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의 효용성, 그리고 美學 [일상스케치(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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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의 효용성, 그리고 美學 [일상스케치(58)]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2.10.30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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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불 없이 살 수 있을까
불은 긍정과 부정 양날의 검
화려함과 은은함이 교차되는
도시와 시골의 불빛 위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야경을 감상하노라니, 문득 '불'의 존재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평상시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로 여기며 이용하기만 하는 대상인데 말이다.  그건 심신을 데워주는 따스한 온기가 그립고 절대적인 계절이어서일까.

인류와 불

인간은 불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불은 인류의 필수 도구이며, 불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문명이 크게 발전했다. 불은 빛과 열을 내는 에너지로서, 인류문명을 떠받쳐 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는 크게 다른 존재로 이 세상에 군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불의 발견과 이용에 있다.

인류가 언제부터 불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산불에 타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었는데 맛이 더 좋게 느껴져서 불에 관심을 가졌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다른 동물에 비해 좋은 신체 무기가 없어 이를 대신할 무기를 찾던 중 발견했을 거라는 설도 있다.

그 유용성과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지 그리스를 비롯한 고대인들은 불을 '만물의 근원'으로 여겼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신에게서 훔쳐내 인류에게 건네준 불은 인류의 기술과 문화의 시작을 의미하며,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라는 상징적인 표현이 생겼다.

그리스의 위대한 과학자와 철학자들도 불을 매우 신비한 존재로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불을 물·흙·공기와 더불어 모든 생명체와 물체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요소로 평가했다. 플라톤도 신이 우주를 창조할 때 4가지의 원소를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창조에 필수적인 힘으로 간주했다.

또 불 자체가 예술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불에 비유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시에라 국유림 안에 있는 셰이버 호수 근처에서 산림이 불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시에라 국유림 안에 있는 셰이버 호수 근처에서 산림이 불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조력과 파괴력을 지닌 이중적 존재

인류가 불에 의존하는 삶에 워낙 익숙해지다 보니, 없는 상황에 닥쳤을 때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실 극한 상황에서 물보다 더 급한 게 불이다. 물을 안 마시고 버틸 수 있는 시간보다 체온이 떨어진 상태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훨씬 짧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양날의 검이라 부를 만큼 안전하고 이롭게 사용하면 유용하지만, 조금이라도 악의를 담거나 부주의하게 이용하면 한없이 파멸에 가까운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이다. 천재지변뿐 아니라 인재나 방화로 대형화재가 발생하여 수많은 산림,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무서운 일이 종종 발생한다.

한순간 실수로 화마가 거칠게 휩쓸고 간 재해 지역은 아무리 화려한 건축물일지라도 이전의 흔적은 간 곳이 없고 앙상하고 피폐한 잿더미 현장만  남는다. 불이 인류 발전에 기여한 만큼 거두어 가는 것도 순식간이며 치명적이다. 때론 조력자로 때론 파괴력으로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가 불에 의해 좌지우지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촌의 불빛

보름달, 긴 여정에 나선 나그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연합뉴스
보름달, 긴 여정에 나선 나그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연합뉴스

깜깜한 밤, 시골길에 나서면 작은 불빛 하나도 구세주가 된다. 시골은 인가가 많지 않아 저 멀리 이웃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들이 무척이나 반갑고 고마운 존재다.

산속을 헤매던 길 잃은 나그네는 발견한 작은 등불 하나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환호를 하며 달려가기도 한다. 어둠 속 불빛 한 점은 연약하지만 그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는 별빛의 존재, 그 자체가 예술이다. ⓒ연합뉴스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는 별빛의 존재, 그 자체가 예술이다. ⓒ연합뉴스

희미한 불빛에 의지하여 밤길을 걷을 때 으스스 한 측면도 있지만 이상하게 시골길은 아늑하면서 포근하다. 여기에는 달빛 별빛이 친구되어 동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달이 구름에 가리우면 저 멀리 희미한 달그림자 잔상 쫓아 목적지로 향할 수 있다.

밤안개 짙은 날은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정적만이 흐르는 시골은 어둠이 에워싼다. 그땐 그저 감각 따라 걷는다. 익숙함을 무기로 구불구불 좁은 길 따라 한 발자국씩 내딛다 보면 모퉁이 끝 반가운 불빛이 기다린다. 그 불빛은 정말 정겹다.

지금은 농촌 추수가 거의 다 끝났다. 벼가 익어가는 가을엔 마을 가로등도 소등한다.  벼가 잘 익기 위해 잘 자라고. 그렇게 되면 야행길에 주변에 불빛 하나 찾기 힘든데, 마침 보름달이라도 뜨면 그만한 행운이 없고 시골 마을은 보름달 천하가 된다.

적막한 바다, 선상의 등불

등불에 의지하여 바다 위 삶의 현장을 누비는 오징어 배. ⓒ연합뉴스
등불에 의지하여 바다 위 삶의 현장을 누비는 오징어 배. ⓒ연합뉴스

그렇다면 너른 바다 위에선 어떨까. 바다 위 어선을 비추는 등불은 달빛 별빛과 함께 생명의 불빛이다. 백사장 위 멀리서 볼 때는 작업중인 어선과 불빛이 낭만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부에겐 등불에 의지하여 칠흑 같은 어두운 밤바다와 사투를 벌이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며 지켜주는 유일한 보호자가 작은 불빛 하나다.

생과 사를 가를 수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작은 불빛에 의지하여 거친 파도와 싸워가며 작업을 이어간다. 게다가 등대 같은 길 지킴이가 없다면 아무리 거대한 범선도 망망대해에서 길을 잃고 좌초하기 십상이다.

도시의 밤의 주인공은 단연 화려한 불빛이다. ⓒ연합뉴스
도시의 밤의 주인공은 단연 화려한 불빛이다. ⓒ연합뉴스

도시의 불빛

시골이나 밤바다와 달리 도심에선 무한정으로 불빛이 쏟아진다. 차고 넘친다. 그만큼 도시의 밤은 불빛이 점령군처럼 절대적인 존재다. 네온사인의 화려함이 분위기를 한층 띄운다. 야경은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휘황찬란하다.

게다가 온갖 교통수단들이 분주하게 이동하면서 쏟아내는 차량의 불빛을 보면 그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궁금하곤 한다.

그렇지만, 활기찬 도시의 불빛이 때론 차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한 하늘아래 소외된 영역에도 불빛은 구석구석 넉넉하고 평등하게 비추고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도시의 열기가 품어내는 뒤안엔 군중 속 고독을 느끼는 무리들도 많다.

불빛이 어둠을 밝히고 정복하더라도 한편에선 어둠의 그림자가 활개를 치기도 한다. 온갖 군상들이 모여 있으니 다양한 흉악한 범죄가 주로 밤에 이루어진다. 그만큼 도시의 불빛도 한계가 있다.

'어둠의 자식들'이란 말은 괜한 비유가 아니다. 허나 어찌하리.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도시의 불빛 아래 통제불능의 영역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이렇듯 불빛은 온갖 삶의 현장에서 갖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머무르는 공간에 따라 때론 정겹게, 때론 차갑게 인식된다. 그렇더라도 밤엔 세상의 절대자니 만큼 삼라만상을 비추며 밝혀 주는 불빛이 무한 가치 영역이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이렇게 막강한 힘을 가진 불빛이 어둡고 소외된 곳에 더욱 공정하고 따스이 비추길 소망한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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