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세금을 많이 매겨달라”는 사람들 [金亨錫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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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세금을 많이 매겨달라”는 사람들 [金亨錫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1.29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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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들 반성 이어져”
“‘따뜻한 자본주의’ 설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김건희 여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건희 여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통 사람들은 세금을 되도록 적게 내려고 한다. 기업은 절세(節稅) 명분으로 공공연히 탈세를 계획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유사 이래 징세자와 납세자 간의 숨바꼭질은 끊임없이 지속돼왔다. 그런 ‘게임의 룰’을 깨는 사람들이 출현했다. 자신들이 세금을 많이 내도록 해달라는 이상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세계 억만장자들의 최근 흐름

‘슈퍼 리치’로 불리는 각국의 억만장자 205명이 자신들에게 부유세를 부과하라고 공개적으로 나섰다. 그들은 이달 중순 스위스에서 열렸던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모인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지금 당장 우리에게 부유세를 부과하라”라고 촉구했다. 자신들을 ‘애국적 백만장자들’이라고 소개한 이들의 그런 행동은 언뜻 이해하기가 힘들어 감동에 앞서 진짜 속셈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월트디즈니 가문의 상속녀 애비게일 디즈니를 비롯한 슈퍼 리치들이 부유세를 부과하라는 명분은 이렇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협력을 구축하려면 지금 당장 더 공정한 경제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해법으로 ‘슈퍼 리치들에게 부유세를 부과하라는 것’이며 ‘부유세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주장이다. 설명을 들으면 일단 그럴듯하기는 하다.  

코로나가 세계를 덮친 이후 더욱 심해진 세계적 부의 불평등 현상은 이들 주장에 설득력을 실어준다. 한 보고서는 지난 2020년~2021년 2년간 창출된 부의 63%를 상위 1%의 사람들이 가져갔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그 기간 전 세계에서 창출된 42조 달러(약 5경 2130조 원)의 새로운 부(富) 가운데 26조 달러를 슈퍼리치들이 가져갔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열린 소위 ‘부자들의 놀이터’라 불리는 다보스포럼 주제는 ‘분열된 세계에서의 협력’이었다. 슈퍼리치들의 이같은 행동이 나올만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부유세 부과를 자청한 건 도덕적 이유에서라기보다는 부의 심각한 불평등이 시장경제체제 자체에도 위협이 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제도적인 개입이 없이는 부의 재분배가 쉽지 않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던 셈이다.

이들에 앞서 부의 분배에 관한 진보적인 의견을 내놓은 세계의 톱 랭킹 부자들이 있었다. 빌 게이츠가 이른바 ‘따뜻한 자본주의’를 바탕에 깐 창조적 자본주의를 제시하자 워런 버핏과 조지 소로스가 공개적으로 빌 게이츠의 주장에 동조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최고 수혜자인 그들이 적극적으로 보완 방안을 제시한 건, 사회적 분노를 방치했다가는 자칫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갖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대기업이 성장하고 부자들 소득이 늘면 일반 국민들도 그 과실을 누릴 것이라는 믿음은 미신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도 이미 많이 나온 터다. 세계 시장의 중심부인 뉴욕 월가에서 시장 흐름을 좇아 부를 일군 그들의 관찰과 판단에는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겠다. 더욱이 그것이 자신들의 일시적 손실을 감수하고 내놓는 건의임에랴!

어쨌든 서민들로부터 부러움과 함께 눈총을 받아오기 일쑤이던 슈퍼 리치들의 각성과 결단이 잇따르며 자본주의 체제의 개선을 위해 선순환 작용을 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한국의 부자들

우리나라의 경우 미흡한 대로 부의 재편을 위한 논의가 일부 진행돼오기는 했다. 친기업 정책이 지나치다고 평가받던 이명박 정부가 당시로서는 뜬금없다고 할 정도의 ‘공생 발전론‘을 내세운 적이 있었다. 대기업 총수들의 사재 출연이 뒤따라 이어지기도 했다. 좌파 정권의 시장경제 체제의 궤도를 벗어난 정책은 논외로 치더라도 일단 큰 흐름은 우리도 대기업, 중소기업, 노조, 일반 소비자의 공생을 추구하는 쪽으로 이어져 왔다.

그런 흐름은 우리의 경제 환경도 빈부격차나 빈부 간 갈등이 이미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울 강남권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시기심이나 재벌에 대한 오래된 증오심, 명품 사재기를 비롯한 엇나간 부자 흉내 내기 유행 등 부의 불균형으로 인한 부작용은 날로 심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 한국의 부자들 중에도 의외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디. 지금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부자들이 곳곳에서 미담을 들려주고 있다. 제주의 김만덕, 경주 최부자 그리고 2대째 기부활동을 지속한다는 대구 키다리 아저씨(익명을 고집하는) 등이 그렇다. 이들을 우리도 따뜻한 자본주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근거로 본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부자들에 의해 설계되는 새 자본주의 모습은?

승승장구해온 자본주의를 신앙처럼 믿으며, 막대한 부를 일궈온 뉴욕 월가 일대의 억만장자들. 그들이 중심이 되어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새 바람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세계시장에 대한 관찰을 근거로 작지 않은 결단을 내리고 있다.  

그 결단은, 현재 상황에 대한 관찰과 함께 나름대로의 역사 인식을 통해 얻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왕조의 몰락, 귀족 계급의 몰락 등 ‘너무 많이 가졌던 자들’의 몰락에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봤음 직도 하다.

이 슈퍼 리치들의 주도로 설계될 건강한 새 자본주의 모습이 많이 궁금해진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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