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의 ‘러브 미 텐더’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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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의 ‘러브 미 텐더’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2.12.04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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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 별세
“장쩌민-시진핑, 스타일·정책 추진 방향 정반대”
“장쩌민, 시장 경제 도입…시진핑, 미국과 대립각”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 연합뉴스
중국 관영통신 신화통신은 지난달 30일 낮 12시 13분(현지시간)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이 백혈병 등으로 인해 상하이에서 치료를 받다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1995년 11월 15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는 모습이다. ⓒ 연합뉴스

중국 사태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G2 국가의 일에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가 격해지는 가운데 전 국가 주석 장쩌민(江澤民) 사망에 대한 각별한 애도 분위기가 이어지자 특히 서방 언론들이 중국 관련 보도의 비중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

중국 당국이 ‘외세에 의해 선동된 글’이라고 평가하는 보도들은 중국 내에서도 급속히 퍼지고 있다. 이는 시진핑 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한 중국 안팎의 ‘희망 섞인’ 관심으로도 비쳐져 중국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장쩌민 사망이 주목받는 이유

장쩌민이 지난달 30일 사망하자 국내외 언론들은 ‘G2 발판 만든 장쩌민 사망’, ‘미묘한 시점에 사망한 장쩌민’ 등 제목을 달아 보도하며 시진핑 체제를 노골적으로 자극했다. 시진핑 집권 이후 밀려난 장쩌민의 상하이 파벌 등의 배경을 감안할 때 시진핑으로서는 적지않게 신경이 쓰였음 직하다.

서방 언론들이 1989년 톈안먼 사태처럼 대규모 집단 저항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하고 있을 때 마침 장쩌민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한국, 미국, 영국 등 외국의 대학으로도 연대시위가 확산됐다. 하버드, 컬럼비아, 옥스퍼드 등과 토론토, 도쿄, 타이베이 등에서 연대시위가 벌어졌다고 외신은 전했다. “시틀러(시진핑+히틀러)를 규탄한다”는 대자보가 고려대에 붙었고 홍익대 주변에도 시진핑 비판 대자보가 붙는 등 국내의 연대 움직임도 이어졌다.

그래도 며칠간은 중국 당국의 강경 진압이 계속됐으나 중국 안팎에서 장쩌민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는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오면서 시진핑 당국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하나 둘 포착되기 시작했다. 결국 시위가 격화될 것을 우려한 중국 당국은 지난 주말께부터 대대적으로 장쩌민 추모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덩샤오핑 때와 동급대우를 하기 시작했으며 도시 봉쇄도 풀기 시작했다.

시진핑과 ‘많이 다른’ 장쩌민의 사망이 중국 안팎에서 주목을 받으며 중국 정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딱딱한 시진핑, 부드러운 장쩌민 

장쩌민과 시진핑은 우선 스타일 면에서 거의 정반대다. 장쩌민은 항상 웃고 시진핑은 항상 심각하다. 장쩌민은 한국을 비롯한 외국에 우호적이었고 시진핑은 적대적·고압적이다. 장쩌민은 사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거(大哥·큰형님)라고 부르며 존경심을 표시했고 시진핑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홀대했다.

정책 추진 방향도 완전히 반대다. 장쩌민은 톈안먼 사태 이후 10년간 중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덩샤오핑 정권에서 시작된 자본주의로의 변혁을 상당 부분 이뤄냈다. 그는 시장경제 도입을 반대하는 중국내 보수주의자들을 설득하면서 개방을 추진, 중국을 세계 주요 제조 강국으로 급부상시켰다.

장쩌민의 업적 위에 집권한 시진핑은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에 힘쓰기보다는 미국 등과 대립각을 세우며 과거 회귀형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왔다.

정치인은 연기에도 능해야 한다. 장쩌민은 다양하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고 시진핑은 단역도 맡길 수 없을 정도의 무표정하고 단순한 표정으로 일관해왔다.

‘수다스럽고 상대를 무장해제시킨다’는 장쩌민은 미국의 명시 등을 낭송하거나 ‘러브 미 텐더’같은 올드 팝을 부르고 이탈리아어로 ‘오 솔레미오’를 노래하기도 했다고 한다. 뉴욕 타임스는 “그는 평소 링컨을 자주 인용하고, 할리우드 영화의 팬”이라고 소개했다. 검은 뿔테안경, 커다란 입으로 두꺼비라는 별명을 얻고 엉성한 몸가짐 등 코믹 스타 같은 모습으로 ‘죽의 장막’ 지도자답지 않게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었다. 2차대전 때 영국의 윈스턴 처칠경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중국의 유능제강(柔能制剛)을 기대하며

중국 사람들은 한참 전부터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고 말해왔다. 장쩌민과 시진핑을 연상케하는 말이다.

우연한 사건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는다고도 한다. 독일 통일을 가져온 동독 공산당 대변인의 말 실수,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 사건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 시점에서는 중국 내 반정부 시위와 겹친 장쩌민의 사망이 중국 내 흐름을 바꿀 우연한 사건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혹시 시장경제 체제로의 대전환이 이뤄지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주면서.

시진핑 체제가 여러모로 우리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로서는 중국의 변화가 연착륙하기를 희망한다. 특히 경제분야에 악영향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장쩌민 추모 열기가 중국이 다시 시장경제 체제의 발전에 매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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