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마저 흔들…유통공룡들, 성장동력 위축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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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값마저 흔들…유통공룡들, 성장동력 위축되나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11.11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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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래·담보 대출로 투자 자금 조달했는데…경기 침체에 지가 상승폭↓
"한동안 대규모 투자 드물 듯"…"그래도 부동산은 안전자산, 쇼핑 나설 수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국내 유통 대기업들이 부동산 때문에 곤욕을 치를 전망이다. 그간 토지·건물 매매, 담보 대출 등 자산 유동화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성장해 왔는데, 경기 침체로 인해 땅값까지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어서다. 관련 업계에선 당분간 대규모 투자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선 과거처럼 부동산 쇼핑에 나설 수 있다는 말도 들린다.

11일 한국부동산원 R-ONE 부동산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전국 지가 상승률은 0.197%로 2017년 1월(0.183%)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전국 땅값은 고물가와 미국발(發) 금리 인상 여파로 주택시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와중에도 지난 5월까지 매달 평균 0.3%대 상승률을 보였으나, 6월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띠며 8월 0.276%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듬달 0.2%대마저 무너진 것이다. 부동산 불패를 자랑하는 서울 지역 지가 상승률도 지난 6월 0.404%에서 9월 0.205%로 하락하며 0.1%대 진입을 앞두고 있다. 거래절벽 현상도 나타났다. 2022년 전국 토지 매매 거래 규모는 지난 1월 11만4661필지에서 5월 14만4316필지로 확대된 이후 지속 위축돼 9월에는 8만5634필지로 줄었다. 이는 토지매매거래현황 통계 세분화가 이뤄진 2019년 1월 이래 최저치다. 주택시장 침체가 굳건했던 토지시장에도 전이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전체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치명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특히 신세계, 롯데, 현대백화점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데에 부동산을 적극 활용하던 유통 재벌들이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신세계그룹은 이마트 매장 매각 후 재임대, 마곡·장충동 토지 매각, 성수동 본사 건물 매각 등 자산 유동화 전략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현 SSG랜더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이베이코리아 등 M&A에 투입했다. 특히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할 땐 부동산을 담보로 국내외 투자기관으로부터 조(兆)단위 대출을 실행하기도 했다. 롯데그룹도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참전하는 과정에서 백화점, 아울렛, 마트, 토지 등을 대거 팔아 실탄을 충전했으며, 2019년엔 롯데리츠를 설립해 그룹 차원에서 부동산 투자·매입에 집중한 바 있다.

유통 대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부동산을 주로 사용하는 건 그만큼 보유 부동산 자산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지난 6월 말 연결기준 6조1311억 원 규모 부동산 자산(토지+건물 및 구축물)을 갖고 있고, 1조5000억 원 가량을 담보 제공 또는 사용권 자산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말 연결기준 8조450억 원의 부동산 자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약 5조 원을 담보 제공 혹은 사용권 자산으로 잡고 있다. 롯데쇼핑은 2021년 말 연결기준 전체 유형자산 중 13조720억 원이 부동산 자산인 것으로 나타났고, 7조7000억 원 가량을 담보 제공 혹은 사용권 자산으로 반영하고 있다. 롯데지주는 지난해 말 기준 4조4980억 원 규모 부동산 자산을 갖고 있으며, 약 7000억 원을 담보 제공 또는 사용권 자산으로 잡고 있다. 아울러 현대백화점은 지난 6월 말 연결기준 5조552억 원 규모 부동산 자산을 보유 중이고, 2조8000억 원 가량을 담보 제공 혹은 사용권 자산으로 기재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규모인 만큼,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속돼 땅값까지 하락전환이 이뤄져도 큰 타격은 없겠으나 투자 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여지는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더욱이 부동산을 활용한 자금 조달 여력도 코로나19를 전후로 많이 줄은 실정이다. 이마트가 차입금 등과 관련해 담보로 제공한 부동산 자산은 2019년 말 2395억8800만 원에서 올해 6월 말 1조7274억 원으로 6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부동산 자산 규모는 5.22% 확대되는 데에 그쳤다. 동일한 시기 현대백화점의 담보 제공 부동산 자산은 1조1482억 원에서 2조130억 원으로 75.32% 늘었으며, 이 기간 부동산 자산 증가폭은 12.10%에 머물렀다. 단기간에 급등한 기준금리,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사태 등도 부담이다. 특히 롯데그룹은 롯데건설의 자금경색으로 곤혹스런 지경이다. 이는 유통 계열사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0일 롯데건설은 롯데쇼핑의 종속회사인 우리홈쇼핑(롯데홈쇼핑)으로부터 운영자금 1000억 원을 이자율 7.65%에 빌렸다. 한국신용평가는 롯데쇼핑, 롯데지주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때다. 무엇보다 금리가 너무 많이 올라서 힘들다. 앞으로 한동안은 유통 대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단행을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아마 롯데쇼핑의 영국 오카도 도입 1조 원 투자 뉴스가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롯데쇼핑의 투자조차 업계 사람들에게 무척 놀라운 뉴스였다. 그만큼 험난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선 유통 대기업들이 부동산 쇼핑에 다시 뛰어들지 않겠냐는 말도 들린다. 경기 침체 시기 저렴한 가격에 매물로 나온 토지와 땅을 사들여 미래를 대비하는 전략을 펼치는 광경이 과거와 같이 연출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전후 시기 프라이스클럽, 카드부문 등을 매각해 마련한 현금을 활용해 전국에서 토지를 싼 가격에 매입해 이마트 등 매장 부지로 썼다. 이 과정에서 서울 강남 청담동 일대 부동산을 자녀인 정용진·정유경 남매와 사들인 이후 그룹 계열사들이 주변 토지를 사들이면서 땅값이 크게 뛰어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경기 고양, 부천 등에서 수천억 원을 투입해 건물을 매입했으며, 금융위기 여파로 온나라가 돈맥경화에 빠진 2011년에도 판교 백화점 부지를 사들였다. 2012년 유럽위기 때에는 김포터미널 아울렛 부지를 낙찰받았다. 

부동산 투자를 이미 단행한 업체도 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한무쇼핑은 지난 9월 3213억6500만 원을 투입해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부산 에코델타시티 유통판매시설 용지를 매입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유통 대기업들은 모두 다 부동산 투자로 성공한 업체들이다. 신격호의 롯데, 이명희의 신세계, 정몽근의 현대백화점 모두 마찬가지"라며 "부동산 재벌에게 경기 침체는 큰 기회다. 곧 회사와 개인 차원에서 부동산 쇼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아무리 가격이 떨어져도 부동산만한 안전자산은 없다"고 내다봤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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