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 행정처분 앞두고 둘로 갈라진 노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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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현대산업개발 행정처분 앞두고 둘로 갈라진 노동계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08.2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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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계열 "강력 행정조치 촉구"…한국노총 계열 "등록말소는 안 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서울시의 행정처분 발표가 오는 9월로 예고된 가운데 제재 수위를 놓고 노동계가 양분됐다. 민주노총은 엄벌을, 한국노총은 선처를 각각 요구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 배경은 양대노총 모두 '단결력 제고'로 보인다.

22일 민주노총 계열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건설기업노조)은 보도자료를 내고 오는 23일 서울시청 앞에서 '시민과 건설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간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서울시의 강력한 행정조치 촉구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건설기업노조는 "2022년 1월 광주 화정동 주상복합아파트 외벽 붕괴사고 책임을 물어 서울시가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행정 조치를 예정하고 있다. 해당 사고로 6명이 죽고, 1명이 크게 다쳤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021년에도 광주 학동 재개발 붕괴사고로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쳤지만, 과징금 4억 원이라는 제재가 전부였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간 건설사는 과도한 이익을 앞세워 부실과 부정, 불법을 자행했고, 그 결과는 안전불감증과 인재로 인한 인명사고였다. 그러나 책임을 져야 할 건설사는 늘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처벌보다 불법으로 인한 이익이 커 부실, 불법에 따른 안전사고가 근절되지 않았다"며 "이에 노조는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공동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의 책임을 묻고, 서울시의 강력한 행정처분을 촉구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기자회견에 함께하는 경실련은 지난 3월 국토교통부가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 등을 서울시에 요청하면서 '부실시공 근절방안'을 발표하자 "근본적인 개선책이 아닌 국토부 자신과 인허가관청에 대한 면피용 방안에 불과하다. 치명적 대형사고에도 건설업계 이해를 반영하는 것 같다"고 비판적 시각을 보인 바 있다. 또한 광주 사고 당시 인천 지역 경실련은 성명서를 통해 "정부는 HDC현대산업개발에 국민적 철퇴를 내려야 한다. 가장 강력한 건설업 등록말소 처분을 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한국노총 계열 한국건설기업사무노동조합연맹(건설사무연맹)은 지난 15일 성명서를 내고 "두 번이나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옹호하려는 생각은 없으나 등록말소라는 처분이 내려졌을 경우 해당 기업 소속 노동자와 가족들, 협력업체, 부동산 관련 금융권까지 광범위하고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HDC현대산업개발 노동자는 1만여 명, 협력업체 노동자는 1만5000여 명에 이른다. 등록말소될 시 이들이 하루아침에 생존권을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등록말소 처분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너무 큰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뒤늦게 책임을 통감한다는 게 부끄럽지만 건설업 생태계 전반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모는 HDC현대산업개발 행정처분 결론은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설기업노조와 건설사무연맹이 이처럼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건 예견된 일이라는 평가다. 

'건설기업노조'는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건설사무직 노조로 분류되나 현장직 위주로 구성된 상급단체의 행보에 통상적으로 보폭을 맞추고 있다. 앞서 지난 5월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소속 건설현장직 노조인 '건설노조'는 '현대산업개발이 망해야 건설산업이 산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HDC현대산업개발과 정몽규 회장은 책임지지 않으려고 말도 안 되는 말을 남발하며 건설 노동자들을 욕보이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책임과 처벌은 생명 경시와 빨리빨리 속도전에 따른 부실시공에 경종을 울릴 것이다. 현대산업개발을 퇴출하라"고 내세운 바 있다.

친기업 의지를 천명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데 따라 투쟁 단결력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보인다. 장옥기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지난 18일 건설의 날 행사가 열린 건설회관 앞에서 '건설노동자 제도개선 반대하는 건설업계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건설의 날은 80년대 제정됐으나 땀 흘려 일하는 건설노동자는 없는 건설 자본과 정부의 잔칫날이다. 하루에 2명 이상 죽어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을 정부와 자본에 맡길 게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조합원의 힘으로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순관 건설기업노조 위원장은 결의대회 직후 참석한 대우건설 노조 창립 기념식에서 "현 정부 아래에선 교섭 성과를 내기 위해 집회를 할 수밖에 없다. 물가 폭등에 따른 공사비 증액, 금리 인상 등으로 기업이 어려움에 처하면 노조원들에게 책임이 전가된다. 임금 동결 등 손쉬운 방법으로 경영진들이 작금의 상황을 벗어나려 해선 안 된다. 임금인상은 장기 경기 침체를 막을 수단이며 기업과 사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반대로 건설사무연맹은 애초에 HDC현대산업개발 사무직 노동자들이 소속된 노조로, 광주 사고 이후 HDC현대산업개발 관계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도움 요청을 받았지만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 타이밍을 엿보다가 이번에 공식 성명서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당초 양대노총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HDC현대산업개발 지배구조 바로 세우기 주주활동'을 함께하며 광주 참사의 우선 책임이 HDC현대산업개발 경영진에 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한국노총은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하며 기업 자체의 퇴출로 노동자들에게 직간접적 피해를 줄 게 아니라 경영진을 퇴출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한국노총 역시 건설산업 조합원 결속, 단결력 제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합비 횡령, 비정상적 회계 운영, 부정선거 등 논란과 의혹이 불거진 전국건설산업노조를 지난 7월 제명하면서 세가 축소된 가운데 한국노총 산하 건설부문 최대 노조인 한국연합건설산업노조에서도 최근 비슷한 비리 의혹이 발생해 조합원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건설사무연맹이 HDC현대산업개발의 등록말소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성명을 낸 배경으로 해석된다. 

한편, 국토부는 지난 3월 광주 참사와 관련해 HDC현대산업개발에 건설업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 수준의 행정처분을 내려줄 것을 서울시에 요청했으며, 이에 서울시는 당시 6개월 내 행정처분을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다음달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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