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재단 출범, 김현철 “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권 변화 필요”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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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재단 출범, 김현철 “선거구제 개편 등 정치권 변화 필요” [현장에서]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2.11.10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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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재단 첫 외부행사, 대화와 협치의 ‘YS 정치 리더십’ 논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은 지난 8일 오후 6시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김영삼,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지도자’ 설립축하연을 열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은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7주기를 앞둔 지난 8일 오후 6시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김영삼, 민주주의의 새벽을 연 지도자’ 설립축하연을 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YS) 차남 김현철 동국대 교수는 ‘YS정신과 시대정신’를 주제로 강연했다.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됐다. 첫째는 대화와 협치로 국가를 이끌어간 ‘YS 정치 리더십’이며, 둘째는 정당법 및 선거법 개정·중대선거구제·다당제 등 두 진영으로 갈라진 현 정치권 문제점을 해결할 정치 개혁의 필요성이었다.

재단 이사로 참여한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이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나름대로 계속 해왔다. 민주주의가 본 궤도에 오르기 까지 10개 정도의 사건들이 있더라. 그 중 23일 단식, 민추협 결성, 신민당 돌풍, 40대 기수론 등 7가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여가 있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YS정신의 핵심으로 ‘민주화를 위한 끝없는 도전’과 ‘국민에 대한 사랑, 애민’을 꼽았다.

 

유신 극에 달한 1979년 6월, YS ‘미국에 독재정권 돕지말라’ 말해


김 교수는 축하연이 진행된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이 갖는 의의를 시작으로 강연의 포문을 열었다. 외신기자클럽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한을 앞두고 있던 1979년 6월 11일,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기자회견을 가진 장소다.

당시 YS는 “그의 방한이 특정 정권을 도와주는 데 그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우리 국민은 크게 실망할 것”이라며 “그의 방한이 한국 안보와 민주주의 신장에 크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한 ‘특정 정권’은 박정희 정권을 가리킨 것으로 해석돼 유신 정권을 자극했다. 

YS는 당시 ‘미국은 독재 정권에 협조하거나 돕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시대상황상 대통령 외에 언급하기 어려웠던 북한 관련 이야기를 꺼내며 ‘김일성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국내 언론에는 해당 내용이 나가지 않았지만 유신 정권에선 난리가 났다. 외신을 타고 각 나라에 아버지 발언이 나갔을 것 아닌가”라며 “상도동이 아수라장이 됐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김현철, “YS 정신이란, 원칙 고수하되 대화와 타협 포기 않는 것’’
“3당 합당 없었다면 하나회 청산도 없었다…제2의 미얀마 됐을 위험도”
“진영간 대립 극에 달해…선거제도 개편 통해 정치권 근본 변화 이뤄야”


김영삼 전 대통령(YS) 차남 김현철 동국대 교수가 8일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설립축하연에서 강연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YS) 차남 김현철 동국대 교수가 8일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설립축하연에서 강연하고 있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 교수는 ‘아들 김현철이 바라본 아버지 김영삼의 44년간 정치 업적’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YS는 1954년 초선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고 1992년 대통령 당선, 1998년 퇴임까지 44년간 직업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김 교수는 YS의 핵심 정신으로 ‘원칙을 고수하되, 대화와 타협은 포기하지 않은 것’을 꼽았다. 그는 YS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초산 테러, 야당 총재직 박탈, 국회의원직 박탈, 가택 연금 등 독재 정권 하에서 여러 고초를 겪은 사실을 언급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5년 영수회담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회담 결과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 사실도 강조했다. 

1990년 이뤄진 ‘3당 합당’에 대해서도 “역사적 대타협이었다”며 “민주계 온건파인 YS와 군부 온건파인 노태우가 이룬 무혈혁명”이라고 설명했다. 3당 합당이 없었다면 하나회 청산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제2의 미얀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김 교수는 ‘3당 합당이라는 어려운 결단을 통해 군부 청산이 가능했던 점’을 들어 현 정치권이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점에 대해 말했다.

“현실 정치에서 좌우 대립이 심각하다. 보고 있으면 너무 답답하다. 과거엔 여야 간 대화의 문이 열려 있었고, 만남의 접점도 있었다. 정치권은 극한 대립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반 년이 채 안 된 정부에 대한 퇴진 요구도 나오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안보·정치의 3각 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정치권이 할 수 있는 일도 없게 됐다. 좌우의 온건 세력이 선거구제 개편, 다당제 등을 통해 근본적인 정치권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한다.”

김 교수는 정치 개혁의 현실성에 대해선 “2024년 총선 전에 실현되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2028년·2032년 총선 등 장기적 시각에서 제도 개편을 논의하고 실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32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이뤄지는 때가 오면 권력 구조 개편에 대한 이야기도 논의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구제 개편은 그전에 해볼 수 있지 않은가. 현재 국회의원 300명 중 약 20여 명이 선거제도 개편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당법을 고쳐 다당제로 변화하자는 목소리도 포함된다. 나는 구조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도 목요일마다 상도동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현충원에 들러 아버지와 대화한다. ‘요즘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잘 도와주셔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돌아오는 답은 없지만 아버지도 현재의 상황에 대해 많은 질책을 하셨을 거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아버지는 거산, 난는 소산으로 불린 적이 있다. 아버님은 1954년 초선 이후 대통령 되기까지 38년 동안 정치생활하며 대업을 이뤘다. 나는 1987년 대선을 도운 것이 정치의 시작이었는데, 그게 올해로 35년이다. 정치도 도전해 봤는데 잘 안되더라. 그런데 나는 35년 만에 본업을 찾은 것 같다. 김영삼대통령 기념사업을 주도적으로 열심히 해 나가는 것이다”라며 문민정부 재평가 등 재단 운영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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