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소황제’의 하루 [K-소황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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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소황제’의 하루 [K-소황제①]
  • 장대한 기자
  • 승인 2022.11.25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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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모시는 사회, 고민·성찰 필요한 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장대한 기자]

어릴 때부터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과 가치 소비를 경험하며 자란 아이들을 소황제라 한다. 더욱이 결혼 안 한 삼촌, 이모는 물론, 손주를 금쪽같이 여기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달라붙어 소황제를 위해 서슴없이 지갑을 연다. ⓒ 시사오늘 김유종
어릴 때부터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과 가치 소비를 경험하며 자란 아이들을 소황제라 한다. 더욱이 결혼 안 한 삼촌, 이모는 물론, 손주를 금쪽같이 여기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달라붙어 소황제를 위해 서슴없이 지갑을 연다. ⓒ 그래픽=시사오늘 김유종 기자

#.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마○스 치약과 ○슨 전동 칫솔로 양치를 한다. 올바른 양치 습관과 치아 관리에 도움이 되라고 이모가 특별히 구해온 거라고 한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집에 들러 전복죽이니, 뭐니 하며 밥을 손수 챙겨준다. 엄마가 먹으라고 사놓은 키크는 ○○젤리는 거르면 혼난다. 1만 원의 하루 용돈이 걸려 있다. 학교 갈 준비를 마치면 엊그제 백화점에서 산 버○리 코트를 걸쳐 입는다. 요즘 주변 친구들 다 입는 브랜드라서 할아버지에게 사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나를 학교에 직접 데려다주고, 방과 후엔 또 학원 앞까지 태워준다. 내가 학원에 들어간 걸 보고 나서야만 볼일을 보러 가시는 거 같다. 몰래 고개를 내밀어 엄마 차가 없어진 것을 확인한 후 근처 피씨방에 간다. 항상 같이 게임을 하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 녀석이 패딩 안에 껴입은, 어제 새로 산 톰브○운 가디건을 자랑한다. 평소에도 잘난 척을 자주 하는 녀석인데, 명품이라고 잘난 체를 하니 얄밉다. 나도 아빠가 퇴근하면 저거 보다 더 좋은 걸로 하나 사달라고 말해봐야겠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과 가치 소비를 경험하며 자란 아이들 '소황제'의 일상을 각색해봤다. 아무리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자식 가진 부모라면 내 자식에게만큼은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은 게 당연지사다. 

부모 눈에 소황제들의 투정과 어리광은 그저 귀여울 뿐이다. 자연스레 소비에 일찍 눈뜬 세대이다 보니 씀씀이도 무시 못 한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사업 때문에, 맞벌이 때문에 자식에게 신경써주지 못한 속죄의 의미에서 물질적으로나마 더 채워주려 한다. 이렇다 보니 아랫대로 답습되는 소비 지향적 모습들을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사람들은 고금리로 집값 대출 이자에 허덕이고, 고물가로 밥 한 끼 맘 편히 먹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소황제들은 지금의 어려운 시대를 공감할 수 없다. 제대로 된 꿈 한 번 펼쳐보기도 전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던 ‘삼포 세대’와는 시작점부터 다르다. 삼포 세대에게 사치로 여겨지는 '유학', '기러기 가족'이란 단어들마저 소황제들에겐 선택 가능한 특권처럼 여겨질 뿐이다.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철 지난 옛말이다. 개인주의화되고 흉흉해진 세상 속에서 아이를 풀어놓고 키우는 부모도 없는 데다, 남의 손에 맡기는 것 역시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젠 일가친척이 총동원돼 아이를 케어하는 시대가 왔다. 결혼 안 한 삼촌, 이모는 물론, 손주를 금쪽같이 여기는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손주를 위해서라면 팔 걷고 나선다. 지갑도 서슴없이 연다.

기업들도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겨냥해 소황제를 극진히 모시는 마케팅을 펼친다. 젊은 세대가 결혼과 임신을 꺼리면서 아이는 줄어들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키즈 시장은 나날이 성장세다. 불황이 찾아와도 자녀에게만은 투자를 줄일 수 없기에 '키즈 불패'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름이 난 호텔에는 객실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생겨나고, 키즈 프리미엄 제품들은 불티나게 팔린다. TV와 스마트폰을 적극 활용한 통신업계의 영유아 교육 콘텐츠 서비스인 키즈랜드, 아이들나라 등은 효자 상품 반열에 올랐다. 키즈폰 시장 쟁탈전도 치열하다. 10세 미만 아동 2명 중 1명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을 정도로 보급률이 높아지다 보니 매력적인 시장임은 분명하다.

소황제들 덕에 아동 패션 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어른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명품 플랫폼에서조차 키즈 관련 상품들이 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브랜드들의 위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건강식품 시장조차 이젠 노년층이 아닌 키즈 시장이 대세다. 내 자식에게 최고만을 입히고, 먹이겠다는 마음을 파고든 상술은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소황제 마케팅을 둘러싼 잡음도 크다. 과소비를 조장할 수 있는 만큼, 경계심이 높아진다.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아이들이 어느 학교를 다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비뚤어진 모습은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자리한다.

때문에 소황제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옹호론적 입장에선 부모의 든든한 울타리 속 최고 대접을 받고 자란 소황제들이 긍정적 사고와 높은 자존감을 바탕으로,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들에 진취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른바 돈이 돈을 버는 시대에선 탁월한 경영감각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선 소황제적 사고방식을 경계한다. 이들은 한번 바닥을 맛보면 회복탄력성이 떨어져 쉽게 포기하고 도태될 수 있다고 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할 수 있겠지만, 마약 사범들 중 유명인사들의 자제들이 쉽게 연루되는 점이 대표적 사례다. 부모가 확고한 양육 태도 없이 아이의 뜻만을 지나치게 받아주다 보면 소황제 증후군에 빠지고, 커서도 사회화 과정이 어려울 수 있다. 

중국은 소황제 현상을 일찍이 경험했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 쌓았다. 대체적으론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소황제가 과도한 관심을 받고 자란 탓에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커서는 자립심 부족에 따른 노동 경쟁력이 떨어지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모가 된 소황제들은 다시 그들의 자녀에게 과소비 문화를 전이시키고, 소유욕을 부추기는 양상마저 보였다고 한다. 

우리라고 별반 다를 순 없다. '한국판 소황제', 'K-소황제' 시대를 맞이한 지금, 올바른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계속>

담당업무 : 자동차, 항공, 철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좌우명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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