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독약 이조전랑과 공천개혁 [역사로 보는 정치] 
스크롤 이동 상태바
조선의 독약 이조전랑과 공천개혁 [역사로 보는 정치]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2.07.10 17: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천 개혁이 없으면 정치개혁은 공염불에 불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조선 권력의 최정점 근정전 사진출처=문화재청
조선 권력의 최정점 근정전 사진출처=문화재청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무소불위의 공천권에 있다. 시대정신도 필요 없다. 미래 인재도 필요없다. 공천권자 눈 밖에 나면 사망선고다. 공천권자의 탐욕에 따라 평생 정치를 접을 수도 있다. 선거시즌만 되면 공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곳이 정치판이다.

조선의 신적폐 사림도 공천에 무너졌다. 도학정치를 시대정신으로 삼아 훈구세력을 매장시킨 사림도 인사권을 놓고 분열했다. 이조전랑 쟁탈전이 생사의 갈림길이 됐다.

이조전랑은 인사를 담당하고 있던 이조(吏曹)의 정5~6품 실무자다. 전랑(銓郞)은 이조 관원들 중 정5품 정랑 3인과 정6품 좌랑 3인을 통칭한 직책이다. ‘전(銓)’은 저울을 뜻하는 말이다. 즉 정랑과 좌랑이 인선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맞은 사람을 저울질해 추천한다’라는 취지다. 

전랑의 지위는 정5~6품에 불과했지만 권력은 막강했다. 왕권견제기관이자 청요직인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새로 배속될 사람을 왕에게 천거할 권한이 있었다. 왕들은 이들의 추천을 적극 수용했다. 물론 기타 부서의 당하관 인사에 대한 추천권도 가졌다. 

하지만 전랑의 실제 권력은 자대권(自代權)에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임기를 마치면 후임자를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이다. 5공의 하나회도 이조전랑의 자대권을 계승해 군대 요직을 대물림했다. 자대권=권력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사실 관행에 불과했지만 계파간 적대적 공존관계에 따라 실정법이 됐다.

이조 전랑을 장악하면 청요직을 독점할 수 있다. 계파 독재가 실현됐다, 동인과 서인이 죽기살기로 이조전랑 쟁탈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조전랑은 인사권을 악용해 조정내 권력서열을 결정했고, 여론도 주도했다. 여론 주도는 곧 조작정치를 뜻한다.

조선 망국의 시초인 붕당도 이조전랑 쟁탈전에서 비롯됐다. 사림의 양대 기두인 심의겸과 김효원이 이조전랑을 놓고 사생결단식 대결에 나선 것이다. 인사권을 뺏기면 귀양 아니면 사약이 배달됐다. 조선의 대표 적폐 군주 선조는 이를 제압할 능력이 없었다. 이조전랑의 적폐가 극에 달할수록 민생은 파탄났고, 결국 조일전쟁과 병자호란을 자초했다.

2백 년의 세월이 지난 숙종이 이조전랑의 자대권을 폐지했다. 영조는 전랑의 수를 6명에서 4명으로 축소했고, 마침내 정조가 이조전랑의 권한을 폐지했다. 하지만 인사권은 국왕에게 돌아오지 않고 대신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결국 노론의 독재가 만개한 셈이다.

조선 정치의 실패는 인사권 적폐가 만든 것이다. 이조전랑이 당초 의도대로 균형있는 인사를 천거했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진리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이준석 당대표를 6개월 당원권 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사진출처:국민의힘 홈페이지
국민의힘이 이준석 당대표를 6개월 당원권 정지의 중징계를 내렸다. 사진출처:국민의힘 홈페이지

여야 모두 당대표직을 놓고 전쟁 중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8일 새벽 이준석 대표를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이 대표가 불복하고 강력 반발에 나서면서 여당은 내전에 휩싸이게 됐다.

민주당도 이재명 의원의 당대표 출마를 놓고 지독한 내홍에 휩싸였다. 전대룰 유불리를 놓고 친명과 반명계의 내전이 본격화됐다. 여야 거대 양당이 내전에 빠진 이유는 뭘까? 다름아닌 2024년 총선 공천권을 누가 독점하느냐에 대한 전쟁이다.

당대표는 공천권을 가진 저승사자다. 윤핵관과 이준석 대표, 양자 모두 공천권 공유 의사가 없어 보인다, 공천권은 절대 나눠 가질 수 없는 독점 권력이다. 박근혜 정부의 탄핵도 진박과 비박의 공천권 전쟁에서 비롯됐다. 김무성 전 대표의 ‘옥쇄 들고 나르샤“도 공천권이 낳은 희대의 블랙코미디다.

사실 보수 정치권의 2016년 총선과 2018년 지방선거 참패는 나쁜 공천이 빚은 자멸드라마였다. 정권 견제라는 국민의 열망을 무시하고 자파 이기주의 덫에 빠져 용납불가한 공천 반란으로 자멸했다. 이길 수 있는 곳도 계파 이해관계에 따른 사천으로 승리를 헌납했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허공의 메아리가 됐다.

이번 지방선거도 국민의힘 완승으로 끝났지만 실제로는 정권교체의 바람에 따른 반사이익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공정한 기준보다는 공천권자의 이해관계가 작용했다는 각종 의혹이 전국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과 윤석열 정부 출범에 따른 기대의 결과였다는 게 중론이다. 

당대표 경선을 위한 전대룰을 놓고 내홍에 빠진 더불어민주당 사진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당대표 경선을 위한 전대룰을 놓고 내홍에 빠진 더불어민주당 사진출처: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민주당도 내전 중이다. 대선 패배의 책임자인 이재명계가 새로운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총선 공천권을 독점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후보 경선과정에서 분당에 가까운 내홍을 겪은 바 있고, 비명계 일부 인사들은 정권 재창출 시 공천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 바 있다. 

공천권이 낳은 여야 거대 양당의 내전,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물가로 냉면이 2만 원대 육박하고, 주식과 가상화폐가 폭락해 시장에선 곡소리가 나도 상관없다. 내가 죽는데 민생이 무너지는 게 뭔 대수겠나? 정치개혁은 공천권 혁신에서 시작돼야 한다. 공천권 독식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 이조전랑이 조선을 망쳤듯이, 공천 개혁이 없으면 한국 정치개혁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경학 2022-07-11 10:20:07
국민 공모제라도 해야지.........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한심한 인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