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의 속 시원한 제일건설 풍경채 저격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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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의 속 시원한 제일건설 풍경채 저격 [기자수첩]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1.09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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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그냥 살라고요? 벽지는 찢어져 있고, 천장은 마감도 안 돼 있고, 베란다에는 샤시도 없는 신축 아파트. 이런 아파트에 '그냥 살라'니, 입주자는 억장이 무너집니다. 공공이 지원하고, 민간 건설업체가 시공한 일부 서민아파트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정말 황당하고 화가 납니다. 건설업체도 화물연대 운송 거부로 인한 자재 수급 곤란 등 어려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그냥 사세요'라고 조롱까지 했다고 하니,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된 신축 아파트 부실공사 논란과 관련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 말이다. 원 장관은 지난 9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고 "서민이 거주하는 민간 임대아파트에 대한 하자민원을 전수조사해 하자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 임대아파트도 이제는 품질"이라며 위와 같이 말했다. 그가 언급한 신축 아파트는 충북 충주 호암동 일대에서 현재 입주가 진행되고 있는 공공지원 민간임대 아파트다. 해당 단지 입주민·입주예정자들이 공개한 사진에는 세대 내 마감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벽에 금이 가거나 철골이 노출돼 있고, 발코니 창호가 설치되지 않은 장면들이 담겼다. 특히 입주민이 벽지 누락 하자보수를 요구하자 해당 위치에 누군가 '그냥 사세요'라는 문구를 적은 것으로 확인돼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원 장관의 말대로 공공지원 민간임대 아파트는 공공자본의 도움을 받아 민간 기업이 시공한 후 무주택자와 주거 취약계층에게 비교적 저렴하게 공급하는 임대 주택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충주호암 B-3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제일풍경채 충주 호암)은 제일건설, 세종화건설, 하나자산신탁 등이 제안한 사업으로, 주택도시기금 약 1200억 원(2020년 기준)이 투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주거 사다리를 만들어달라고 막대한 국민 혈세를 지원했는데 곳곳에 금이 가고 무너진 사다리를 내놓고는 '그냥 사세요'라고 한 것이다. 입주자들의 억장을 무너뜨린 제일건설, 세종화건설 등은 향후 각기 출자한 지분 비율에 따라 임대 수익도 얻게 될 전망이다. 원 장관의 입에서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누리꾼들은 원 장관을 '사이다'라고 치켜세우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장관 본연의 업무를 하라', '정책이 아니라 쇼를 하고 있다' 등 비판도 나오지만 전반적인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로서 다소 꺼려질 수 있는, 특정 기업을 겨냥한 지적을 거리낌없이 했다는 측면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눈치다. 원 장관은 민간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공공성이 조금이라도 담긴 문제에 있어선 기업을 향한 쓴소리를 지속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공택지 벌떼 입찰'이다. 원 장관은 지난해 국토부 장관에 임명된 후 호반건설, 우미건설, 대방건설, 중흥건설, 제일건설 등 특정 중견 건설사들을 겨냥하듯 공공택지 환수 조치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당시 관련 업계에선 현실성이 떨어지는 '무리한 발언'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으나,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앞으로도 원 장관의 기업을 향한 속 시원한 발언을 자주 봤으면 한다. 원 장관은 대선주자급 정치인인 데다, 지난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부동산 관련 전문가라는 이미지를 얻은 인물이다. 업계 입장에서 그가 뱉은 말의 무게는 역대 어느 국토부 장관(군부독재정권 이후)의 그것보다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정치적 쇼라는 비판에 따른 부담을 이겨내고 고위공직자로서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에 지속적으로 기여했으면 한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친기업 기조를 감안했을 때 사회적 통합을 위한 균형점을 찾는 계기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단, 말로만 그쳐선 안 된다. 지난 3일 국토부는 2023년도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공공택지 벌떼 입찰 업체에 대한 행정제재와 택지 환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 한다. 소급 적용이 어렵다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적 조치라도 이행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안도 마찬가지다. 공공지원 민간임대 아파트는 박근혜 정권 당시 뉴스테이로 명명돼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부터 수많은 지적을 받은 제도다. 민간 업체에 대한 과도한 특혜, 정부 지원에도 비싼 임대료, 입주민에 대한 시행·운영·관리사의 갑질, 보이지 않는 사회적 차별 등 문제점이 상당하다. 원 장관은 '임대 아파트도 이제는 품질'이라고 말했다. 건축물의 품질이 아닌 제도 자체의 품질도 들여다보길 바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페이스북 캡처 ⓒ 시사오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페이스북 캡처 ⓒ 시사오늘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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