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설업계 인사·조직개편의 ‘명과 암’ [시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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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설업계 인사·조직개편의 ‘명과 암’ [시사텔링]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2.11.22 1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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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국내 건설업계에 최근 인사·조직 개편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 원자재 가격 급등, 미국발(發) 금리 인상, 부동산 경기 침체 등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영환경과 직면한 각 건설사들이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고자 선제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룹니다. 가장 대표적인 업체가 대우건설, 한화 건설부문(구 한화건설)입니다.

지난 11일 대우건설은 '조직 개편 및 정기 임원 인사'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본부 내 실(室) 조직을 폐지하고, 본사 조직을 현장 중심 조직으로 슬림화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우건설 측은 "녹록지 않은 국내외 경영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조직 유연성 확보,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 확립을 위한 조직 개편"이라며 "현장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기본철학을 바탕으로 조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게 이번 조직 개편의 열쇠"라고 설명했는데요.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슬림화'로 평가됩니다. 보통 슬림화라고 하면 구조조정, 희망퇴직 등과 자연스레 연결 짓게 되는데, 대우건설의 슬림화는 사뭇 다릅니다. 본사 인적·물적 자원을 국내외 현장에 분산 투입시키는 게 주요 골자입니다. 영업활동, 현장관리, 해외수주 등 건설업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는 현장 최우선 경영으로 체질 개선과 역량 강화를 모색해 수익성을 제고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대우건설 측은 앞선 보도자료에서 "기본에 충실하되 새로운 비전, 중장기전략을 토대로 미래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에 앞서 한화 건설부문은 ㈜한화에 흡수합병되기 직전인 지난 10월 24일 한화건설 명의로 '임원 승진 인사 실시'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포지션 중심' 임원 인사 체계를 도입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화건설 측은 "해당 제도는 포지션 가치와 적합도에 따라 임원 승진, 이동이 결정되고, 보상 수준이 변화하는 인사 체계다. 임원 호칭도 상무, 전무 등 방식이 아닌 담당, 사업부장 등 수행하는 직책으로 변경된다"며 "전략·사업 실행 기능 강화를 위해 각 분야별 전문성과 성장 잠재력을 보유한 인력을 발탁했다"고 부연했습니다. 각 개인들이 맡은 직책에서 어떤 역량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승진, 연봉을 결정하겠다는 겁니다. 이는 한화그룹 차원의 인사제도 개편인데요. 당시 한화건설 외에도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디펜스, 한화시스템, 한화정밀기계 등 계열사들이 포지션 중심 임원 인사를 앞세운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한 바 있습니다.

양사의 이 같은 인사·조직 개편은 성과주의 확대로 읽힙니다. 사무실에서 놀고먹는 것처럼 보이는 임직원들을 일선 현장으로 보내고, 개개인의 성과를 인사평가에 반영해 파격적 또는 충격적인 보상을 상한선·하한선을 정하지 않고 주겠다는 거니까요.

내부 반응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우건설의 한 현장 관계자는 "국내외 현장에 비해 본사 인력이 지나치게 비대한 편이었다. 본사 조직을 줄이고, 현장 조직을 키우는 건 건설업을 영위하는 기업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인사고과 측면에서도 현장을 조금이라도 더 아는 사람이 승진하고,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게 옳다"며 "현장에선 대부분 합리적인 조치라고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화 건설부문의 경우 김승연→김동관으로 3세 승계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세대교체를 위한 자연스런 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한화 2022년 3분기 보고서와 주요주주특정증권등소유상황보고서, 한화건설 반기보고서 등을 살펴보면 기존에 한화건설에서 전략총괄 업무를 수행하던 김철훈 사장(1959년생)이 한화와의 합병 후 스톡옵션을 행사하고 임원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파악되는데요. 그룹 비서실장을 지낸 김 사장은 김승연 회장의 최측근 인사 중 하나로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이와 함께 김만겸·박용득·윤용상·박경원 등 1960년대 출생 부사장진이 모두 자리를 떠났고, 박철광 등 1970년대 인물들이 부사장 등 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에 앞서 '김동관 사람'으로 분류되는 김승모 사장이 한화건설 대표이사 자리에 앉고, '김승연 사람'이라 불리는 최광호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죠. 이 같은 흐름에 맞춰 고질적인 인사 적체 현상이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고 하네요.

다만, 일각에선 건설사들의 성과주의 행보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장기 부동산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대놓고 구조조정 등을 단행하면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으니 '본사 조직 슬림화', '포지션 중심 인사 체계' 등 명분을 내세워 중장기적 인력 감축을 시도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는 겁니다. 현장에 가서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성과 창출에 부담을 느낀 인력이 자발적으로 퇴사하는 걸 노린 것이라는 논리인데요. 특히 양사는 각각 새로운 주인 맞이, 20년 만에 친정복귀 등 이슈로 인해 구조조정 가능성이 거론돼 왔던 업체들인 만큼, 그 의심에 상당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일부 있습니다. 실제로 대우건설의 새 대주주인 중흥건설그룹 오너일가 내에선 대우건설의 조직 슬림화 규모를 정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 정도 규모는 해야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성골과 슬림화 규모가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진골간 충돌이 발생한 거죠.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이 같은 인사·조직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입니다. 현재 건설업계는 국내외 경기 침체에 따른 부동산 시장 냉각,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사태로 인한 유동성 위기로 큰 어려움에 처한 실정입니다. 우리나라 재계 순위 5위인 롯데그룹마저 롯데건설발(發) 돈맥경화에 휩싸일 정도로 리스크 수준이 심각합니다. 여기에 오는 2023년 상반기까지는 미국발(發) 금리 인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행사들의 금융 부담이 점점 커질 것이고, 시공사인 건설업체들은 먹거리 확보에 애를 먹을 겁니다. 자체사업 추진도 힘들어지겠죠. 성과주의를 앞세운 선제적인 내부 교통정리, 리스크 관리가 반드시 필요한 경영환경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각 기업들이 고려했으면 하는 건 '균형'입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건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급격히 오른 물가로 식구들 끼니 걱정을 하고, 급격히 높아진 이자율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걱정을 합니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을 대상으로 과도하게 성과주의 기조를 내세운다면 부정과 부패, 정보 공유 단절, 비용 증가 등 회사 차원에서 상당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과거 프랑스는 식민지인 베트남에 퍼진 쥐를 박멸하기 위해 베트남인들에게 쥐 가죽을 갖고 오면 그 보상으로 돈을 주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러자 베트남인들은 쥐를 잡아오는 게 아니라 사육장을 만들어 쥐를 키운 후 가죽을 벗겨 돈을 받아갔다고 합니다. 오히려 쥐가 들끓게 된 것이죠. 경영학에서 자주 거론되는 성과주의 역효과 사례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지금 비록 경쟁사회를 살아가고 있지만, 상생과 협력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는 시기에 있습니다. 적절한 균형점을 찾지 못한 과도한 인사·조직 개편, 지나친 성과주의 기조는 시대를 역행하는 일입니다. 구성원간 상생과 협력을 와해시키고,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게 만들어 결국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게 될 겁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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