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이 도입한 공천 자격시험, 문제없나 [주간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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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이 도입한 공천 자격시험, 문제없나 [주간필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2.09.18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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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에 정치 참여 장벽 될 수 있어…민주주의에서 후보 적합성 판단은 국민 몫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도입한 기초자격평가가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오늘 김유종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도입한 기초자격평가가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사오늘 김유종

6·1 지방선거 직후였다. 모 지역 시의원을 만났다. 이제 막 당선된 그는 감격에 겨운 듯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자신의 ‘권력’에 대한 자랑을 늘어놨다. 그와 헤어진 뒤, 같은 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입을 뗐다.

“저런 사람도 시의원이라고….”

기초의회 의원들의 ‘자격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포털사이트에서 기초의원들을 검색하면 두 가지 결과가 뜬다. 하나는 홍보자료. 다른 하나는 폭행·성비위·음주 등 ‘추태’에 관한 뉴스다.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기초의원들의 사건·사고가 매일 같이 언론을 장식한다.

아마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기초자격평가(PPAT·People Power Aptitude Test)를 도입한 취지도 이것이었을 듯 하다. ‘의정활동을 하는 데 충분한 역량을 갖춘 사람들을 공천하겠다’는 의도다. 심정적으론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감정적 비판과 제도화는 전혀 다른 문제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체제다. 그리고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 사이에는 우열이 없다. 노인이건 청년이건, 부자건 빈자건 누구나 주권을 갖는다.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투표다. 그러나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도 있다. 성별, 나이, 재산, 학력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투표권을 행사하듯, 국정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에겐 조건 없이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기초자격평가의 맹점이 여기 있다. 국민의힘은 시험 결과 일정 비율 내에 들어야만 공천 신청 자격을 주거나 가산점을 부여한다. 이러면 무학자(無學者)는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공천에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 우리 헌법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국가에 요구한다. 여성·청년 가산점 등이 가능한 이유다. 반면 기초자격평가는 오히려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정당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후보자 공천을 위해 노력하는 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와 헌법 원칙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도록 후보자들의 역량을 높이는 게 정당의 역할이다. 단지 ‘좋은 결과’를 위해 기본권을 침해하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체제다. 그 어떤 명분도 국민의 기본권에 앞설 수 없다. 후보의 적합성조차도 국민이 판단하는 것. 그게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국민의힘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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