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DJ와 호형호제…동교동 사람 [정치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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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희, DJ와 호형호제…동교동 사람 [정치人]
  • 윤진석 기자
  • 승인 2022.10.17 2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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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과 DJ 계보 열어…87 野 후보 단일화 협상 창구로 나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은 골수 동교동계 사람으로 5선을 역임했다. 지난 1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연합뉴스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은 골수 동교동계 사람으로 5선을 역임했다. 지난 1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연합뉴스

 

지난 16일 숙환으로 별세한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향년 91세)은 뿌리 깊은 동교동계 사람으로 평 되고 있다. 

1931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30대인 1960년대부터 DJ(김대중) 핵심 참모로 활동했다. 평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오른팔로서 DJ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살 터울의 동교동계 맏형이자 영원한 DJ 비서실장인 권노갑 고문과 계보의 맥을 함께 열었다. 

도의원 선거서 당선되긴 했지만, 박정희 정권에 맞서 출마한 국회의원 도전은 수난사였다. 5대 총선부터 내리 낙선하다 1973년 9대가 돼서야 충북 옥천·보은·영동 지역의 초선 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집념의 사나이로 불렸다. 중간중간 고비가 따랐지만 10·12·17·18대까지 원내 입성하며 충북 정치의 거목으로서 5선을 역임했다. 

1980년 5월 17일 DJ가 신군부 조작의 내란음모 사건의 표적이 돼 군에 회부될 당시 가신 그룹으로서 고초를 겪었다. 12대 총선 때는 신당 돌풍을 일으켰던 민주화추진협의회 중심의 신민당 후보로 참여하지 않았다. 정대철 전 의원과 마찬가지로 신당 참여에 소극적이던 DJ 권유에 따라 민한당 후보로 출마한 것으로 보인다. 

1987년 개헌 협상 무렵에는 DJ 사람으로서 8인 정치 회담에 나섰다. 13대 대선을 앞두고 DJ로부터 전권을 부여받고 야권 후보 단일화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동교동계를 대표해 미창당 지구당 수를 더 많이 달라고 상도동에 요구한 인물이다. YS(김영삼)가 이를 받아들였지만, DJ의  파기로 단일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고인은 이후 평민당(평화민주당) 출범에 동참하며 DJ 대권 출전 채비에 앞장섰다.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을 거쳐 열린우리당 창당에 가담했다. 17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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