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전쟁과 K-경제 부활 [역사로 보는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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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전쟁과 K-경제 부활 [역사로 보는 경제]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2.07.17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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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사람, 많아지면 그게 곧 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조일전쟁은 조선 자본주의 발달의 기폭제가 됐다. 김홍도의 풍속화 사진출처: 문화재청
조일전쟁은 조선 자본주의 발달의 기폭제가 됐다. 김홍도의 풍속화 사진출처: 문화재청

전쟁은 위기다. 위험과 기회가 동시에 발생한다. 동아시아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든 조일전쟁이 대표적이다. 조선은 전후 복구에 실패하면서 정묘·병자호란을 자초했다. 일본은 에도 막부가 수립됐고, 명은 결국 청에게 중원을 빼앗겨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조선은 최대 피해자다. 최종 승리자이지만 역대급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의 몫이 됐다. 일본은 막대한 문화재, 유학자와 도공 및 일반 백성 등 무차별적 약탈을 자행했다. 수십만 명의 전쟁 포로들은 일본의 인신매매로 심지어 유럽까지 팔려가는 수모를 당했다. 

농업국 조선의 최대 경제기반인 토지 황폐화는 민생 파탄의 주범이 됐다. 전쟁 전까지만 해도 150만결에 달했던 경작지가 전후 30만결로 대폭 축소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1의 곡창지대인 호남이 큰 피해를 안 입었다.

토지 황폐화는 농경국가에게는 치명적이다. 아니 국가 부도다. 하늘은 무심하게도 자연재해를 덤으로 줬다. 잇따른 가뭄과 대기근 등의 천재가 조선을 집어 삽켰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인재도 더했다. 기득권층의 무능으로 호란이 터져 수십만명의 인질이 청에 끌려갔다. 

반대로 기회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토지 황폐화는 농업 경작법과 경영 방식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앙법이 확대됐고, 도조법의 확산, 상품 작물 재배 등이 조선 농업의 선진화를 주도한 주인공이다.

상품화폐경제는 상공업과 광업의 민영화가 낳은 선물이다. 민영 수공업 확대, 활발한 광산 개발, 장시의 발달 등이 조선 경제의 활력소가 됐다. 무엇보다도 화폐가 시장을 지배했다. 곡물 대신 기축통화가 된 화폐는 자본주의의 씨앗이 됐다.

신분제 동요로 사회변혁의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전란 중 자기 안위에 급급했던 왕실과 양반의 권위가 땅으로 떨어졌다. 사회의식이 움트기 시작해 반상제가 서서히 무너졌고, 중인과 부농층, 상인들의 성장세가 뚜렷해졌다. 지식과 경제력을 갖춘 이들은 양반으로 편입했다. 몰락한 양반들은 생업에 종사하게 됐다. 신분제의 족쇄가 풀리기 시작했다. 사회 계층 분화의 문이 열렸다. 

조일전쟁은 비극이지만 조선 경제구조 변화에 기여한 면은 팩트다. 국가 부도의 위험을 새로운 발전 기회로 승화시킨 점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 사진출처: 20대 대통령실
한미 정상회담 사진출처: 제20대 대통령실

한국은행이 고물가를 잡기 위해 빅스텝을 단행했다. 기준금리 인상은 자칫 경기침체를 초래할 악재가 될 수 있지만, 6.0%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만든 고육지책이다. 인플레이션은 글로벌 현상이다. 미국은 연속 자이언트 스텝이 예상될 정도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봉쇄 등으로 국제 공급망이 무너졌다. 곡물과 원자재의 공급이 거의 차단돼 물가 상승이 멈출 줄 모른다.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치명상을 입은 경제가 더 큰위기를 맞이했다.  

루쉰은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된다”고 강조했다.

희망의 길은 만들면 된다. 조일전쟁이 조선 자본주의 발달의 씨앗이 됐듯이 이번 글로벌 경제 위기가 글로벌 K-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불과 60년 전 우리는 글로벌 최빈국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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