당은 중도보수가 주류인 신한국당으로 개편됩니다.

하지만 조금씩 기류가 변했습니다. 문민정부 중반, 김영삼에게 축출 당했던 민정계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민정계의 타깃은 이회창 전 국무총리였습니다. 이회창은 유력 차기 대권주자였습니다. 그러나 세력이 없었습니다. 이회창과 민정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습니다.

이회창의 부상(浮上)은 민정계의 부활과 같은 의미였습니다. 국민이 선택한 건 민주화 투사이자 중도보수였던 김영삼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신한국당은 TK 중심의 강성보수 성향이 강한 ‘도로 민정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보수의 주류가 다시 바뀌었습니다. 두 번이나 정권을 빼앗긴 뒤였습니다. 정권 교체가 절실했던 한나라당은 ‘샐러리맨의 신화’이자 ‘성공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을 대선 후보로 선출합니다.

이명박은 탈(脫)이념적 실용주의자였습니다. 그게 국민이 이명박을 선택한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명박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보수 색채가 짙은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이명박도 대통령이 된 후 친박(親朴)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키며 ‘새 판 짜기’에 돌입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은 결국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에게로 몰렸습니다. 그렇게 한나라당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TK 중심의 강성보수 정당이 됩니다.

박근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대선 후보로 선출된 그는 중도화에 힘을 쏟았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앞세웠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나 손수조 전 새누리당 부산 사상 당협위원장 같은 청년 정치인을 영입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는 스스로가 변했습니다. 아니, 변했다기보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집권 후 경제민주화 구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주요 직책은 ‘올드보이’들에게 맡겼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퇴행적 정책도 강행했습니다. 물론 그 결과는 TK·강성보수만이 남은 지역정당화였습니다.

TK·강성보수만으로는 정권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선거를 앞두고 확장성 있는 인물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 확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대선에서 승리하고 나면 국민의힘 주류 세력은 다시 기지개를 켭니다. 선거를 위해 잠시 맡겨뒀던 당권을 되찾으려는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 주류 세력의 당권 탈환 시도는 성공했습니다.

2021년. 국민의힘은 대선을 앞두고 이준석을 당대표로 선택합니다. 탄핵 이후 더 명징해졌던 TK·강성보수·노년층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준석은 ‘수도권 보수’며, 중도보수 성향이 강하고, 2030 남성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입니다. 어떤 측면에선 국민의힘 주류와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이준석 체제를 용인했고, 역대 최고 수준의 2030 지지율을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 제20대 대선과 제8회 지방선거에서도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보면, 대선과 지선을 승리로 이끈 당대표가 왜 공세에 시달렸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앞으로 2년 동안 선거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성향도 맞지 않고 새파랗게 젊은 당대표를 자리에 둘 이유가 없으니까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그나마 2030 이준석이 있어서 민주당이 늙어 보였는데 그 효과가 사라지기에 ‘과연 감당이 되겠느냐’는 생각을 그들도 하지 않을까”라며 이준석 징계가 쉽지 않을 거라고 내다봤습니다. 하태경 의원도 국민의힘이 2030세대와 6070세대가 결합한 세대연합정당이라는 이유로 진 전 교수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국민의힘은 선거를 앞두고 ‘임시 결합’한 세력을 밀어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준석이 실제로 성 접대를 받았는지, 그에 대한 증거 인멸을 시도했는지를 확인할 방도는 없습니다. 다만 큰 흐름에서 볼 때, 이준석이 당대표 자리를 지키며 자신이 공언한 ‘공천 시스템 개혁’을 이뤄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준석 앞을 지키는 벽은 생각보다 높고 공고하기 때문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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