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전문 CEO여도 괜찮아…전문가가 도우니까 [박근홍의 人事萬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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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전문 CEO여도 괜찮아…전문가가 도우니까 [박근홍의 人事萬事]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3.01.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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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YS(故 김영삼 전 대통령)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사람의 일이 곧 만 가지 일이다. 좋은 인재를 등용해서 그들에게 걸맞은 자리에 알맞게 배치해야 모든 일이 좋게 풀린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라도 직접 관리 가능한 범위에 한계가 있어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인재를 채용해 그들이 보유한 지식과 전문성, 경험에 걸맞은 위치에 앉혀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아무리 풍부한 자본과 탄탄한 시스템을 갖춘 회사여도 몇몇 사람들로 인해 순식간에 흔들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때문에 기업의 인사는 투자자들에게 있어서 그 업체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 사항 중 하나로 분류되기도 한다. [人事萬事] 코너에선 기업의 인사를 조명해 기업의 만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새 부대에 담긴 한화 건설부문·쌍용건설, 새 CEO는 건설 비전문가


김승모 한화건설 대표(왼쪽), 김기명 글로벌세아·쌍용건설 대표 ⓒ 제공=각 사(社)
김승모 한화 건설부문 대표(왼쪽), 김기명 글로벌세아·쌍용건설 대표 ⓒ 제공=각 사(社)

2022년 건설업계에는 그리 크다고 보긴 어렵지만 작다고 볼 수도 없는 지각변동이 생겼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사실상 10대 건설사'로 분류되는 한화건설, 쌍용건설이 새로운 둥지를 튼 것이다. 지난해 11월 한화건설은 ㈜한화로 합병돼 '한화 건설부문'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해당 합병으로 한화 건설부문은 글로벌부문, 모멘텀부문 등과 함께 ㈜한화의 한 사업부문이 됐다. 이에 앞서 쌍용건설은 글로벌세아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같은 해 10월 글로벌세아는 기존 쌍용건설 최대주주인 ICD(두바이투자청)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지난 연말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 승인과 잔금 납부를 마쳤다.

둥지만 바뀐 게 아니라 어미새도 바뀌었다. 기존에 한화건설에서 전략총괄 업무를 수행하던 김철훈 사장(1959년생)이 한화와의 합병 후 스톡옵션을 행사하고 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룹 비서실장을 지낸 김 사장은 김승연 회장의 최측근 인사 중 하나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의 퇴장과 동시에 한화 건설부문의 초대 사령탑으로 김승모 대표이사 사장이 입장했다. 쌍용건설에도 새로운 수장이 부임했다. 글로벌세아그룹은 지난 2일 2023년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하고 쌍용건설 대표이사로 김기명 글로벌세아 대표이사를 신규 선임했다. 김 대표는 글로벌세아와 쌍용건설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건설업 경험이 없는 건설사 CEO라는 것이다. 김승모 대표는 1990년대 한화그룹에 입사한 이후 한화큐셀 운영총괄, 한화큐셀 대표이사, 한화테크윈 경영전략담당, 한화 방산부문 대표이사 등 줄곧 방산·에너지 분야에서만 활동해 왔다. 태양광 인프라 관련 사업을 맡긴 했으나 건설 본연의 업과는 제법 거리가 있다. 김기명 대표는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2000년대 중반 글로벌세아에 합류해 세아상역 미국총괄 법인장과 코스타리카 방적공장 사장 등을 거쳐 글로벌세아 대표직에 앉은 인물이다. 쌍용건설 인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건설 관련 이력은 전무하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IMF 외환위기보다 최악으로 여겨지는 작금의 건설업 경영환경에서 두 사람이 과연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을 지엔 물음표가 붙는다.

 

건설업 경험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 통합·화합


하지만 그 물음표를 상쇄할 수 있는 '느낌표'가 있어 보인다. 한화 건설부문의 경우 '개막'이다. 한화그룹은 현재 김승연 회장에서 그의 아들인 김동관·김동원·김동선 형제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한화생명 지분을 보유한 한화 건설부문이 ㈜한화로 흡수합병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앞서 거론했듯 합병 과정에서 김승연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철훈 사장이 한화건설에서 빠졌다. 김승연 회장의 신임을 받던 최광호 부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들을 대신해 새 한화 건설부문 대표이사로 임명된 김승모 대표는 김동관 부회장의 측근으로 통한다. 김승모 대표는 쎄트렉아이 기타비상무이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기타비상무이사 등을 수행하며 김동관 부회장과 합을 마친 바 있다. 아버지의 복심이 있던 자리를 아들의 복심이 꿰찬 셈이다.

한화그룹이 김승모 대표에게 한화 건설부문을 맡긴 건 다가올 김동관 시대의 개막을 위한 밑작업을 수행해 달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육·해·공, 신재생·우주·방산 등 김동관 부회장의 큰 그림이 제대로 그려지려면 채색에 앞서 밑그림을 연필로 꼼꼼히 그려야 한다. 그 연필 역할을 하는 게 바로 한화 건설부문이다. 김동관 부회장이 내세우고 있는 친환경 신사업이 성과를 거두려면 한화 건설부문이 '그린 인프라 디벨로퍼'로 거듭나 태양광, 풍력발전, 수처리 등 친환경부문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김승모 대표가 부임 일성으로 그린 인프라 디벨로퍼를 강조한 배경이다. 그린 인프라 디벨로퍼는 단순 명분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한화그룹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탄을 마련해야 할 때다. 한화 건설부문은 '서울역 북부역세권 복합개발사업', '대전역세권 복합개발사업', '수서역 환승센터 복합개발사업', '잠실 스포츠 마이스 복합공간 조성사업' 등에 나설 예정이다. 이들 사업의 규모는 약 7조 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한화는 김동관 시대를 위해 한화 건설부문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통합·화합해야 한다.

쌍용건설의 느낌표는 '반등'이다. 쌍용건설은 ICD 품에서 완벽한 정상화를 끝내 이루지 못했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국내 건설업체들에 비해 해외사업 비중이 높은 만큼,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상대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2015년 ICD에 인수된 이후 2018년을 제외하곤 매년 흑자를 내던 쌍용건설은 2020년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6.26% 감소하더니, 2021년엔 -1108억1113만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전환했다. 당시 쌍용건설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진행하는 사업장 4곳에서 발생한 미청구공사, 미수금 등을 재무제표에 반영했다. 특히 수백억 원 규모 미수금을 겨우 없앤 '두바이 로얄 아틀란티스 호텔'(Dubai, The Royal Atlantis Hotel) 현장에서 또다시 미수금을 재인식한 부분이 뼈아팠다. 해당 사업은 ICD가 발주한 프로젝트다. 이에 ICD는 2021년 말 약 600억 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는 등 쌍용건설을 지원했지만, 쌍용건설은 2022년에도 수익성 방어·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파악된다. 반등이 절실한 상황 가운데 글로벌세아그룹이 등장한 것이다.

글로벌세아그룹은 쌍용건설 인수 후 즉각 1500억 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쌍용건설에 대한 유동성 지원에 나섰다. 이는 M&A 협상 과정에서 약속한 사항이었고, 약조를 그대로 이행해 쌍용건설의 새 주인으로서 대내외에 신뢰감을 줬다. 이제 글로벌세아그룹이 해야 할 일은 시너지 창출이다. 인수 협상을 진행하면서 글로벌세아그룹은 계열사 세아STX엔테크와 쌍용건설간 협력을 추진해 플랜트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한 쌍용건설의 텃밭인 싱가포르, 중동 등에 글로벌세아그룹이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남미 등을 더해 해외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세아상역 등 그룹 계열사들이 발주하는 일감들이 쌍용건설에게 돌아갈 가능성도 높다. 이 같은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PMI(인수 후 통합)는 물론, 구성원간 유기적 통합·화합이 선행돼야 한다. 글로벌세아그룹은 통합·화합을 이끌 적임자로 김기명 대표를 낙점한 것이다. 김기명 대표는 관련 업계에서 기업 인수합병에 잔뼈가 굵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세아STX엔테크, 태림포장, 발맥스기술 등 최근 수년 내 글로벌세아그룹에 편입된 업체들과의 M&A를 그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非전문 CEO 보필할 전문가, 여기 있소이다…남은 과제는?


한화 건설부문 CI(위), 쌍용건설 CI ⓒ 제공=각 사(社)
한화 건설부문 CI(위), 쌍용건설 CI ⓒ 제공=각 사(社)

한화 건설부문과 쌍용건설은 비(非)전문 CEO를 내세운 대신 건설 전문 인력들을 영입하고 승진시키는 방식으로 물음표를 지우고 있다. 한화 건설부문은 ㈜한화에 흡수합병되는 과정에서 김만겸·박용득·윤용상·박경원 등 1960년대 출생 부사장진을 정리하고, 1970년생 인물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박철광 부사장(개발사업본부장, 前 경영전략실장), 원상훈 전무(인프라사업부장, 前 인프라개발사업실장) 등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은 김동관 부회장과 김승모 대표가 추진하는 그린 인프라 디벨로퍼로의 도약을 위한 첨병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박 부사장은 개발사업본부장으로서 한화 건설부문이 진행하는 복합개발사업들을 총괄한다. 사업 추진을 위한 윤활유 역할도 할 것으로 보인다. 박 부사장은 사단법인 건설주택포럼 등을 통해 동종업계 관계자는 물론, 정관계 인사들과 스킨십을 지속적으로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원 전무는 수소, 수(水)처리 등 한화 건설부문의 친환경 신사업을 주도 중이다.

글로벌세아그룹은 김기명 대표를 쌍용건설 사령탑으로 선임하는 동시에 김인수 전 현대건설 GBC사업단장을 쌍용건설의 새로운 사장으로 영입했다. '40년 현대맨'인 김인수 사장은 국내 건축사업 전문가로 분류되는 인물로, 현대자동차그룹의 숙원사업인 GBC 프로젝트를 10년 가까이 수행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쌍용건설의 건설명가 재건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사업 전문가로는 쌍용건설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석준 회장이 있다. 김석준 회장은 대표이사직에선 물러났으나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해외에서 수십년 동안 축적한 네트워크와 경험을 활용해 쌍용건설의 반등에 도움을 줄 전망이다. 이밖에 쌍용건설은 설 명절 연휴 직전 임원 인사를 단행해 김재진, 한승표, 황철비 등 현장 전문가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김재진 상무는 경기 을지대학교 의정부캠퍼스·부속병원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호텔 등에서, 한승표 상무는 두바이 로얄 아틀란티스 호텔 등에서, 황철비 상무는 수인선 복선전철 등에서 각각 현장소장을 지낸 바 있다.

한편, 새 출발에 나선 양사가 풀어야 할 내부적 과제는 역시 통합·화합으로 보인다. 한화 건설부문은 ㈜한화로 합병된 뒤 기존 ㈜한화 조직과 겹치는 부서들을 합치고 쪼개는 과정에서 적잖은 잡음이 일어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새해를 맞은 것으로 전해진다. 쌍용건설도 글로벌세아그룹 품에 들어간 이후 2~3차례에 걸쳐 기존 임원들이 물갈이돼 혼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 모두 원팀을 이루기 위한 잰걸음에 들어가야 할 때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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